Pejac
Pejac은 스페인 출신의 예술가입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벽에 낡아 떨어지는 페인트 조각도, 꿉꿉하게 자라나는 길거리에 이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작품이 됩니다. 그 작품들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심각한데요. 자연 문제와 사회적 붕괴와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주제임에도 그의 작품은 유머가 있는 시 한 소절 같습니다.
Pejac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그건 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다가갔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숲 : 연기로 사라져가는 산과 세상
가려진 얼굴 : 가식으로 세상을 유영하는 사람들
목초지 : 비난을 사료로 먹고사는 온순한 사람들
내 유일한 깃발 : 자연으로 푯대를 세웠지만 깃발이 세워진 곳은 황무지
기계의 분노 : 실험으로 점철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선 : 위태로운 자연의 실태
Pejac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사법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속성'과 '현실'을 서로 결합하는데, 이 두 가지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연결시키고 차이점은 대조시켜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가지의 요소를 감각적 유머를 곁들여 병치시킴으로써 시각적 재미를 유발하지만 재미있는 만큼 웃을 수 없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Pejac :
제 영감은 모든 곳에서 옵니다.
제게 가장 영감을 주는 것은 가장 밝고 어두운 순간과 우리가 속한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입니다.
오너와 그림자 => 사회적 관계
사회적 일원을 그림자 취급하는 권세가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
자연과 동상 => 과거가 된 생태계
더 이상은 풀을 뜯는 자유가 사라진 동물들의 현실, 모양만 동물인 무너진 왕국
거리의 알바트로스 : 투쟁이 게임처럼 되어버린 도시
(알바트로스 : 골프에서 한 홀에서 기준 타수보다 3타수 적게 홀인 하는 일)
무수히 많은 타이어 만으로도 심각해 보이지만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합니다. "구명 튜브". 구명 튜브로 인해 타이어는 바다가 되고 타이어 밑에 깔린 땅은 구조가 필요해졌습니다. 그가 선택한 오브제 하나로 단순히 "낭비가 쌓여서 자연이 망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넘실거리는 타이어 바다로부터 구조가 필요하다."라는 하나의 시적인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타이어 더미와 구명튜브 => 바다를 이루는 재해
무분별한 낭비로부터 구조가 필요한 현실
멀리서 보면 그저 나무 그림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섯 가닥으로 묶인 짝대기들입니다. 다섯 가닥의 짝대기, 생각나는 거 있으시죠? 옛날 원시 시대 때 날짜를 새기 위한 기호입니다. 이 기호가 내포하고 있는 속성을 통해 저 나무의 시작은 오늘 본 나무가 아니라 "기원전 고대로부터 자연이 길러낸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 한마디는 자연이 수많은 시간을 공들여 길러낸 나무를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무와 날짜(원시적) => 시간의 기록
원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
한 아이가 교회 꼭대기에서 구조탄을 들고 매달려 있습니다. 재난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 더 이상 발딛일 곳 없는 난민들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작품입니다. 저 십자가 밑에까지 물이 차올라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지금 저 아이의 절박한 심정이 이해 가실 겁니다.
예로부터 모든 문명, 사회는 물을 끼고서 탄생합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 강은 문명의 '젖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을도 우물을 중심으로 집집마다 모여서 형성되었죠. 그래서 우물은 생명의 터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 터전이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이 방황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작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자연의 크고 작은 변화가 변이를 일으켜 엄습하게 될 때에는 어떤 신세가 되는지를 저 우물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삶의 터전'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역습에 매몰되어가는 인간의 현실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래 작품의 제목은 "Social Distancing" 사회적 거리 두기입니다. 갈라진 벽 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모습. 여기서 대조해 볼 주제는 '사회적 붕괴와 벽의 붕괴'입니다.
사회적 붕괴는 '절망, 종말'을 의미하지만 벽의 붕괴는 '자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으로 틈이 생겼다고 하면 '결점, 약점, 사각지대'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떠오르기 쉽지만, 벽의 생긴 틈으로는 '소통, 기회, 만남'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작가는 코로나라는 부정의 끝에서 긍정의 시작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양팔 벌려 환영하는 가족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행복을 상징하는 칸딘스키의 작품 '덴스'처럼 춤추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코로나의 엄습으로 인한 사회적 붕괴로부터 다른 세상을 향해 비집고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 붕괴라는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붕괴가 또 다른 세상으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늘 심각한 주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뜻밖에 보고 지나갈만한 재밌는 오브제들을 설치하거나 그리기도 합니다. 그는 정말 작업의 영역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안과 밖 구분도 없고 국경도 없이 그저 자신의 보고 느끼는 것들을 자유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만듭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반갑게도 한국도 있더군요.
Pejac :
내가 거리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 때문입니다.
한글 간판부터 눈에 보입니다.
왜 종이비행기를 그렸나 했더니 담배에 타서 추락하는 비행기였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일상'과 '현실'. 다시 말하면 '무분별한 일상'과 '위태로운 현실'입니다. 분명 환경문제, 사회적 폐단과 같은 위태로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빗장으로 닫혀 있는 문을 열어 놓기도 하고, 붕괴의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지적은 냉철하지만 끝에는 위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