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고전문학평론가의 <로드클래식>을 읽다
지나 간 광고카피 중에서 중에서 '자유란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에 "자유는 여행이다" 라는 광고가 생각이 난다. 이 광고 덕분에 많은 여행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광고를 보는 많은 이로 하여금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으니, 코로나로 전 세계가 준 격리의 상태에 돌입한 현재를 보면 그 말에 담긴 자유의 의미를 몸소 배배우고 있는 듯 하다. 일상과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체와 영혼을 만끽하는 것의 즐거움이 얼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고전평론가라는 다소 생소한, 그리고 어떻게 보면 따분한 직업같기도 한 작가의 책은 이미 몇 권을 넘어선다. 혹시 나 자신이 고전이 풍기는 아우라에 사로잡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책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감칠맛이 난다. 텍스트의 전체 완성도와 시대적 함의를 이끌어내는 사유력, 거기에 구어체와 문어체를 가미한 문체의 전달력이 합쳐져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시작하기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을 받고는 했다.
<로드클래식, 길위에서 길찾기>는 여행을 모티브로한 세계의 유명 고전 6편을 선정해서 주인공과 작가의 여행의 경로와 인생경험을 대비시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어 준다. 말 그대로 길위에서 듣는 클래식 음악이 아닌 도서라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그 감동은 크게 차이가 없을 듯 하다.
열하일기. 이상하게 요즘 많이 접하게 되는 책이다. 아직 책의 모든 부분을 섭렵하지 못했지만, 인생을 이야기 하고 인간의 처신과 풍자를 이야기 할 때 시대를 막론하고 거론되는 책이다. 연암 박지원의 기행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읽어보기 보다는 열하일기와 연암을 구분하여 알고 있을 듯 하다. 열하일기는 청나라의 신문명을 탐지하며 조선의 부국강병의 길을 모색하고, 때로는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때로는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한 기행문의 백미라는 말로 기억하고, 연암은 조선후기 실학자로서 북벌론을 뒤로 한채 기울어가는 조선의 국력회복을 위해 청나라의 신물물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젊은 지성의 대표격으로 기억한다. 신문명을 소개하고 여행길에서 겪는 수만가지 에피소드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기행문적인 요소를 가미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시장통의 시끄러운 소동에서, 때로는 고독의 원천적 힘을 느끼며 만물의 법칙과 정치적 윤리의 진리를 추구하는, 아마도 그것은 같은 길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길이 되듯, 연암은 그렇게 자신이 추구한 진리를 찾아 길 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말대로 열하일기가 '시공을 초월하여 문장쓰기의 바이블'이 되는 이유이고, 현재에까지 많은 분야에서 연암의 글을 인용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서유기. 치키치키차카차카쵸코쵸코촉 이라는 도술 주문이 익숙하듯, 우리에게 친숙한 책으로 많은 이들이 어렸을 적 동화책으로서 한 번은 접해 봤을 듯 하다. 하지만 등장 캐릭터가 주는 변형적 이미지 - 손오공의 럭비공 같은 말썽과 저팔계의 무식하면서도 우직함, 사오정의 불통과 삼장법사의 소심함에 익숙한 터라 서유기가 주는 근원적 의미를 현재에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서유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묵직한 의미를 던져 주는 책이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때로는 권력을 손에 쥐고 분노와 리더십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과 4명의 주인공이 여행을 하면서 겪는 수많은 유혹과 난관도 서역이라는 의미가 마음 속 해탈을 전제로 도달 가능한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은연 중에 마음에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돈키호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도 문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에 착목하면 현실이 증발되고 현장을 틀어쥐면 시야가 한없이 협소해 진다'는 말을, 출신과 성격 등 극적으로 대비되는 돈키호테와 산쵸라는 인물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문학이라 정의할 수 있을 듯 하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 모를 정도로 어울림과 맞섬이 반복되는 갈등구조는 결코 어느 한 편이 서지 않는 세르반테스의 작가적 성향-통찰이 중요하다는 의미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개그적인 요소와 함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만화로 친숙한 미국 기행 또는 풍자문학의 정수. 일상에서 벗어난 헉이 겪는 모험으로 흑인이라는 피부색의 대비 만큼이나 서로 다른 친구를 만나 자신이 몸담아 온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생체험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니, 길 위에 몸을 싣지 않고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가치라 할 만 하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유쾌한 전복이 있지만, 서로 대비되는 헉과 짐의 우정과 신의을 유지하는 자세는 부패한 물질사회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스인 조르바. 인간 자체를 자유로 정의하며 삶 속에서 자유를 찾아내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찾아내는 경계인 조르바에 대한 글로, '쓰는 그림'이라 표현할 만 하다. 때로는 식욕과 성욕으로 대표되는 인간 본성에 충실하지만 결코 트릭을 쓰지 않으면서 우리가 믿는 국가, 신, 공동체의 위선을 고발하기도 한다. '자유가 곧 여행'이라는 말의 의미를 '인간 자체가 자유'라는 조르바의 말에서 찾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걸리버여행기. 가장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소인국과 거인국으로만 알았던 나의 무지함에 일침을 놓은 책이다. 말 그대로 여행기로 볼 수 있지만, 여행 속에서 그려내는 세상의 모습들이 설령 그것이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세상과 묘하게 닮아있는 풍자문학의 걸작이라 할 만 하다. 소인국과 거인국에서는 현실의 정치를 와이드비전과 클로즈업으로 묘사하고 천공의섬 라퓨타에서는 야후, 인간 문명 자체를 하잘 것 없고 문제많은 것으로 그려낸다.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와 왜 풍자문학의 대가인지 알 수 있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걸리버 여행기는 풍자로서 끝내기 보다는 걸리버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옴으로써 풍자에 대한 앞으로의 변화를 추측하게 만드는 여행기 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책을 덮으면서 이 책이 왜 <로드클래식>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작가가 그려놓은 클래식 로드를 따라걷다 보면 머리 쭈뼛한 감동과 마음속 한 편을 찌르는 뜨끔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 이 사회에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가장 근원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치유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직설적 화법이 아닌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빌려 전달하는 형식이다.
진리를 찾기위한 여정은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어느 길에 어떻게 오르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로드클래식>이 그 해답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