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맞이하는 자세

반송 불가능한 슬픔의 의미 탐구, 정호승 시 '택배'와 '녹명(鹿鳴)'

by Justin

#. 인간이 맞이할 근원적 슬픔에 대하여


정호승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를 접하면서부터이다.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조용한 관조 속에서 인생을 가로지르는 수없이 많은 감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시'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더없이 무서운 것이었고 범접할 수 없는 것임을 항상 느끼며 살아왔다. 젊어서는 시인의 말처럼 '살아갈 날이 더 많아'서 인간이 가진 숙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이 들어서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가 묵시적으로 강요하는 '쿨함'과 '강함'에 압도당하며 그것을 애써 부정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택배로 왔다' 시집 속 '슬픔'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인간 숙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택배'와 '녹명' 속에서 그 슬픔의 의미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 반송 불가능한 슬픔을 맞이하는 자세


정호승 시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차분하고 아련한 것 투성이다. 정적(靜的)이라고 할까? 외로움, 고독, 슬픔, 그리움, 기다림, 실패, 상실, 고통, 종교, 그리고 죽음. 이런 이미지 속에서 정호승 시인은 인간 숙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올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아주 구체적고 일상적인 말들이다. 떨어짐, 물통, 꽃, 택배, 소금, 모닥불, 별똥별, 녹명과 같이 인간의 감각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소재들 속에서 추상적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들을 거론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은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슬픔으로 좌절로 연결되기보다는 이제는 힘내서 받아들일 마음의 단단함을 준비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택배로 배달되어 온 슬픔을 맞이할 수 있게 말이다. 이런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시집의 모든 시들이 그러하지만, '녹명'과 '택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 슬픔이 '녹명'을 지나 '택배'로 왔을 때


모든 사람은 반드시 자식이 될 순 있지만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본질적인 슬픔에 접하는 것이 바로 자식이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기억과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녹명(鹿鳴)'은 먹이를 찾은 사슴이 배고픈 다른 사슴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문득, 아련한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우리의 모습과 함께 '이제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라'라고 소리치던 어머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나의 기억이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 기억 속에는 비슷한 녹명이 환청처럼 들리리라 믿는다. 그러한 그리음, 그리고 그리움을 지나쳐 슬픔이 택배로 도달되었을 때, 어머님에 대한 기억은 인간 근원적 슬픔의 첫 번째 장으로 기억된다.


이후 시인의 말처럼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이에 들어 어느 순간 택배로 배달되어 온 슬픔을 점점 더 많이 맞이하게 되는 숙명을 맞이한다. 어머니로 매개되는 슬픔이 이제는 본인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머님, 친구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점점 가까이 오는 근원적 슬픔은 먹이를 찾아 부르는 사슴의 울음 같은 어머니의 부름처럼 '녹명'으로 기억되어 슬프고 다시 나에게 부지불식 중에 '택배' 형태로 찾아와 슬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겨우 밥이나 먹고사는' 나에게'까지' 찾아온 슬픔을 맞이하기 전, 먼저 슬픔을 맞이한 수없이 많은 인간들에게 연정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는지...


어머님을 기억하며 '녹명'을,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 찾아 올 슬픔을 기다리며 조용히 '택배'를 다시 읽는다.



슬픔이.png



헤드이미지 : Samuel Austin on Unsplash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짜로 누리는 민주주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