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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pr 26. 2020

가장 일으키기 어려운 혁명

[2]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 헨리 데이빗 소로, <월든>

*스포일러-결말 포함*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3378

넷플릭스 시리즈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두 개 고르라 하면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스포트라이트>를 꼽을 것이다. 여러 고민을 할 시간이 많던 시기에,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나에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영화였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로 유명한 샘 멘데스이다.

<줄거리>

아름다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중산층 가정.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프랭크, 가정주부인 에이프릴과 귀여운 두 아이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안정적인 가정이다. 연기를 공부했지만 큰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에이프릴은 행복하지 않다. 녹스 빌딩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프랭크도 마찬가지.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은 프랭크가 말했던 '파리에서의 삶'을 떠올리고, 이 곳에서의 공허한 삶을 정리하고 파리로 떠나 프랭크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할 시간을 주고 자신은 비서로 일하며 생활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주변의 비웃음을 하기만 한다. 잠시 새로운 삶이라는 꿈을 꾸던 그들(특히 에이프릴)에게 기존 삶의 관성은 새로운 걸림돌을 준비한다. 곧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에 대담하게 일을 해나가던 프랭크는 새로운 부서에서 더 높은 지위와 보수를 약속받게 되고, 에이프릴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들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be-everything/25


가장 어려운 혁명


앞의 글에서는 <레볼루셔너리 로드> 속의 가부장제를 다뤘었는데, 사실 당시의 내가 결혼의 문제보다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관성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저항'이었다. 물론 그 관성적 삶의 방식에서 결혼과 가부장제는 커다란 한 축이다. 안정적인 직장, 결혼, 육아, 가사 노동이 반복되는 생활에 대한 저항은 분명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혁명이라고 불렀던 것은 아닐까. 다만 그때의 나에게는 결혼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로 와 닿지 않았다. 나에게는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험공부에 찌든 삶’,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투자되는 삶’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혁명은 물론 파리로 이민을 가는 건 아니었다. (난 큰 기업을 다니며 저축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일개 학생이었다. 나에겐 그럴 돈이 없었고, 그건 단기적인 해결책일 것이었다.) 다만 혁명은 먼 길을 걷듯 천천히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데에서 올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 과정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아 혁명을 완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몇 가지 관성적인 삶의 방식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을 아카이빙 해보았다.


나의 지향점을 이해하기 쉬운 목표로 바꿔보면 이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였다. 하루하루 노동 소득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변화는, 모두의 삶을 바꿀 이상적인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우린 인간의 지성으로는 단편적인 혁명으로 이론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경험에 봉착했다. 이는 걸핏하면 독재와 탄압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국가가 부를 좀 더 공평하게 재분배하고 모든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고 인간적인 삶을 보호하려는 시도 또한 인간의 삶을 위한 점진적 혁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시적으로는 그러한 움직임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차원에서 몇 가지 가능한 선택지를 탐구해보았다.

(1)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거나

일 하러 가는 게 일 같지 않다는 몇몇 사업가, 예술가, 연구자, 작가 등이 이런 분류에 속할 것이다. 대부분 돈이 되는 데에는 실패하기 때문에 저소득인 경우가 많고(이 일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가가 그 노동의 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품성이 그 대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는 성공하여 돈도 많이 번다. 다만 그렇게 성공하는 것은 극소수이고, 아무리 결과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긴 무명 시절, 혹은 소득이 없는 시절을 거치기 때문에 이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며, 달성되더라도 해당 아이디어, 혹은 아이템의 시장성-상품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당신이 조회수 폭발하는 웹툰 작가가 되었다면, 물론 만화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만족감을 느끼겠지만 해당 기회에 이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대중을 향한 상품성을 고민해야 하기에 100%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면만이 자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분명 마감이나 사생활 공개와 같이 고통스러운 부분이 수반됨에도, 이에 이르게 될 확률 또한 극도로 작다. (게다가 웹툰 업계의 불공정 계약과 차별, 부당한 요구 등등 당신이 초반에 겪어야 할 고통이 좀 더 크다) 100% 만족스러운 일은 없으며, 사실 그것이 우리가 온전히 지향해야 할 방향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어쨌든, 자신을 소모시키기만 하는, 지옥 같은 직업을 피하기만 해도 현대 사회에서 이 지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을 찾았다면, 축하한다.

(2) 은퇴와 불로소득 

건물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서방국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파이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찾아봤다. 나이 마흔 정도까지 미친 듯이 안 쓰고 벌어서 십억 정도 되는 돈을 만들어서 펀드에 넣어두고 그 이자로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것이라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098076

이는 사실상 자본주의라는 거대 구조 안에 더욱더 순응하는 방향으로 안착해있다. 국제 위기가 오거나 펀드 이율이 폭락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들은 꽤나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역시나 성취가 어렵고(애초에 십억을 벌 수가 있을까), 사실 파이어 족에 대한 글을 찾아보면, 직업이 변호 사거나 뉴욕에서 여러 사업을 운영할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많아 보여 내게는 현실성이 감소했다. 여기서 다소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었는데(건강을 해치는 시도 제외), 단지 이후의 소비를 위한 ‘소비 유예’에 그친다는 점은 아쉬웠다. 일하지 않는 삶의 기간을 위해 젊음을 희생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벗어난 불로소득, 그 유혹 중 유명한 방식 중 하나가 부동산 투기, 다단계나 네트워크 판매직이 아닌가 싶다. 나중엔 일을 안 해도 돈이 자동으로 벌리는 시스템이라고 유혹하는 광고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광고에 약속된 해당 이득을 보는 사람은 얼마 없다는 사실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이미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 사회로부터 (불로소득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통계에서 드러나고 있고, 이 방식이 불평등한 사회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족벌이 아니고서야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방식은 사실상 쉽지 않다.



(3) 자급자족
상품 자본주의 사회와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급자족을 실험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하는 노력이다. 과거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 자꾸 등장한다.) 현대판으로는 딜런 에반스의 <유토피아 실험>, 그리고 가볍게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꿈의 절반도 이루지 못한 채 이것이 자신이 내린, 또는 내리지 않은 선택 때문임을 뒤늦게 깨닫고 죽는다. 그리고 이들을 멈추게 한 것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이들은 사회적 기대의 무게를 느꼈고 관습의 족쇄를 벗어던질 용기가 없었다. 나이 들어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신 그 무모한 계획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릴없이 생각에 잠기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 딜런 에반스, <유토피아 실험>


짧게 소개하자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월든 숲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며(그 와중에도 빨래는 어머니에게 시켰다는 소문이 있다) 현대 문명에서 떨어져 자신의 삶과 자연, 소소한 육체 노동에 몰입하는 삶을 경험하며 쓴 책이 <월든>이다. 하지만 <월든>보다 좀 더 현대에 실행된 실험은 <유토피아 실험>에서 볼 수 있다. 딜런 에반스는 <유토피아 실험>을 통해 현대 문명의 붕괴를 가정하고, 희대의 자급자족 실험을 실행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폐쇄적인 공동체 사회의 문제점, 사실상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존하고 있었던 현대문명의 편리함 등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에게서 뺏어간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문명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홀로 일으킨 문명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룩해둔 문명보다 뛰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다만, 딜런 에반스는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개선점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계획의 오점들에 대한 분석은 갖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를 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려고 했던 바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또한 삶은 문제 제기를 통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 답은 항상 멋있지 않다


근데 절박한 게 있으니까. 내가 여기서 이걸 못 하면 취직해야 되니까. 너무 싫었죠. 저는 모든 동기가 네거티브한 거 같아요. 하기 싫으니까, 그걸 안 하기 위해 다른 걸 열심히 하는 거예요.

-이은별, <imf 키즈의 생애>


현대 소비문화는 상업적 오락에 쓸 돈을 버는 데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들이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일 규율과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탕과 도피는 문화적 금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집요하게 장려하는 덕목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누리려면 일에 더 강하게 매달려야 한다는 게 문제다. 이런 면에서 대량 소비는 일 윤리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키면서 사회가 주는 최고의 오락으로서, 골치 아픈 현실 속 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종교로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데이비드 프레인, <일하지 않을 권리>


어느 한 가지 극단을 주장하는 것은 항상 돋보인다. 혁명이 급진적일수록 해당 혁명은 쓸모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우리의 복잡하고 어려운 삶의 문제들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만큼, 복잡한 해결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나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최악은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왜 사는지 모르겠는 삶이 끝난 뒤 긴 노동시간과 마이너스 통장, 그리고 가득 찬 옷장만을 남기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작게는, 의미없는 소비를 지양하고 나의 삶에 필요한 기술을 최대한 아웃소싱하지 않으려고 한다. 화폐의 등장 이유이기도 하지만 화폐 경제는 결과적으로 과소비를 부른다. 만약 우리가 과일을 따기 위해 나무에 올라야 한다면, 그 과일을 소중하게 다룰 것이다. 하지만 돈을 벌 때의 고통은 소비를 할 때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일터에서의 고통이 소비를 부추긴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 개인에게 악순환이며, 상품 자본에게는 선순환이다.


많은 분야에서 평균보다 적은 돈을 지출하려고 노력하지만, 주거 문제는 아직도 해결하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친구랑 한 방(원룸)을 나눠쓰면서 대부분의 임금을 월세로 지출하기도 했다. 주거의 비상품화가 모두를 위한 삶에 필수적인 이유다. 새 옷은 사지 않아도 괜찮지만, 안전한 집은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추가적인 지출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놀이 공원이나 카페를 가기보단 산이나 동네 공원을 가고, 핑크 택스 (여성세)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쓸데없이 나에게 추가적인 지출을 요구하는 서비스들은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질은 낮고 비싼 여성복, 여성 전용 속옷, 피부에 바르는 비싼 독-화장품, 머리는 남자처럼 짧고 혼나면서 받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싸게 받는 미용 서비스 등)


나를 지지해주는 생각들

또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함께 냉장고를 공유하고 (이 아이디어는 people’s fridge 라는 아주 예전에 외국 뉴스에서 방영되었던 사례에서 가져왔다. 세세하게 양파 반쪽 등 남은 식자재 등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집은 가능하다면 따로 쓰고 싶다) 옷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공유하는 물품의 범위를 넓혀 효율성을 높이고 언제든 필요하면 도움을 서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런 공동체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주의’를 통해 추구하는 삶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여성주의이며, 두 번째는 미니멀리즘이다. 몇몇은 여성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여성주의가 상품화된 삶의 영역을 넓히며 뭔가를 파는 사람들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사실 수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듯 결국 이는 여성을 여러 형태의 종속으로부터 독립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그 종속의 주체 중 하나는 자본이다.(기회가 되면 길게 이야기하겠다.) 두 번째는 미니멀리즘인데, 이는 방향과 실천에 있어 크게 학문적으로 적립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 마케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정도를 받아들이고 있다. ‘수집광’이었던 과거 때문에 물건을 처리하는 데 고생을 했고, 하고 있지만 비울수록 풍요로워진다는 핵심 의제에는 크게 동의한다.


이에 더해, 최악을 피하기 위한 ‘네거티브’ 동기를 넘어서 그렇게 벌어들인 삶과 시간을 모니터와 관심 경제에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포지티브’ 동기에 대한 개발도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결국 작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누구에게나 100% 보급될 수 없고 어느정도 외부 조건(가정 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다양한 인간을 위한 사회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 작은 혁명을 일으킬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동시에 점진적이지만 거대한 혁명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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