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월 ━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GG! (망했어!) 꼬마 원장은 절규했다. 왜 하필 이 순간에 (영어) 학원이 대박 난 건데?! 뭐가 문제야 도대체. 블로그 홍보랑 전단지 돌린 결과가 이제 나타났다고? 것도 3개월 만에. 한두 명도 아니고 열댓 명이 우루루 이동한다라…. 이상하다. 11월이면 환승 시즌이랑 거리가 먼데. 중간고사랑 기말고사 사이엔 웬만하면 학원을 옮기려는 학부모님들이 없단 말이지. 전학생이 아니라면 굳이? 다니는 쌤들도 그대 론데. 알 수가 없네, 진짜!
그녀는 늘어난 원생과 업무로 바빠졌다. 그 말은, 연기학원에 갈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 아쉽지만, 어쩌겠어. 기본적인 발성법 = 학습 완료 + 진짜로 뭘 하고 싶은지 알았으니까 → 미련 없음. 월 50만 원에 준하는 고급 수강료는 이미 제값을 톡톡히 해냈다. 진짜 문제는 저예요, 저.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 현생의 바쁨을 뚫고서 글을 쓸 시간이 있는 원장 선생님? 없어요. 있었는데 사라졌나요? 아뇨, 그냥 없어요.
물-론 꼬마 원장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배부른 소리란 거. 철부지 어린애 같고, 자릿값을 못 한단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변명해 보자면, 그녀는 실제로 (매우) 어렸다. - 유명해지고 싶은 건 맞지만, 이 정도로 피곤할 줄 몰랐죠,라는 연예인들이 할 법한 변명을 입에 달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잘 나갈수록 모든 게 얹혔다. 돈, 명예, 시선과 책임이 그녀를 눌렀다. ‘견뎌, 버텨, 이겨내. 넌 할 수 있어!’ ▶ Warning : 최면이 걸리지 않습니다. 다른 버티기 Skill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에라이. 여긴 주인공 버프도 없냐! 처음부터 이런 던전에 던져놓고 — 알아서 클리어하라고?!
WTF. 아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한동안 씩씩거리던 그녀는 반성(하는 척)했다. Sorry, 좀 전엔 프로의식이 부족했어, 인정. 사람이 머리를 써야지. 자자, 다들 집중. 어떻게 하면 이 (성공이라는)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근데, 이쯤 되면 NPC라도 튀어나와야 하는 거 아냐? 하다못해 어디 힌트라도 숨겨놓던가…. 아, 그러면 반칙이라고요. 오케이. 어떤 게임이든 규칙은 지켜야지. 페어플레이는 기본이니까. 그래도 선생인데 반칙은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근데 다들 지인 찬스 잘만 쓰던데, 왜 나만 예외야?)
아자아자! 일단 주어진 기회부터 살려보자. 꼬마 원장은 의지를 다졌다. (+ Power UP!)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선생님도 한 분 더 뽑고. 수업도 열심히 하고. 상담 전화도 더 자주 드리고. 잘 되는 기세를 이어서 우주 끝까지 가 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겠지! 행운은 내 편이니까. 당장은 나만 바라보는 토끼 같은 (명예) 자식들만 신경 쓰는 거야. 정신 차려, 넌 할 수 있어. 이번엔 최면이 가까스로 걸렸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원생 수가 급증하면서 그녀는 반을 나눴다. 수준별, 학년별로 따로따로 분리할 수준이라니. 이야, 진짜 엄청난데! 딱 3초 동안 감탄했던 꼬마 원장은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쪼개어(÷) 주고, 임금 – not KING – 은 올려(+) 줬다. 모두가 사전에 합의한 사안이라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순식간에 터졌다.
▶ Emergency Event : 울음 경보 발생.
그래, 어쩐지 운이 지나치게 좋다 했어. 다음 시련이 닥칠 때가 됐지, 암. 그렇고말고. 반쯤 달관한 그녀는 교실로 들어갔다. 십 대 소녀들의 감성이 얼마나 여리고 변화무쌍한 지 너무나 잘 아는 입장으로서 – 남자 선생님의 무심함이 기어코 작은 댐을 터뜨리고 말았구나, 하는 안일한 생각은 학생들의 상황설명을 들으며 와장창 깨져버렸다.
① 30대 중반의 선생이,
② 수업하다 말고 뜬금없이,
③ 다른 학생들도 있는 교실 한복판에서,
④ “너네 부모님이 그러니까 네가 이 모양이지.”
⑤라는 패드립을 했다.
왜 그러셨냐. 선생님을 붙들고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이도 적지 않고, 경력도 많은 분이 어째서 그런 경위 없는 행동을 하셨냐고요. 몇 번을 물어도 ‘죄송하다’가 전부였다. 학생은 울고, 그는 웃었다. 사이코패스 아냐 이거. 자동응답기도 아니고,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꼬마 원장은 간만에 불타오르고 말았다. 그녀의 선택은 -
“나가세요.”
해고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꼬마 원장의 카리스마가 발동된 역사적인 순간, 교실이 얼어붙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신뢰의 문제였다. 아니면 사람됨의 문제이거나) 학생들을 이런 분께 맡길 수 없습니다. 맡고 계신 수업들은 다른 선생님을 모실 때까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당장 교실에서 나가주세요. 학생들은 눈치를 살폈고, 그쪽은 놀랐다. 오히려 남은 한 달을 채워주겠다며 버티려고 들었다. - 법적으로도 당일 해고는 상당히 골치 아픈 부분 – 실시간으로 굳어가는 학생들의 반응은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가 여기 있잖아?! 결국 수장으로서 꼬마 원장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수업은 알아서 준비하시되, 아이들은 들여보내지 않겠습니다. ‘부모님들이 원치 않으셔서요.’ 그 한 마디는 아주 강력한 패시브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망했지 뭐. 아, 학원 말고 내가. 꼬마 원장은 수업이라는 쳇바퀴에 갇히고 말았거든.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안 맡는 학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다른 파트 선생님이 있다고 해도 일전의 사고 때문인지 부모님들이 죄다 원장쌤 수업을 원하는 바람에, 수업 – 상담 – 수업 – 수업 – 수업이라는 극강의 시간표가 완성되어 버렸다. やれやれ、(* 곤란하다) 이게 바로 주인공의 숙명인가?! 하하하하하하 -.
실성(…)까진 아니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중이었습니다만. 어쩌겠어. 나만 찾으면 소같이 일해야지. 나날이 살찌는 통장 + 주변의 기대는 그녀를 채찍질했다. 그래서 무턱대고 페달을 밟았다. 수업을 잘하는 어리고 싹싹한 원장 선생님 –이라는 입소문으로 학원은 꽤 유명해졌고, 자체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주가 바뀌었다. 새로운 주인은 건물 전체 리모델링과 엘리베이터 설치를 권고(를 가장한 명령)했다. 그러니까 방을 빼라는 얘기였다.
① 언제? 당장 다음 달부터.
② 얼마나? 글쎄 뭐, 두 달 이상?
미친! 이건 그냥 문을 닫으란 거잖아. 오바라고? 전혀. 생각해 봐! 코로나 열풍이 한창인 시점에서 시험 대비하다 말고 학원 문을 닫으래. 우리더러 굶어 죽으란 거 아니야? 꼬마 원장은 곧바로 대표에게 연락했다. (그는 1대 원장, 나는 3대 원장이었다) 그러자 또 다른 기상천외한 명령이 떨어졌다. ‘에어컨, 벽지, 도배장판 등의 공사비를 건물주 측에서 제시한 업체보다 더 싼 최저가를 알아 오세요.’ 말도 안 돼. 리모델링 공사는 10년에 1번 어쩌다 이뤄지는 우연이고, 계약할 때 학원 내부 운영 외의 업무를 넘기신단 조항은 없었는데요. 명의도, 소유권도 - 권한은 다 가지고 계신 분께서 책임은 저에게 떠넘기시는 건가요.
꼬마 원장은 말을 삼켰다. 말이 (꼬마) 원장이지, 실상은 (월급) 원장이니까. 진짜 대표는 그였다. 싫으면 언제든 그만두면 끝인 프리랜서면서 주제도 모르고 넘치게 사랑해 버렸다. 그녀는 건물, 아이들, 학원의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날 만큼 무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싸게, 싸게, 아무리 최저가로 알아보려 한들 강사 자리가 하나 펑크 난 마당에 언제까지나 공사비만 알아보러 돌아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 그녀는 도와달라는 SOS를 보냈고, 그는 6개월 동안 서울에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 철저히 혼자 견뎌야 하는 싸움이었다.
그녀의 적은 아이에게 패드립하는 선생이나 진상 학부모 따위가 아니라, 건물주와 공사장 인부들이 되고 만 것이었다. 어쩌면 최저가만 독촉하는 대표까지도. 방을 뺀 몇 달 동안 학원은 근처 폐건물에서 이사해 수업을 이어갔다. 비가 내리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누추한 곳에서, 서류들은 젖어들었고 아이들은 지쳐갔다. 그 난리 통에서도 대표는 숫자놀이만 해댔다. 그놈의 돈, 돈, 돈. 내가 진 것도 아닌 빚들이 불어났다.
“너 왜 말 안 했어?”
“나도 내가 괜찮은 줄 알았어.”
결국 쓰러진 딸내미를 붙들고 엄마가 물었다. 꼬마 원장은 처음으로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있잖아, 나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 돈 한 푼 안 들이고 일하던 학원에서 원장이 된 거, 선생님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잖아. 감사하고 소중했어. 운영하던 내내 한 번도 남의 학원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어렵고 힘들어도 내 힘으로 전부 이겨내고 싶었어. 나도 스물다섯 살 어른이니까. 근데 그게 잘 안 돼. 나, 선생님으로 살기 싫어. 끊임없이 뭔가를 쓰고 말하고 싶어. 사실 그동안 하나도 안 행복했어. 그냥, 버티려고 최면을 건 거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 하고. 그러면 괜찮았거든. 그런데 이젠 면역이 생겼나 봐. 다 알고도 속아주는 거, 남들처럼 적당히 평범하게 사는 거, 나는 그게 잘 안 돼. 고백이 터져 나왔다.
▶ System Log : 정체성 게이지 + 30 회복 완료.
▶ ‘버티기 skill’을 해체하시겠습니까? → [ YES / Y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