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가 민주를 탐할 때, 스티븐 레비츠키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몇 번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난 후에 생긴 일이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정치적 의견에 따른 소심한 반항으로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낯 부끄러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자행된 정치적 일탈에 무감각하지 않게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는 심각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라는 생각은 정치적 색깔을 떠나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거라 생각했기에, 예의 바르지도 않고, 지식이 뛰어나지도 않고, 또는 눈치라도 있지도 않은, 지배와 군림과 흑과 백, 견제와 균형 따위는 안중에 없이 자기만을 위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정치적 아웃사이더'에서 일략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냐는 '한국적 초스피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기존 정치계에의 레드카펫을 밟은 신인 정치인은 곧바로 자신의 무모한(?) 철학을 힘과 권력을 배경으로 실행에 옮겼고, 궁극적으로 계엄이라는 극닥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그를 픽업한 정당는 그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愚를 범하며 정치적 철학이 부재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난 후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의 이 책을 접하면서,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가 이렇게 한 순간 몰락의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 흐름과 함께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은 미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분석으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민주주의를 어느 나라 보다도 빨리 정착시키고 발전시킨, 정치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그동안의 정치적 룰을 깨고 나타난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방인이 정치적으로 등장하면서 겪는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 징후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트럼프의 일탈적 행동들은 은 그가 저지른 수많은 민주주의 파괴 행위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그 단편적인 모습만 봐도 우리는 그를 '또O이' 또는 'O친O'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고, 놀라운 것은 그의 그런 모습들이 세상에 유일한, 유니크한 것이 아닌 그동안 수없이 흐른 정치적 역사 속에서 그는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 또는 인기 영합 포퓰리스트의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즉, 세계 어디에서나 민주주의의 위기는 반복되어 왔으며 이러한 몰락의 전조 현상이 나타날 토대가 조금씩 생성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대해 민주주의 탄생과 수호에 대한 맹목적 자부심과 정치적 변화와 독재의 위험인물에 대한 안일한 태도의 대가로 우리는 트럼프의 친척 뻘되는 또 하나의 'K-독재' 코스프레 정치인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2023년에 들어와 알게 되었다.
저자의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세상은 정말 좁지만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 정치사를 배우면서 접했던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독재자들과 우리가 다르다고만 생각했고 그들보다는 우리가 정치적으로는 훨씬 숙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거나, 정치 경쟁자를 부정하여 경쟁자를 매국노 또는 반국가적 세력으로 낙인을 씌우는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한 반대를 철저히 억압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폭력을 조장하거나 용인하는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모든 모습들은 정치적 변방인 아프리카, 남미에서 뿐만아니라 미국의 트럼트에게도 찾을 수 있는, 역사 속에서 항상 반복되어 왔던 모습이다. 결국 국가와 대륙과는 상관없이 독재는 같은 정치적, 법률적 토양 속에서 사회적 무관심과 맹목적 추종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우리나라로 한정해서 본다면, 80년, 90년대 혼돈의 정치사적 강을 헤쳐오면서 극복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바뀌었고, 민주주의적 장치로 사용했던 많은 민주 절차적 도구들이 우리를 향해 다시 칼날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데 무디었다. 대중의 의식이 집단적 이익의 '공유'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향유'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무시했고, 세대가 바뀌면서 흐릿해져 가는 지역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 걱정하면서도 섣부른 낙관을 펼쳤다. 그러한 정치적 변화와 변하지 않았던 지역적 토대를 발판으로 정당은 정반합의 갈등 조정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아군과 적군의 대립적 구도가 심화되어 정권창출이라는 정치목적형 야욕이 결국 정치적으로 나타나지 말아야 할 돌연변이를 우리 정치사에 등장시킨것이다. (물론 아무도 예상못한 계엄령 선포로 자멸의 길을 앞당겼지만, 독재의 시간이 줄어든 것은 계엄이라는 용어에서 주는 이미지는 그동안 정치적 변혁기를 거쳐온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대항의 DNA가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본다. 만약 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두지 않았다면 우리의 민주주의에 더욱더 깊은 생채기를 냈을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국민에게 최종 책임을 묻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는 현실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그 대가가 민주주의 추락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양한 삶을 사는 국민들이 일방적으로 감내하기에는 가혹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민은 언제나 약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적인 책임은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집단인 '정당'에게 민주주의 문지기 역할을 주문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자 성향이 있는 정치인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자정 기능을 가진 '건전한 정당'으로서의 역할이 우선하야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당 내 의견의 다양성과 견제 장치, 오랫동안 이어져온 정치적 규범에 대한 준수, 정당대회와 같은 절차적 정당성의 유지 등은 아주 단적인 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 문법과 수사에 어긋난 정치인이 생겨나는 것을 정당 내에서 걸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문지기로서 정당 역할에 한계는 있다. 정치 칼럼이스트 강대호의 글을 인용하자만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습들로서, 기성 정당과 포퓰리스트와의 연결,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 선거 패배 정당의 음모론 제기와 선거 불복,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동일한 모습으로 상호 비방하는 행태를 보임에 따라 국민들은 그 진위를 가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는 모습을 버리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미국과 중국을 두고 벌이는 여야의 대립, 내란과정에 보인 정치적 갈등과 관련자들의 광범위함, 탄핵과 파면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길거리를 떠도는 또 하나의 세력들, 돈벌이와 대중적 인기에 편승한 언론과 글쟁이들의 모습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근원적 실체에 대하여 깨닫는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사람답게 잘 살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태어난 '정치적 이데올로기'이자, 자본주의의 발전과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준 '경제적 이데올로기'로 중의법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독재자들이 독재자 본인의 이익만을 쫒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반면, 이후 등장한 미국, 한국, 유럽의 독재 성향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은 감추고 정치 전면에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독재 방식이 정치와 경제를 교묘히 혼합한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시 해야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이해한 결과다.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오자. 국민의 참여로 독재자를 끌어내린 전력을 가진 'K-민주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무너지는 모습이 또 한 번 나올 위험은 없을까? 아마도 그것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어려울 것 같다. 진보나 보수나, 진보의 탈을 쓴 보수나, 보수의 탈을 쓴 극우나, 정당 간 대립은 계속될 것이고, 국민의 정치적 입김은 점점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 변화를 잘 읽어내는 정치인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독재의 싹을 지닌 정치인이 무대로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기 떄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와 현재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 참여형 K-민주주의를 어쩌면, 두 번 세 번 계속해야 하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은 정치적 선택에 있어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살피고, 청산해 나가는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만이 있을 뿐...!
스티븐 레비츠키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 책은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독재자 출현에 대한 역사적 당위성과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대입해 보는 좋은 기회를 얻게 해 주었다. 연대와 화합, 다양성의 존중, 상호 관용과 정치적 규범과 관습에 대한 예우, 민주주의 자체 수호를 이한 빅텐트 등은 정치적으로나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반복해서 해 나가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났을지 모른다. 공짜로 누릴 민주주의는 없으니까 말이다.
커버이미지 : Marija Zaric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