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데 왜 포기해

by 빠른귀

요즘 나는 주변에서 결혼 안 할 거냐는 말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다. 취업난에 허덕이다 겨우 200만원 남짓하는 월급으로 여윳돈을 모아가고 있는 나에게 있어 결혼은 너무나도 먼 얘기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주위에서는 나를 장가 가라고 부추기는 탓에 진절머리가 나기 일쑤이다. 입사한 뒤에 자리도 잡았고, 허우대도 멀쩡하니 이제 연애하고 결혼하면 딱이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일찌감치 결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이외에 누군가의 인생까지 떠안으면서 살 정도로 여유롭지 않고, 앞으로도 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혼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 때까지도 나에게 있어 연애나 결혼 같은 것들이 통과의례처럼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 땅에 내 두발을 온전히 딛고 서있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막막했다. 공부에 매달리느라 허비된 시간은 벌써 4~5년이었다. 심지어 허비라는 표현에서 짐작했겠지만 그 공부의 결과가 원하는 목표의 직업을 얻는 데까지 미치지도 못했다. 결국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며 어딘가에 자리잡긴 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향한 노력을 멈춘 상태도 아니다. 다시 어딘가로 또 뜀박질을 할 준비를 하느라 발이 거의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다. 결혼은 커녕 연애에 시간을 할애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위에서 들려오는 저런 말들은 불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사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연애가 수반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다. 취업에 매달리는 몇 년 동안 나는 이성은 커녕 친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거의 끊고 살았다. 코로나라는 핑계로 대면 만남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고, 취업 전 2년 정도는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들끼리 나누는 얘기에 전혀 낄 수 없어서 온라인에서의 교류도 일부러 반응하지 않고 넘겨버렸다. 그저 이 비루한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지만 결국 내게 남은 건 원하지 않던 결과와 파탄 난 인간관계 뿐이었다. 물론 나도 자리를 잡고 뒤늦게 관계들을 하나하나씩 회복해나가려 했지만 역시 예전만 같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제대로 된 연애는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멀어졌고, 연애세포라는 게 다 죽어버린 상태로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자신을 보니 스스로 더욱 더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컴플렉스 때문에 혹여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도 자신이 없어 다가가기 쉽지 않았고, 그렇게 혼자 고민만 하다가 며칠 지나면 또 그 사람에게 언제 호감이 있었냐는 것처럼 평온해지기 일쑤였다.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애초에 그냥 어떤 사람과 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 깊어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감이 있는 것 같다. 꼭 호감이 있는 이성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감정을 느꼈다. '노력해야지!'라는 말을 관계를 맺는 일까지 적용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연애조차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살아가다 보니 결혼은 당연히 나와 관계 없는 일처럼 생각되는 게 당연했다.


설령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 관계가 진전된다 하더라도 과연 결혼을 마음 먹을 정도로 내 경제적인 상황이 나아질까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주위에서는 다 갖춰서 결혼하는 게 어딨냐는 말씀들을 해주시고, 실제로 결혼하는 사람들을 봐도 결혼하기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건 없는 게 맞다는 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 중 한 명의 재력이 괜찮거나 부모가 어느 정도 자금을 지원해줄 수 있는 등 어느 정도 이상의 조건이 충족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가진 거 없을 때 결혼했다는 자칭 인생선배들 역시 그들의 잘난 자식들의 연봉이 얼마 이상인지, 신혼집을 어디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지와 같은 얘기들을 자랑스레 쏟아내곤 했다. 배우자의 조건이 어쩌니 하는 말들까지 나오게 되면 나보고 결혼하라는 말 안에 진정성이 담겨있는 것 같진 않았다(어쩌면 그냥 안타까워서 그러는 게 아닐까). 그저 은은한 미소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게 익숙해졌다. 작은 월급이지만 이 돈으로 어떻게 부를 증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그저 모으고, 적게 쓰고, 적당히 투자상품을 운용하는 게 다였다. 그래도 이 나이에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덕분에 월급의 상당부분을 세이브할 수 있어 생각보다 돈이 모이고 있긴 하지만 역시 동나이대 직장인들 소득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오는 정도이다. 얼마 전에 직장 동료 영애분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삐까뻔쩍한 호텔 웨딩홀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예쁘게 꾸며놓은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얼핏 들었던 결혼 소요비용에 말 그대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만약 좋은 사람을 만나 몇년을 빠듯하게 모은다 해도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상대방과 가치관이 맞아 노웨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혼자 내 앞가림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결혼보다 낫겠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잘 갈고 닦은 상냥하고 싹싹한 성격 탓에 소개를 해주겠다는 말도 종종 있었으나 들어보면 대부분은 (상대방 스스로) 혼기가 가득 찼다고 생각되어 결혼을 단기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여서 부담을 느끼고 거절했다. 내 생각에도 그리 소득수준이 높지 않고 뛰어나지 않은 외모를 가진 내가 소개받을 만한 상대방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변의 다그침에 못이겨 억지로 결혼에 박차를 가해야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가서 후회한다는 말도 이제는 별 타격이 없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어른들 말씀을 착실히 들어온 나는 나중에 '이걸 하면' 혹은 '이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라는 말을 거의 거스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이 글에서 구태여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이 나이대가 되니 결혼식에 참석하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그때마다 역시 할 사람들은 다 하는구나 싶다가도 뉴스에서 웨딩홀들이 폐업한다든지 미혼남녀의 숫자가 사상 초유라는 기사를 접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마치 주변에 자살하는 사람들은 없는데 우리나라는 항상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나는 아마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냥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벤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혼으로 인한 좋은 일들과 힘든 일들이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예정된 야근 때문에 예매하지 못했던 콘서트나 영화가 더 아깝게 느껴진다.


아마 사람들은 아직 만으로 20대에 걸쳐있는 내가 벌써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도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꽤 많이 고민했다. 혼자 지내는 생활이 길었지만 그리 외롭지도 않고, 설령 나중에 외로워진다 하더라도 내 삶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에 매달리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절대로 결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에 참석해서 행복해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결혼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단지 내 상황을 비추어 보았을 때, 결혼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의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었기에 나는 여전히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결혼을 부추기는 말들이 싹 사라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며 하루하루를 잘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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