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으며 생각해 보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왔는지 모르는 바이러스 인한 고통속의 지금. 자유를 외치면서도 자유의 본질에 대해 눈을 감는 지금.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비윤리로 야기된 문제로 심각해 지는 지금, 물질 사회에 내재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빈부 격차의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고착화 되는 지금.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 과연 역사는 현재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까?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 하다. 역사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이한 지침서가 된다는 것에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는 못할 듯 하다. 서양세계의 그리스, 로마, 이슬람 역사가 그랬고, 중국, 한국의 동양 역사가 그랬으며, 부족단위에서 출발한 역사의 범주가 과학의 발달로 인류와 우주 전체로 확대 되었지만 역사의 필요성과 목적에 있어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크게 변한것은 없다. 그런 역사를 바라보면서 같은 목적이더라도 어떤 형태로, 어떤 기법으로 쓰느냐에 따라,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과거의 역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역사의 역사>에서 다루는 역사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다. 작가가 텍스트에 중독될 만큼 활자를 해독하는 능력이 탁월한지라. 작가 유시민 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인 듯 하다. 신화의 상징 그리스 역사에서 시작된 역사의 역사기록은 시간의 흐름과 기록의 변천사를 따라 내려오다, 급기야 '정치와 역사', '과학과 역사'을 연결시키며, 인류 전체와 우주로 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부족단위 작은 범주에서 역사는 인간의 시야가 넒어지는 만큼 온갖 지식을 활용해 역사를 끄집어 내 기록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고, 급기야 생태계를 파괴하려는 '사피엔스'의 행위를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의미인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언급하며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표현으로 마무리 짓는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
인간의 모습과 사회의 부조화를 보여주는역사서를 통해 현재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기를 바랬던 역사 기술의 시조 <역사>의 '헤르도토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투키디데스'. 신체적 신분적 한계를 넘는 자주적 시각으로 정치권력, 사회, 제도, 법률, 예술 등 인간의 모든 문화 양식의 상관관계를 기술한 <사기>의 '사마천'. 권력자의 시각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군주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주류가 아니었던 이슬람 세계를 부각시킨 <역사서설>의 '할둔'. 역사는 오직 사실의 기록이어야 한다는 해부학적 관점으로 역사를 기록했으나 서사의 부족으로 후대의 관심을 받지 못한 54권 역사 기술자 '랑케'. '랑케'와는 반대되는 시각으로 역사와 철학은 '사회변혁의 도구'로 바라보고 역사의 주변인이었던 노예, 농노, 농민, 노동자 등을 역사의 주역으로 소환, 역사발전의 법칙을 도식화한 <공산당 선언>의 '마르크스'. 민족의 단결과 대외 투쟁의 결속력을 다지고 민족해방을 위해 역사를 기술했던 '박은식'과 '신채호' 선생.
시대와 공간적으로 제한된 접근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재평가하여, 역사서로서의 가치와 한계를 동시에 지닌 역사 교양서적으로 평가받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E H Carr'.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서구 중심의 직선적 문명발달에 반대하여 전 세계 문명의 비교행태학을 도입한 <서구의 몰락>의 '슈펭글러'. 전 세계 문화권의 흥망성쇠를 연결하여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패러다임으로 기술하고 '토인비'의 문명 '역사발전론'을 현실정치로 적용한 <문명의 충돌>의 '사무엘 헌팅턴'. 그리고 문명의 지속발전한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한 과학자의 역사책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정보와 과학적 저식을 통해 역사 서술의 단위를 인류로 확대시키고 역사의 과학화와 객관화를 가능케한 역사학자의 과학책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까지...
지금의 시대를 역사에서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역사 속에서 현재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전제한다면, 지금의 역사는 과거 편협한 이기주의로 인한 사회적 갈등, 전쟁 그리고 인간성의 파괴 등 <역사의 역사>에서 참고할 만한 것은 충분하다.
또한 과학을 통해 생활이 더욱 편리해지고 문명의 교류가 활발해짐과 동시에 나타나는 자만심과 자연에 저항하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신의 섭리'로 여겼던 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데우스'가 되기 위한 도전에 대한 자연의 응전으로 비치지는 않는지, 항상 현재의 역사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잘 짜여진 역사 패키지 여행을 마무리 하며, 이제는 우리가 역사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자유여행을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유시민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넒은 지식,글쓰기의 태도나 문체도 그렇지만, 책의 일부 텍스트를 인용해 보자면, 작가는 '창조적 소수자'로서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권력의 중앙에서 보여 준 활동들은 그런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고, 어느 순간 다시 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서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가 역할에만 국한된 활동을 자세를 보인 점은 기존 정치세력과는 조금은 다른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흡사 토인비가 사회의 혼돈 이유를 '창조적 소수자가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됨에 따른 저항을 원인으로 보았듯이, 작가의 스스로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자신의 힘을 내려놓음으로써 부지부식간에 생길 수 있는 문제꺼리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자기 검열의 일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