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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일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여전히 내게 있어 이와이 슌지의 최고작

by 빠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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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이와이 슌지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그의 최고작이라고 일컫어지는 <러브레터>를 보지 못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필두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기로 시작했을 때에도 왜인지 저 영화는 그리 끌리지 않아 접하기를 미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도 호평이 많았어서 그런가 일종의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그 영화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을 보았고, 그 중 최고는 단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였다. 나의 첫 이와이 슌지 영화였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나 <피크닉>, <고스트 스프> 같은 짧지만 통통 튀는 작품들도 좋았으나 이 작품은 단순히 좋은 것 이상의 짜릿함이 있었다.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었으면…


하지만 이 작품 이후로 이와이 슌지가 점점 아쉬운 폼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져갔던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키리에의 노래>를(그것도 디렉터스 컷으로) 본 이후에는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완전하게 접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달라졌다기보다는 그의 감성이 더이상 먹히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물론 이 생각은 <8일 만에 죽은 괴수의 12일 이야기>를 보고 조금 깨지긴 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었지만 나는 이 영화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판데믹 시기를 거치며 이에 대한 영화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니멀하면서 독특한 영화의 형식도 마음에 들었고, 특히 유머가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했던 그의 예전 작품들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레 그리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이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되게 반가웠다. 거의 개봉을 앞두고 알게 된 터라 더 믿기지 않았었다. 예전에는 극장가에 신작의 비중이 줄고, 재개봉 영화들이 가득한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요즘 재개봉 또는 특별전이 열리는 게 그렇게 좋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재개봉한 뒤에 나온 리뷰들을 살펴보면 20년 전 영화임에도 지금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점이 많다는 류의 평가가 많은 것 같다. 사실 나는 다시 보면서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계속 '좋다'라는 느낌에 젖어 있었다. 설정이나 스토리나 분장, 그리고 음악까지 모든 요소들이 굉장히 빼어났다. 과연 이와이 슌지가 다시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이 영화로 글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극 중 아게하가 나비 타투를 새기는 걸 보고 최근에 있었던 일화가 떠올라서 남기고 싶었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내가 발라드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힙합이나 R&B 등 블랙뮤직을 즐겨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의외였던 나의 취향에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어쩌다보니 내가 예전에 릴 웨인이 전신에 문신을 새긴 걸 동경해서 따라하려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 상사 한 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요즘은 착한 사람들도 문신을 많이 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속으로 가다듬었고, 요즘은 모나지 않은 사람들도 패션처럼 작게 하기도 한다는 둥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나도 대학에 오면서 내가 원했던 직업 때문에 문신을 포기한 케이스이긴 하다. 지금 직장에 자리잡고 문신을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되어 오히려 이 기회에 문신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바꿔보던 찰나..


'어휴, OO는 문신하지 마. 문신충 극혐!' 내 직속 상사였던 아주 '선한' 동료의 말에 식사를 하던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고, 나도 미소와 함께 문신에 대한 마음을 접어 버렸다. 역시 아직 문신이 우리 사회에서 '좋지도 싫지도 않은' 이미지조차 아닌 거 같다고 느꼈고, 내가 속한 환경은 엔타운 같은 곳이 아니었다. 아직은 애벌레로 지내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마이 웨이'를 외치며 당당하게 나가기엔 내가 너무 소심하다. 나는 언제쯤 남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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