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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pr 19. 2020

가부장제, 재미없는 소꿉놀이

[1]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우리는 아이를 가지면 인생에서 은퇴하고, 모든 걸 그만두고 자리를 잡아야 했지.

그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서로를 벌주고 있었던 거야."

-에이프릴의 대사 중에서


*스포일러-결말 포함*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3378

넷플릭스 시리즈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두 개 고르라 하면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스포트라이트>를 꼽을 것이다. 여러 고민을 할 시간이 많던 시기에,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나에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영화였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로 유명한 샘 멘데스이다.

<줄거리>

아름다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중산층 가정.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프랭크, 가정주부인 에이프릴과 귀여운 두 아이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안정적인 가정이다. 연기를 공부했지만 큰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에이프릴은 행복하지 않다. 녹스 빌딩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프랭크도 마찬가지.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은 프랭크가 말했던 '파리에서의 삶'을 떠올리고, 이 곳에서의 공허한 삶을 정리하고 파리로 떠나 프랭크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할 시간을 주고 자신은 비서로 일하며 생활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주변의 비웃음을 하기만 한다. 잠시 새로운 삶이라는 꿈을 꾸던 그들(특히 에이프릴)에게 기존 삶의 관성은 새로운 걸림돌을 준비한다. 곧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에 대담하게 일을 해나가던 프랭크는 새로운 부서에서 더 높은 지위와 보수를 약속받게 되고, 에이프릴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들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매 십 년마다 주어지는 미션처럼 우리는 대입, 취업, 결혼(하라는 강요), 자녀, 육아, 은퇴를 끝없는 퀘스트처럼 수행해나가라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그러한 지향점을 어느 정도 이상적으로 이룩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는 아이들과 살림을 돌보고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삶, 하지만 그런 소꿉놀이는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는가? 오히려 그곳에서 벗어나는 게 우리가 이룩해야 하는 혁명은 아니었을까?


프랭크는 정말 에이프릴을 사랑했을까?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의 결합을, 그중 부부로서의 결합을 가장 신성하고 완전한 것으로 다룬다. 그리고 여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정말 프랭크가 에이프릴을 사랑했을까? 나는 프랭크는 단지 '진짜 남성'으로서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로서 '여성성'을 필요로 했다고 느껴졌다.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공고하게 지켜주는 것, 그것이 프랭크의 마음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때이다.


1) "남자가 아니"라는 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프랭크
"Look at you! Look at you and tell me,

how by any stretch of the imagination you can call yourself a man!
"너를 봐, 너 자신을 보고 말해봐. 조금이라도 너를 남자라고 부를 구석이 있는지!"

굉장히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프랭크

초반에 에이프릴의 잘 풀리지 않은 연극에 대해 자꾸 말을 꺼내는 프랭크와 싸우는 장면에서 프랭크가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건, '너는 남자가 아니다'라는 한 마디였다.


2) 모린과의 관계 : 내 말에 웃어주는 여자가 필요해.

에이프릴이 집안일하는 동안..
모린을 꼬시는 프랭크

프랭크가 직장 내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대상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고 순진해 보이는 (사실상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의 직위가 그랬으니) 모린 글루브다. 이전에 학생 식당에 앉아있으면서 커플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게 있었는데, 대화 패턴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나이 많고 능숙한 척하는 남자가 농담을 하면 신입생인 여성은 이에 너무 재밌다는 듯이 웃어주는 것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이성애 관계 내 젠더 역할이구나!' 모린 글루브와 프랭크의 관계가 딱 그렇다. 재치 있고 능숙한 프랭크, 그리고 그의 기발함에 놀라며 웃어주는 (그리고 술에 잘 취하는 것 같은) 모린. 프랭크는 사실 그 '여성성'을 수행해주기만 한다면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3) 마법의 말 "당신은 남자야."

프랭크가 바람피우고 돌아온 사이, 에이프릴은 파리에서의 새 삶을 꿈꾼다. 이 계획이 프랭크에게 쉽게 설득될 리가 없다. 지금 하는 일과 터전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서 프랭크는 자기 자신을 찾고 에이프릴이 일을 한다고? 하지만 이때 프랭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의 말이 있다. "당신은 진짜 남자야. you are a man." 이에 선뜻 에이프릴의 원대한 계획을 수락하는 프랭크.


4) 에이프릴의 임신

새로운 삶을 꿈꾸던 에이프릴에게 새로운 임신은 재앙이었다. 물론 이 아이가 생긴 과정도 '우리가 처음 관계하던 순간이 내가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는 <프랭크 남자 만들어주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지만.. 사회성 말고는 멀쩡한 것 같은 수학자 존에게 마이크를 넘기겠다.

"너무 뭐라 하지 마쇼, 자기가 남자임을 입증하려고 임신시킨 건데.."

남성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나오는 주먹


5) 에이프릴의 마지막 연기, 아내 인형

아침에 일어나면 맛있는 아침밥을 차려주고, 같이 앉아서 밥을 먹으며 내 얘기보단 남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아내. 대단한 당신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하는 아내. 나를 동경하는 눈으로 나를 봐주는 아내. 이게 바로 프랭크의 소꿉놀이에 필요한 인형이다. 그리고 이건 실패한 배우였던 에이프릴의 마지막 연기였다. 상식적으로 전날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싸우다가 뛰쳐나간 아내가 하루아침에 온순하고 순수한 양이 되어있다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한다. (심지어 에이프릴은 연기를 공부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건 상대방이 감정과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서야 가능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완벽한 여성성을 연기하는 에이프릴
감동(만) 받는 프랭크



에이프릴 : 사랑을 질식시킨 가부장제

샘 멘데스 감독 자체에게서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가부장제 하 결혼제도의 부조리를 굉장히 세심하게 파헤치고 있다. 가부장제에서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사람들, 영혼 없이 돈 벌어오는 남자, 아이를 낳고 남편을 의무로서 사랑하고 가사에 인생을 바쳐야 하는 아내. 에이프릴은 굉장히 '삶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가사노동, 꿈을 꿀 수 없는 삶은 덫(초반의 싸움 장면에서 trapped-덫에 갇혔다-는 표현을 쓴다.)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은 결국 죽은 삶보다 나을 것이 없다.

1) 덫에 걸렸다

초반의 싸움에서 에이프릴이 자신의 상황을 표현한 대사는 자신을 덫에 가둬놓고, 마음대로 휘두른다는 표현이었다. 이에 프랭크는 무슨 덫이냐며 화를 낸다. (앞에 언급)


2) 아이들을 낳고 키울 의무

"우리가 여기 이사 와서 살게 된 건 내가 임신해서였어.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아이가 실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둘째를 가졌어. 언제까지 이래야 해 프랭크? 넌 정말 세 번째 아이를 원해?"

"진실을 말해 프랭크, 다들 진실이 좋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우리는 그걸 외면하지.

누구도 진실을 잊을 수는 없어. 거짓말을 하는 데 훨씬 능하지만."


파리에서의 삶을 꿈꾸던 중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에이프릴, 프랭크는 에이프릴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 없애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이프릴은 이에 계속 사과하고, 프랭크에게 정말 진심으로 아이를 원하는지 묻는다. 이때 프랭크는 에이프릴에게 '정상인'이라면 자신과 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한다. 너는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느냐고, 세상의 어떤 엄마가 이러냐며 '어머니'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외면하려는 에이프릴을 질책한다. 프랭크는 끝까지 자신이 진짜 아이를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에이프릴의 몸이지만 그녀는 선택할 수 없다. 아마 임신 중절권은 결혼했을 경우 더더욱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다. (결혼도 했는데 왜 안 낳아? 당연히 낳아야지.) 아마 반대의 경우도.(임신했다고? 결혼해) 이는 사실 임신 중절권이 포인트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끊임없이 '아이를 낳아줘야 하는' 아내의 모습은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3) 남편진심으로 사랑해야  의무
이제 임신 12주이니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프랭크는 즐거워 보인다. 와서 질척거리자 에이프릴은 말한다. '내가 관계를 안 해서 이유가 궁금한 거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프랭크는 자신이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남성성에 미친 자.. 그 와중에 임신중절 이야기를 꺼낸 에이프릴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것 같다는 핑계까지 댄다.
"fuck who you like" "그냥 아무나랑 자."

에이프릴은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은 프랭크를 사랑하지 않으니 어떻든 상관없다고. 그러자 프랭크는 분노한다.

"넌 날 사랑해! 너 자신도 그걸 알지!"

"난 널 사랑하지 않아. 난 네가 싫어. 파티에서는 날 웃게 했었지만 이젠 꼴도 보기 싫어."


근데 그러는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사랑하나?

개인적으로 에이프릴은 사랑하지 않는다는데 자꾸 '너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외치는 프랭크의 집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서적인 돌봄, 사랑을 제공해야 하는 '여성'이 그 의무를 거부하자 분노한 프랭크는 외친다.

"넌 텅 빈, 여성의 껍데기일 뿐이야!"


소꿉놀이의 결말

"법, 의학,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 이 모든 것들이 아무리 규제가 느슨해졌다 해도 즉흥성이란 우리의 성생활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다."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에이프릴은 이제 프랭크를 사랑하지 않는다. 유일한 희망도 사라졌고, (물론 파리로 떠났다고 해서 마법처럼 모든 것이 행복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꿈꿀 수 있다는 것, 희망은 사람을 살게 한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의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로맨틱한 관계의 대표작인 <타이타닉>의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프랭크)와 케이트 윈즐렛(에이프릴)을 캐스팅했다는 말도 있었다. 결혼 생활은 결국 그들의 사랑을 질식시켰다. 그들의 삶은 혁명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에이프릴은 삶을 버리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에이프릴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의도한 것인지, 결과적으로 죽은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는 이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의도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부장제 비판을 마치 사랑의 부재라며('남편을 사랑하지 않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오히려 가부장제가 사랑을, 섹슈얼리티를 죽인다. 영화에서는 에이프릴이라는 여성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서 사랑하기보다 '남성-여성'역할을 맡아 소꿉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가부장제 한 가지는 아니었다. 다른 한 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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