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었다

by 빠른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그리고 지금 붙들고 있는 안정감을 잃기 싫어서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과장된 겸손이라는 가면을 쓰기에 바빴다. 나의 배경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아깝다는 말이나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격려에 위와 같은 반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나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북돋아줬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내 자신에 대한 가능성은 저 밑바닥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한도 끝도 없이 잘 될 거라는 가식적인 말을 던져댔으니 말이다. 물론 나 역시 저 영상에 나오는 페인트공처럼 진심이었다. 그러나 역시 위선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8월은 7월보다도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휴가도 가지 못했는데 어쩌다보니 또 당황스럽게 9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에 치이기는 해도 그냥 무탈하게 지나가는 일상에 나름 만족하게 되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껏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해왔던 것들을 경험해보고 있는 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긴 하다. 그래서 더 현실의 안정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모 인터뷰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가 '나중에'이고, 가장 생산적인 단어가 '지금'이라고 하던데... 참 고민이 많아지네.

작가의 이전글걷고 싶다. "안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