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시 (예비)신혼부부의 일상 2편
빈은 창원과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는 경상도 사나이이다. 블리스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강남보다 개성이 가까운 파주의 어딘가에 살고 있었다.
빈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회학과 학생이었다. 사극 드라마를 좋아하고 쉬는 날에 혼자서 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블리스는 수학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는 산업공학과 학생이었다. 액션, 범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고 쉬는 날에는 무조건 나가 놀아야 하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파티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빈이 요금을 정산하고 계약서를 쓰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세탁기를 찾는 동안, 블리스는 트럭에 짐을 싣고 침대와 선반을 조립하고 있었다.
이렇게 기존 한국의 남녀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부숴주는 우리의 연애는 주변 사람들이 꽤나 흥미로워한다. 이번 글은 극과 극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맞추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해서 연애 좀 해봤다고 자부하는 내가 서로 맞지 않아서 괴롭다거나 관계에 대한 고민들에 해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언? 뭐.. 지적? 그런 얘기들을 담았다.
모든 내용은 아주아주 주관적인 나의 의견이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 사실 싸운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한쪽이 잘못을 하거나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닌 이상 심각해질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맞춰갈 수 없을 만큼 서로가 다른 부분들이 있으면 그 사람과는 인연이 아닌 것이니 노력하기보다는 이별을 선택하였다.
우리가 연애를 하다 보면 서운하고 기분 상하는 일이 참 많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연인 간의 갈등은 감정적이거나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지면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서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나 자신이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연애 만족도는 아주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 빈이 나의 태도가 기분 나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의식하지 않을 때, 말투가 상당히 차가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많은 지적을 받았던 부분이라 나도 고치고 싶은 나의 단점이다. 그래서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함께 해결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의 관계에, 그리고 나의 발전에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했던 정확한 말은 "하, 너는 가끔 말투가 너무...."였다. 일그러지는 표정과 시선을 돌리면서 얘기를 하는 그의 비언어적 표현들에서도 그가 기분이 굉장히 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은 나의 어떤 말투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이 한 마디로 끝난 그의 표현이었다. 그의 기분이 왜 나빴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의 행동을 개선시킬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의미 없는 감정소모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을 꽤나 자주 겪었던 나는 일단 기분이 상했을 그에게 사과를 했고, 나의 부족한 싸가지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 "내 말투가 자주 기분이 나빠?"라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너는 가끔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사가지없게 대답을 할 때가 있어."라고 답했다. 이 대답에 당연히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나도 네가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데, 네가 정확히 어떤 말들이 기분이 나쁜지 말해줘야 알지."라고 했고, 그는 "그걸 어떻게 하나하나 다 기억해!"라고 하면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워낙 화를 안내는 빈이었기에, 나 또한 이 문제만큼은 꼭 해결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가 앞으로 같은 이유로 기분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곧바로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 몇 번 더 그를 기분상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인지하고 노력해서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명확하게 어떤 게 서운하고 어떻게 고쳐줬으면 하는지 말해주기로 약속하였다.
그의 서운함에 대한 나의 대응이 상당히 기계적이고 쓸데없이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해결을 위해서 그 원인과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우리가 일을 할 때도 똑같다. 업무에 관련한 문제나 갈등이 발생한다면 해결을 위해서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이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일을 할 때는 오히려 많은 지식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관계에서는 훨씬 쉽다. 감정적인 것을 조금 드러내고 바라보면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싸움을 하다 보면 그 모습은 마치 우리네 정치판과 닮아있다. 해결할 의지는 없이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기만 한다. 상대방의 실추가 나의 이득이 되는 정치와는 다르게 연인과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성적인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면 답을 찾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우리가 친구나 썸에서 연인으로 그 사람이 끌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잘 맞아서'이다. 성격이 잘 맞아서, 개그코드가 잘 맞아서, 주량이 비슷해서 등등 잘 맞으면 좋은 것들이 많지만 데이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음식 취향이 꽤나 중요하다.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가장 맞춰가기 힘든 부분이다.
나와 빈은 다른 면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음식에 대한 취향은 정말 극도로 달랐다.
빈은 신중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보니 가끔 소심한 면이 있다. 이런 그의 성격은 흔하지 않은 음식에는 도전을 하지 않게 만들었고, 곱창이나 닭발을 선호하지 않고 처음 만났을 때는 마라탕도 '무서워서' 먹지 않았던 사람이다. 반면 나는 곱창, 막창, 닭발 등 특수부위를 굉장히 좋아한다. 10살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흔히들 먹지 않는 생간이나 선지 같은 음식을 자주 먹었고, 심지어 돼지고기 회도 먹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남들 잘 안 먹는 음식들도 잘 먹지만, 대부분 좋아하는 음식들 중 몇 가지를 싫어한다. 나는 샤브샤브, 조개구이 그리고 딸기를 싫어한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설명하지 않겠지만 각각 마땅한 이유와 사연이 있다. 또한 나는 한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한식만을 선호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자주 밥을 차려먹다 보니 요리도 꽤 늘었다. 초등학생 때 잠시 미국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입맛이 너무 잘 맞아서 한국에 돌아오기 싫을 정도였다.
반면 빈은 안 먹는 음식이 많지만 국물이 있는 음식은 굉장히 좋아한다. 칼국수, 수제비, 감자탕 등 특히 샤브샤브와 밀푀유나베에 환장한다. 낯선 조미료나 향신료가 들어있지 않은 국물류는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연애 초반에는 이런 취향들을 숨기고 지냈다. 그렇게 나는 대천 해수욕장에서 조개구이 집에 가서 사이드로 나온 떡볶이만 먹다온적도 있고, 빈은 내가 좋아하는 상도동의 닭발집에 가서 발 하나를 15분 동안 뜯고 있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취향을 밝히게 된 우리는 아쉬운 감이 있지만 적당한 합의점을 찾게 되었다. 그는 나와 함께 내장류를 먹지 못하는 대신 가끔 시장에서 파는 생간을 사준다. 그리고 그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먹고 싶을 때는 월남쌈과 다른 메뉴들이 같이 제공되는 뷔페형의 음식점으로 간다. 정말 먹고 싶은데 함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은 최대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만날 때 해소하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사실 음식 취향이 잘 맞아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 또한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서로가 바빠질 때가 있고 같이 밥 먹는 시간들이 소중해지면서 매끼를 꼭 원하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상대방과 함께하면서 그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꽤 즐겁기 때문이다.
연애를 한다는 것이 대부분 그렇다. 혼자 사는 것보다 덜 만족스럽고 덜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있어서 충족되는 부분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으로 인해서 불행함이 더 크다고 느낄 때는 당연히 돌아서야 하지만, 우리는 부족한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들에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와 빈은 참 다른 사람이다. 오히려 그래서 서로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기까지는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서로를 인지하게 만들어 주는 인연, 적당히 서로를 알아갈 수 있도록 접하게 해주는 상황,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는 타이밍까지 이루어지기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확률은 계산해 보자면 정말 낮다. 어쩌면 정해진 운명 같은 게 정말 있는 걸 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감사함을 가지고 더 나은, 더 행복한 연애를 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