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이런 날은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일기를 써야지!! 엄마 지금 엄~~~~ 청 행복하거든!"
거실바닥에 널브러져 막내요정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 날 "뿅"하고 찾아와 저에게 무한한 기쁨을 선물해 준 생명체입니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사소한 것 하나도 조심스러워 수고를 자처하지만 둘째는 대부분 '발'로 키우게 되잖아요? 마음이 여유로워진 만큼 어린 둘째와 보낸 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어렸을 때 이 아이의 장래희망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ㅋ
요 귀여운 꼬꼬마가 자라서 올해 중학생이 됩니다. ((귀) 요미야 축하해!)
지난 주말에 아이의 절친 두 명이 집에 놀러 왔어요.
한 친구가 한숨을 푹~ 쉬며 고민이 있다고 합니다.
"이모, 할머니 때문에 완전 짜증 나요"
"무슨 일 있어?"
"제가 숙제를 다 하려면 4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런데 할머니가 숙제를 다 하기 전에는 핸드폰을 쓰지 말라고 해서 요즘 만날 싸워요."
아이 친구(쏭이)의 부모님께서 직장에 다니시는 관계로 방학 동안 할머니께서 돌봐주십니다. 아이의 식습관이나 인사성 등을 보면 어른들 품속에서 자랐구나.. 느껴질 만큼 품행이 반듯한 아이입니다.
쏭이에게 물었습니다.
"쏭아, 한 번에 4시간이나 집중할 수 있어? 그건 정말 대단한 건데?"
"아뇨 ㅋㅋ 그래서 아주 괴로워요."
"그럼 쏭이가 마음먹으면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저 두 시간은 앉아 있을 수 있어요!"
"우와! 두 시간이면 엄청난 거야~~~ 쏭이 대단하다. 일단 이모랑 짠 한번 해^^"
네......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짠!'이 맞습니다. 적당히 불량한 이 아줌마는
식탁에 치킨과 피자와 컵라면을 올려두고.. 맥주와 사이다가 담긴 유리잔을 부딪히며 꼬맹이들과 한잔 하는 중입니다.
(쏭이 어머니 죄송해요!)
그 후로도 쏭이는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한참 쏟아냈어요.
"너희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잖아? 그럼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러니까요.. "
어리광은 피우고 싶지만 어린애취급은 싫은 딜레마가 아이의 목소리에 듬뿍 담겨있습니다.
"할머니 눈에는 당연히 쏭이가 아직 아가로 보이시겠지~ 아줌마도 은지가 여전히 아가로 보이는 걸."
"은지, 우리끼리 놀면 완전 언니 같은데요ㅎㅎ"
이렇게 우리 집 귀요미의 사생활도 슬쩍 엿보게 됩니다.
"할머니께 네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면, 쏭이 말을 들어주실 거야!"
"그걸 어떻게 보여드려요? 난 그냥 열네 살인데, 뭐, 작년보다 키가 이만~~ 큼 컸다고 말씀드려요?"
"ㅎㅎㅎ"
"이건 세상의 엄마들만 아는 비밀인데.. 너희들한테는 알려줄게. 언제 너희가 다 컸구나. 하고 느껴지냐면 말이야..."
사춘기의 초입에 선 세 소녀는 자기만 갖고 싶은 보물을 발견한 듯 조용히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입니다.
"너희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할머니! 숙제하는 동안 한 번에 발휘할 수 있는 내 집중력은 두 시간이에요! 하고 말이야."
"에,, 이미 해봤죠~~ 아직 중학교 1학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누가 4시간을 한 번에 공부하냐고 벌써 할머니랑 대판 싸웠는걸요"
"두 시간 공부하고, 쏭이가 원하는 만큼 잠깐 쉬었다가, 또 나머지 숙제를 하겠다고 분명하게 의견을 말씀드려. 그리고 진짜 비밀은 이건데.. 그 약속을 스스로 지켜내는 거야. 그 모습을 보면 어른들은.. 울 아가가 언제 이렇게 컸누... 하고 느낀다니깐."
"음.... 근데 할머니가 핸드폰을 못하게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 그거^^ 공부와 공부 사이에 쏭이가 쉬고 싶은 시간이 있을 거잖아. 30분일 수도 있고, 1시간일 수도 있고- 쉬는 시간은 할머니랑 상의해서 정하고, 쉬는 동안 핸드폰을 하던지, TV를 보던지 쏭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려 봐"
"근데 이모, 쉬는 시간을 왜 할머니랑 정해야 돼요?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쉬면 안돼요? 숙제만 다 하면 되잖아요."
"지금은 방학이라 쏭이 일상을 할머니께서 돌봐주시잖아. 점심밥은 언제 준비해야 하는지, 할머니입장에서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아.... (끄덕끄덕) 이모 내일 당장 할머니께 말씀드려 볼게요!"
"ㅎㅎㅎ 결과도 알려줘! 자, 짠 한번 더 해~"
다음날 쏭이는 어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정말로 어른들께서 "우리 쏭이 다 컸네~"라고 하셨답니다.
신이 나서 전화통화하는 두 소녀의 대화가 얼마나 귀엽던지요..
쏭이는 제 딸에게 말했습니다.
"다음에 또 고민 생기면 콜라 한 잔 하러 가도 되지? 네가 내 친구라서 진짜 좋아!"
와.. 이런 청소년 성장드라마 주인공 같은 아이들을 봤나..
덕분에 아줌마도 일일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인자한 어머니의 하루를 보낸당~
오늘의 생각 33)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