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삶의 아름다움

나쓰메 소세끼 외 여러 일본작가의 글을 모은 <슬픈 인간>을 읽다

by Justin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일본여행을 많이 즐겨했다.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일본 만큼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렇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인만큼, 과거나 현재나 항상 마음속에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제외한다면, 지리적으로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 외에 가면 갈 수록 색다름을 선사하는 묘미가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 만화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다. 영화라는 영상 매체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아서 영화관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상하게 일본 만화 영화만큼은 거의 챙겨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브리에서 시작한 일본 만화 영화는 가볍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메세지와 영상미가 있기에 자극적인 스토리나 핏빛 회화감과 자극에 빠져 있는 영화들과는 다른 먹먹한 감동을 선사받곤 한다. 이제는 히사이시 조 음악감독의 지브리 연주곡을 배경으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도 하니, 일본 만화영화는 메세지, 영상미, 음악 등 모든 면에서 감동을 선사하는 장르다.

그리고 일본 문학. 산문들.

어떤 계기로 <슬픈인간>을 집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곁눈질로 훑어 내려간 문구들에게서 나를 사로잡는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소설가 김이경이 말했듯이 '밑줄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책들', '낱말 하나 하나가 허투루 넘어갈 수 없는 구절들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기에, 밑 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는 습관이 있기에, <슬픈인간>은 일본문학이기 이전에 한 권의 책으로서 내 서재에 꽂힐 이유가 충분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설명한다면,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작은 것을 지향하고 어딘가 집요한 기질이 있는, 좋게 설명할 수만은 없는 무언가를 이야기 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작은 것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함께 독자의 머리 속 캔버스에 그려내는 영상미와 회화감이다. 그리고 텍스트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겪고 난 이후에 보일 수밖에 없는 일반 사람들의 치열함, 하지만 소소한 일상들이 녹아져 있다. 자연에 대한 기억, 인간에 대한 관찰, 그리고 전쟁의 기억까지...

"만물은 항상 미분자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형태를 소멸시키고 있는 중이다. -칸트의 철학이 칸트 자신은 아니다" - 촉각의 세계 중에서

"아침저녁으로 책만 다루는 인간이 갖는 일정한 표정, 어른스러운 강인함 같은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전쟁은 산뜻하고 아름다워야 할 청년의 용모를 이렇게 바꿔 놓았다" - 도서관 중에서

"왕성한 것은 식욕이 아니라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었다, 오사카의 왕성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사카의 서글프고 초라한 발버둥이 아닐까." - 오사카의 우울 중에서

"인간의 기쁨은 세속적이라 고통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다" - 온천마을 엘레지 중에서

<슬픈인간>이 말하듯이,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상들은 말 그대로 정상적인 생활 공간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서 작가들은 삶의 아픔을 발견하기도 하고 옛날을 추억하며, 현재의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작은 즐거움에서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정교하고 분명하게 일상과 심리를 묘사해 내며, 물체에까지 의미와 심미를 부여하는 일본문학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그렇지만 오래 끓여야만 맛을 내는 진국과 같은 맛을 볼 수 있다.

한 편씩 읽어내려가면서 마음 속 한 구석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책. 오랫만에 선택한 일본 문학. 그 선택은 탁월했다.


일본과의 관계가 좋았던 기억은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장밋빛 미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역사가 정리되고 시대가 바뀌고, 몇 세대의 사람들이 돌고 돌만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고작 100년이 갓 넘은 시간은 우리에게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를 주기엔 부족하다. 역사에 정치에, 경제까지 얽힌 갈등은 두 나라의 얽힌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일본 여행과 문학적 경험은 그런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세계인으로서 문화를 배우고 여행에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다른 하나는 국가가 아닌 인간 보편성에 기대고 있기에 우리가 즐기고 배울만한 것들은 충분하다. 그런 과정이 위에서 말한 어쩌면 올 지 모르는 두 나라의 장밋빛 미래를 앞당기는 것이 아닐런지... 그냥 일본을 생각하면 끌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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