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언론을 다시 생각해 보다

뉴스 체널을 돌리며 알렝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다시 생각하다

by Justin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5년에 한 번 있는 공식적인 정치의 계절로 명명하여도 누구나 인정하는 시기이다. 정치가 바빠지는 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기관들이 바쁘게 돌아가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분주하게 자신의 입지를 쏟아내고 있는 곳, 바로 언론이 아닐까?


이전에도 같은 대답이었을것 같지만, 누군가 나에게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칫거리가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서슴없이 언론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성향이 강해서도 아니고 소위 트러블 메이커이기를 자처해서도 아니다. 다만 뉴스채널에서 전하는 내용들을 볼 때 그 속에 숨어있는 좋지 못한 의도가 너무나 눈에 많이 띄기 때문이다. 아주 검고 음흉한 의도가 내포됨을 짐작할 수 있는 뉴스가 너무 많이 주위에 널려있으니 말이다.


알랭드 보통. 이 젊은 철학자의 이름은 지금까지 접한 책들의 곳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그가 직접 쓴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사람들에 대하여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명석한 분석을 해 내는 작가'라고 알았던 만큼, 저자가 뉴스와 언론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조금은 의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뉴스=정치적 시선'이라는 등식이 우리 의식속에는 은연중 흐르고 있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탐구하고 글을 써 왔던 저자가 뉴스의 본질에 대하여 언급한다는 것은 기존 알고 있었던 저자의 시각과는 한 발짝 떨어진 실천적인 측면이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저자가 진단하는 뉴스와 언론의 실체는 우리가 걱정하고 분노하는 그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뉴스의 본질이 본연의 궤도에서 벗어나 얼마나 이탈되었는가가 나의 직관을 뛰어 넘어 너무도 명쾌하게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뉴스,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적으로 가장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 자신인지 모른다는데에 있다. 더욱 심한것은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알아차리는 순간, 궤도를 수정하기 보다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온갖 사건과 사고들을 다루면서 자신에게 오는 대중의 시각을 철저히 분산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하지도 않은 연애의 특종이나 해외의 사건들을 크게 다루면서 대중의 관심을 몰아가는 것은 애교에 가깝고, 정치적 사건을 덮기 위해 다른 정치적 사건을 공론화 시켜 일명 '물타기 전술'을 취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거기에 객관성, 사실의 전달이라는 명제를 보도의 형식에만 인용할 뿐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사건을 다루고 있는지 철저히 속이는 것까지 더한다면 언론은 그 의도 하나만으로 대중을 기만한 법정 최고형을 받기에 충분하다. 모든 일에는 '의도'가 제일 중요하다는 칸트의 명제를 되새겨 보면 확실하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인정한다면, 어쩌면 '객관성', '사실의 전달'이라는 말이 다소 무의미것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정치색을 드러내면서 서슴치 않고 글을 써대는 것이 만천하에 공표하면서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의 전달, 정론만을 추구한다는 메이저급 뉴스는 의문에 대한 철저한 책임회피를 일삼고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을 피상적으로만 다루며 과정의 문제점보다는 결과의 전달에 집착한다. 그리고 관음증적인 관찰만이 언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강변한다.


알랭드 보통이 진단하는 이러한 뉴스의 모습들은 뉴스가, 언론이, 스스로 정치세력화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 권력의 가장 큰 범주를 장악하면서 그것을 이용해 권력과 거래하는 순간, 뉴스가 추구하는 객관성, 사실의 전달이 참인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실현 불가능의 거짓 명제로 후퇴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과거 종교가, 예술이, 경제가 정치와 결탁하여 좋은 마무리를 한 적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십거리를 양산해 내는 샐러브리티 뉴스에서, 경제적 평등화 보다는 이권을 거머쥐고 있는 소수 세력들의 경제관을 전파하는 경제뉴스를 지나, 피해의 모습들을 클로우즈업 하며 우리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재난 뉴스와 사실을 왜곡하고 본질의 은폐하는 언론을 보면서도 우리는 너무도 무관심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알랭드 보통은 ;탱크를 몰고 뉴스 본부로 돌진해 없애 버리는 것이 낫다'고 까지 말할 정도이니 그 문제점이 우리 사회 곳곳을 얼마나 심각하게 멍들게 하고 있는지 짐작할 만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세상 일에 너무 무관심하고 혹시 모르는 자기와의 이익과 결부시키며 본질에 눈을 감으며 살아온 것은 아닐런지... 일에 바쁘고 치이고, 먹고 사는 일에 힘들어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순간, 우리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찰나의 순간, 의뭉스런 누군가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드는 뉴스를 양산해 내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그것을 떠나 온 길이 너무 멀어 돌아가는 길이 만만치만은 않을 것 같은 생각은 나만의 자괴감일까?


먼 이국 땅에서 돌아온 정치의 계절 고국의 뉴스 채널을 돌려보며,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는 예외성을 오늘도 확인하며 베트남산 쓴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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