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변화의 갈림길 사이
최근에 <나의 해방 일지>란 드라마를 굉장히 재밌게 봤다. 요즘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손석구 배우의 매력도 한몫했지만,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해방이란 단어였다. 학창 시절 역사책 속에서만 자주 접했던 단어였는데 현대인들의 일상과 엮이니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와도 한 번 연결해보기로 했다. 이런 신선한 주제는 놓칠 수 없으니깐!
‘내가 해방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해방 클럽> 동호회에서 자신이 해방되고 싶은 것에 대해 주저 없이 말한 것과는 달리 나는 바로 떠오르진 않았다. 주인공 염미정만큼 현재 내 일상이 팍팍하고 우울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래서 조금 더 깊게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엄청 분석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내가 평소에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며, 어떤 순간에 짜릿한 기쁨을 느끼는지 스스로를 관찰해보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해방되고 싶은 건 지금 나를 둘러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다. 나는 뭐든지 확실한 걸 좋아한다. 애매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는 헷갈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쉽게 불안해지곤 한다. 그렇다 보니 현재 나의 경험치로 판단하기 어려운 판단의 갈림길에 놓이면 그때부터 내 일상의 중심은 그것이 된다. 고민의 갈림길에 설 때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와 같은 어쩌면 크게 의미 없는 질문도 계속 던진다. 어차피 판단은 내 몫이겠지만 유용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함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주변 지인들이 바라보는 나는 꽤나 도전적이고 실행력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고민의 시간들이 있다. 나는 일상 속의 변화를 쉽게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위해 머릿속에서 쏟아내는 생각들은 가끔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기도 한다. 가끔은 나의 이런 성향에서 해방되고 싶다. 마음 가는 대로 그냥 저질러 보는 대담함을 가져보고 싶다.
요즘 나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변화의 갈림길 사이에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고민 점이다. 이틀 전, 취업 준비생 시절 내가 한 때 갈망했던 대기업 디지털 마케팅팀에서 이직 제의가 왔다. 직무도 지금 하는 일의 연장선이고, 심지어 주 4.5일 출근이란다.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게도 6년 전의 나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수락했을 선택지를 지금은 고민하고 있다. 결국은 회사를 다니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지금 내가 손에 쥔 황금 카드를 버리고 도전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고민하게 된다. 2년 차 때까지는 대기업 간판을 동경할 때도 있었다. ‘나 여기 마케터야’라는 말 한마디에 무게를 더 뒀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가 조금은 더 수월하게 증명이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7년 차 마케터로 한 회사에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놓고 보니 이제는 안다. 결국은 내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무언가에 대해 후회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누군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듣는 건 더 싫다. 그만큼 스스로에게 대한 실망은 더욱더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선택지 앞에 설 때면 머릿속에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근데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결국 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선택이란 건 없지 않을까? 애초에 결국 우리들의 인생에 불쑥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들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란 생각도 든다. 어떤 선택을 한 이상, 설사 조금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가 내린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해방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해방이 된 듯 안된 듯 한 기분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의 성향에서 온전히 해방될 순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미래에 내가 내릴 판단에 후회 없이만 살아보자.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조금만 더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