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이기심 사이에서ᅠ보기 좋게 빠져나오기

이한울 ━ 흔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by ㅎ과ㅇ
"착하면 연기 못해"

연기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어딜 가든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착한 애들은 연기 못한다는 선배들의 그 속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선한 사람이 결국 세상을 구한다고 믿기 때문에 예술가, 배우도 선한 사람이 결국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속설에 나는 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자, 무대 밖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속설에 무릎 꿇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작을 할 때 어느 정도 이기심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걸음이 있다는 걸 나는 무대 밖에서 알게 됐다.


우습게도 나는 늘 선함을 주장하지만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 속칭 '싸가지 없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린 시절에도 그 말을 참 싫어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어릴 적 싫어하던 그 문장 자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전생에 쥐였는지 모르겠지만, 좀 사나운 고양이가 요염하게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옴짝달싹 했던 때가 많았다. 유기견 보호센터에 정기 봉사를 갔는데 거기에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가 터줏대감처럼 누워 있었다. 봉사자 분이 츄르를 줘서 고양이에게 생전 처음 츄르를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고양님은 인간 츄르짜개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손톱을 세우셨다. 그때 이후부터 나는 고양님의 근처를 서성일뿐,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사실 나의 청주 생활이 대체로 그랬다. 나는 20살 이후로 쭉 타지 생활을 했음에도 유독 청주에서는 늘 외로웠다. 어디 하나 제대로 마음 붙이지 못하고 서성였다.


그렇게 청주 생활을 청산하고 본가인 서울에 다시 올라왔을 때는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살았던 것 같은데, 어떤 한순간에 선택이 송두리 째 바꿔 버린 것인지, 신이 나에게 배우의 길은 맞지 않다고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 것인지. 이상하리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내가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유와 목적은 단 하나. 거기에 있을 때보다는 성공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기적인 나는 내가 잘 풀릴 방법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잘 풀릴 수 있을까?'

정말 웃기게도 나는 연기 연습이 아닌 고양이 사료와 캔을 샀다. 길 고양이들을 배불리 먹일 생각이었다. 나는 정기 후원을 할 만큼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어디 후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길 고양이들 정도는 집 앞에 사료와 물을 두고 혹은 지나가다 만나는 아이들에게 캔을 줄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아서 한 달 식비에서 어느 정도만 그들에게 양보하면 됐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캣맘이 됐다.


내가 계속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을 이용해서 내가 잘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선의가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올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길을 못 찾거나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고,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우리 부모님, 할머니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선의가 그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임신한 사촌 언니가 퇴근 후에 지친 몸으로 한 시간 동안 지하철에 서있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내 모든 선의는 온전한 선의인 적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빠지지 않고 대가를 바랐다. 나는 고양이 사료를 푸짐하게 그릇에 담고 집 앞에 놓은 첫날 하늘에 기도했다.

'고양이를 돕는 저를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적어 놓으니 정말 지독하게 이기적인 인간 같아 순간 키보드에서 손을 놓고 말았다. 고양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고양이를 돕는 나의 행동이 돌고 돌아 나를 돕길 바랐다. 그 뒤에 잘 풀렸나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직도 집을 나설 때면 캔과 츄르를 꼭 챙긴다. (집 앞에 사료와 물을 두자, 고양이보다 비둘기가 더 많이 왔다. 그들의 뷔페가 돼버려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만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불안하지 않다. 그러니까 기어코 선함만을 주장하던 그때보다 이기심을 인정한 지금이 아주 편안하다. 일과 일상 그 어느 것 하나 불안하지 않은 하루하루라니. 이 자체만으로 참 감사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난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이제 난 더 이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기적인 사람만이 성공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던 전혀 오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이 모두 이기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말한다면, 나만의 이기심을 찾을 것이다. 원하지 않는 그 틀에 보기 좋게 빠져나올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던 나는 나의 방법을 찾았다. 선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기적일 수 있는 방법. 나는 앞으로도 그 어떤 작업이 내 앞에 있다 한들 늘 이런 마음으로, 이런 태도로 모든 것들을 임할 것이다. 성공의 기준도 이기심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면 나의 기준을 만들면 된다. 나의 이 마음과 태도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떤 작은 결실일지라도 남들 눈에 맞는 성공보다 찬란하고, 오늘의 나를 편안히 잠들게 하며, 내일의 나를 일으키리라.

나는 오늘도 햇반 통에 물을 담고, 캔을 따 고양이에게 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나에게 복 받으라며 성원했고, 나의 이기심을 감추려 그저 미소만 지었다. 오늘따라 뜨거운 햇빛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 만난 고양이는 사람만 지나가면 숨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밥 준 사람이라는 걸 아는지 다가갈 때는 숨지 않았다. 연신 허겁지겁 먹던 그 고양이는 내가 인사를 하고 가자 한참이나 나를 바라봤다. 나는 오르막길을 오르다 이따금씩 뒤를 돌아 혹시 해코지하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 아이도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걸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부디 나의 이 고약한 이기심이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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