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울 ━ 흔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겁쟁이 초보운전자다. 운전면허를 딴 건 약 4년 전인데, 아직도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사실 운전 실력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겁이 많아서 남들에게 운전이 미숙한 편이라고 말한다. 나는 1종 면허를 땄는데(이것에 나름 자부심이 있다), 그 당시에 모두가 말렸다. 나한테 1종 면허가 무슨 쓸모가 있냐며, 멋으로 그러는 거면 하지 말리던 사람들에게 이유를 말해주니 모두 수긍했다. 내가 1종을 따야 했던 이유는 이러하다.
배우가 되지 못한다면 ‘주변의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주변의 일을 예로 들자면, 촬영팀에 소속되려면 1종 면허가 유리하다. 영화나 드라마는 서울 로케일 경우가 드물어 대부분 지방에서 촬영한다. 값비싼 장비에, 가짓수도 워낙 많다 보니 2종 면허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 길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구급대원이 되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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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이유는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 그래서 필기, 기능을 각각 2번이나 떨어지고, 그 덕에 몇 십만 원을 더 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시험 볼 당시, 가장 두려워했던 구간은 악마의 T자 주차도 아닌, 액셀을 밟아 속도를 내야 하는 마지막 구간이었다. 나는 이 구간을 참 무서워했는데, 선생님이 조수석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기어 변속과 속도를 내지 않으면 감점인 시험이었기에 올라가는 계기판의 숫자를 극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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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액셀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했다. 도로에서는 어느 정도 달릴 수 있게 됐고, 가끔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엄마에게 혼나기도 한다. 이제는 속도를 즐기는 운전가가 된 것이다. 처음 운전했을 때와 달리, 연기를 시작했을 때의 나는 겁도 없이 풀액셀을 밟았다.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아도 눈앞에 달릴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좋았다.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이 명확했기에 핸들을 잡은 손과 액셀 위 발이 명확했다. 하지만 지금은 운전과는 반대로, 삶의 속도를 즐기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다. 불안해서, 무서워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속도를 늦추게 된다. 가끔은 걷는 게 더 빠를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멈추지 않는 이유는 눈앞의 길은 더 선명해졌고 내가 바라는 목적지가 점점 뚜렷해져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득 운전을 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운전도, 연기도, 삶도 여유만 가지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 초보운전자가 운전을 하면서 인생을 논하다니, 한문철 선생님이 전방주시나 잘 하라며 훈수를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어도, 조금 차가 밀려도, 여유만 있다면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다. 연기도 여유를 가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 다 여유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액셀을 밟는 여유는 생겼지만 주차에 대한 여유는 한참 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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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라인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된 장면 앞에서, 간이 콩알만 해진다. 특히 턱이 있는 공간을 주차할 때면 큰 결심을 하고 나서야 액셀을 밟을 수 있었다. 주차할 때 한 번씩 발 밑을 검사한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게 브레이크인지 액셀인지 한 번씩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잘 덤벙 거리는 나는 언젠가 한 번쯤 크게 사고를 칠 거 같았다. 겁쟁이에 사고뭉치. 어쩐지 이질적인 두 단어의 조합이다. 나는 운전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겁쟁이와 사고뭉치 그 자체이다.
어렸을 때는 선택의 두려움과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고, 딱히 큰 결과를 낳는 선택을 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선택의 순간들이 왔다. 그때마다 나는
그냥 Go!
풀액셀을 밟을 수가 없었다. ‘왼쪽보다 오른쪽 길의 결과가 더 좋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높은 턱에 걸린 마냥 매번 나를 멈추게 했다. 갑자기 햄릿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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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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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햄릿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를 우유부단한 사람, 답답한 사람이라고 비판할 수 없었다. 아직도 햄릿이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겐 햄릿의 명대사처럼, 생사를 가르는 선택의 순간들이 온다.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않지만, 그만큼 중요한 무게를 지닌 선택이 찾아온다. 선택은 사랑하는 일을 할 때 피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은 사소함과 중대함 사이에서 나를 재촉했다. 어찌어찌 시작을 하더라도 ‘생계’라는 거대한 현실을 마주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연기만 할 수가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늘 그렇듯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배우의 삶을 벗어나서는, 인간 이한울의 마음을 안전하게 주차해야만 했다. 아르바이트는 턱이 없어 겁이 나지는 않았지만, T자 주차 같은 난코스에 해당했다. 나는 늘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에서 일했다. 어렸을 때는 사람이 좋아서였고, 연기를 시작하고부터는 사람을 관찰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가만히 주차되어 있던 마음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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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있으신데, 그 흔한 유튜브에도 안 나오시잖아요. 그래도 연기 계속하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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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한동안은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본업이 배우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아르바이트한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내 인생에서는 당연한 선택지였다. 사실 연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평생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인생이어도 좋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랑한 입술에서 나오는 뾰족한 말에,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이 따가웠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주차해야 했다. 좋아하는 일에 액셀을 밟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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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연기를 할 때에도 주차를 해야 했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꽉 찬 주차장에 딱 한 자리가 남았다면 그곳에 부리나케 주차를 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그 한 자리를 허겁지겁 찾아야 했다. 빙글빙글 돌며 빈자리를 찾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곳에 주차하기는 더 힘들어 보였다. 양옆, 앞뒤로 비싼 차가 꽉꽉 차 있었다. 나는 남의 차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않고 쏙 들어가야 하는 아주 작은 경차였다. 그러니까, 작은 경차라도 끼워 넣을 공간을 찾아야 했다. 오디션은 적고, 지원자는 빽빽했다. 운 좋게 좋은 오디션을 찾아도 잘난 사람들 속에서 기죽지 않고 그 배역에 나를 맞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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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디션에 붙으면 모든 게 끝, 만사 행복 시작일까? 그것은 또 아니다. 후진 한 번만으로 주차하기 어려운 것처럼, 나는 몇 번이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다른 차를 먼저 보내기도 하고, 내려서 다른 차와 부딪히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이유는 단지 좋아하고, 재밌어서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겁쟁이에 사고뭉치일지라도 계속 액셀을 밟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자리를 쉼 없이 찾기도 하고, 아주 좁은 공간일지라도 나를 욱여넣어 볼 것이다. 운전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창작자인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핸들을 잡고 있고, 발아래에는 엑셀과 브레이크가 있다. 어디로 갈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언제 멈춰 설지, 어디에 주차할지도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그때마다 우리 모두가 적절한 액셀과 브레이크를 선택할 수 있기를, 정처 없이 헤매다가도 우리에게 꼭 맞는 주차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