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 작가
정영주 작가의 그림을 보면 따뜻합니다. 아늑하게 내려 앉은 하늘, 언덕배기 위로 덮은 지붕들 밑으로 촘촘히 박힌 노란 불빛들. 판자촌 지붕의 더께마저도 아름다워 보이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에요.
정영주 작가는 대학부터 유학시절까지 추상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마음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한지"라는 소재를 이용해 콜라주 작업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바다 건너 이국 만 리 타지에서 경험 했던 유학이 고향의 향수를 느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가의 작품 속 테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입니다. 그런데 그 것들이 무수히 모인 풍경은 전혀 없던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영주 작가의 풍경을 '기이'하다고 표현한 겁니다. 현실적인 오브제의 반복이 오히려 환상의 '지경'을 보여줍니다. 지극히 서민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테마인 판자촌이 초현실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것을 보면서, 형상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정영주 작가는 작가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바람이나 쐬러 남산에 갔다가 우연찮게 남산 밑에 군데군데 있던 판자촌을 보고는 초라해진 자신과 같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온기로 가득했던 골목, 정감 어린 추억이 있던 기억 속 판자촌이 지금은 고층 빌딩 틈아리에서 초라하게 식어버린 것이 안타깝고, 초라함을 느끼고 있는 자신도 안타까웠던 작가는 식어버린 추억과 온기에 불을 밝히고 싶었나 봅니다. 예전엔 아니었는데 초라해진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정영주 작가는 판자촌에 영감을 얻어 가장 서민적인 테마를 컨셉으로 추상미술에서 구상미술로 변모하게 됐습니다. 관객들과 더욱 소통하고 싶어 했던 작가의 의지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추억과 온기에 대한 관념이 만들어낸 초현실 세계 판자촌 파라다이스. 정영주 작가의 힘들었던 시간으로부터 식어버린 판자촌 골목은 빛으로 밝아지게 됩니다.
콜라주는 "뜯어 붙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영주 작가의 그림에서 한지를 이용해 캔버스 위에 이어부치는 작업을 콜라주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물리적인 조합이라는 사실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영주 작가의 판자촌 콜라주 작업은 물질에서 비롯된 1차원적인 기법이 아니라 "관념"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영주 작가의 콜라주는 판자촌이란 개채를 패턴처럼 이어붙여 작고 소외되어 있던 것을 화면에 퍼트립니다. 개채 본연이 가지고 있던 존재적 의미를 확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개채와 개채를 연하는 재편집을 통해 삶의 귀중한 '터전'으로 소중했던 공간들이 극대화되었고, 이로써 외소했던 풍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시 탈바꿈 시켰습니다. 잊혀진 풍경을 다시 되찾은 샘입니다. 그것도 환상적으로.
작가의 온기가 잊혀진 골목을 다시 밝힙니다. 이렇게 낡고 보잘것 없는 소재도 마음으로 눈여겨 보면 환상적인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추억과 현실의 결합, 과거와 현재의 공존, 한지와 아크릴이라는 소재와 소재간의 결합, 그림 속은 온통 "화합의 장"입니다.
인간의 육안으로 받아들이고 머리에서 해석한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된 인식이 본연의 가치를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