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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02. 2020

직장에서 만나는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당해보니 고통스러웠다, 아니 당한 줄도 몰랐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이다. 일반적으로 연인 간의 학대나 조종을 일컫는 말을 이야기한다. 엄청난 파국적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경미해서 사람을 일주일 정도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정도일 수도 있다. 이런 가스라이팅이라는 말로 정말 잘 설명될 수 있는 고통이 있다. 바로 직장 내에서, 일의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게 뭐 가스라이팅 정의자의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경험은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방이 의식적으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받은 사람의 경험이 그렇다면 이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

이 사람은 가까운 사람도 아니며 매일 보는 사람도 아니다(대단해!). 높은 학위같은 것을 가진 사람이 나에게 조언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 시작이 요란했다. 그는 나에게 십 분 가까이 너는 왜 이렇게 느리냐, 다른 사람들은 벌써 많이 하고 잘 하고 있던데 너희는 아직 뭐하냐, 너 이런거 해본 적 없냐, 너 이런 거 아니었어? 같은 넘겨짚기, 대답을 하면 수십가지 주제로 돌려가며, 굳이 내가 들어도 생산적이지 않은 비하에 가까운 오지랖들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다음에 또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겠다고 했지만, 영 찜찜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은 계속해서 나름 나를 친절하게 대하며, 어쨌든 어느정도는 맞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은 저런 말과(비교, 넘겨짚기) 수단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나의 자존감만 깎아내렸다. 그냥 그 사람이 했어야 하는 일은 짧게, 이러저러하니 조언을 받으면 좋겠다 설명하고 약속을 잡는 것, 그 뿐이다.

그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조언을 해주겠다며 접근했다. 이전에 내가 한 업무들을 들먹이며 이런 건 의미가 없고 효과가 없다. (이전 작업에 대한 평가 요청한 적 없다. 다른 일을 하는데 필요해서 첨부했을 뿐이다.) 끊임없는 숨막힐 정도의 부정적 피드백이라는 이름의 정신적 내상을 선물했다. 그 과정에서 전문적인 용어들을 써가며 자신의 권위와 지식을 자랑했다. 때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자랑하기 위해 나에게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시간을 할애하며.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 직장이나 일과 관련된 가스라이팅은 어느정도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맞는 말과 함께 섞여서 시작된다. 교묘하게 도를 넘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실제로 어느정도 맞는 말로 포장된다. 인터넷 정의와 사례만 보면 가스라이팅은 정말로 뜬구름을 잡는 소릴 하는 악의적인 나쁜 상대방에 의해서만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약점을 공략한다고 보면 쉬울까. 실제로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는 약점을 필요 이상 자극하고 공격한다. 내가 더 생산적으로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고 주관을 잃어가게 만든다. 내가 놀랐던 점은 바로 이거다. 그런 조언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내가 처음부터 뭘 하려고 했는지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저 그 사람의 기준에서,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끼워맞추다보니 내가 원래 하려던 방향을 완전히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는 나를 스스로 의심하게 했다. 맞는 말, 내가 인정하는 말의 연장선에서 도를 넘어 자존감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 온 것이 정말 쓸모가 없다며 그와 함께 부정하게 됐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쓸모가 있나? 그 사람에 대한 다른 지식이 없어서(ex. 그 사람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다더라) 교묘한 그 말을 듣고 열정적인 피드백이라는 탈 뒤에 숨겨진 모든 은근한 맥락(나에 대한 조언 외에 그 사람의 이상하게 보여지는 행동들)을 아는 사람이 나 뿐이어서.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으면서도, '이건 내가 나에게 유리해서 상황을 곡해해서 전달해서 친구들이 내 편을 들어준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 의심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조언에 동의하니까 오히려 어느 부분에서 선을 넘었는지 구분이 잘 안 간다. 어느 부분을 버리고, 어느 부분을 받아들여야 할지 (문장 단위로 나눠지지도 않는다) 혼란스럽다. 나는 제대로 비판조차 못 받아들이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멍청이야라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느 정도로 맞는 소리를 했던간에, 사람에게는 크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말이 있다. 특히 당신이 갑이 아닌 을의 지위에 있다면. 그 사람의 조언을 듣는 지위라는 것 자체로도 당신은 이미 어느정도 그 사람의 말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얼마든지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생산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다. 약자를 정신적, 신체적으로 가학하는 처벌이 학습과 교육에 효과가 없다는 건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뭐 자신이 그것을 '팩트폭력'따위로 주장하더라도, 일단 당신의 자존감을 해제시키고 상대방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게 할 만큼 당신에게 큰 상처를 줬다면, 그 경험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맞는 말을 했던간에(맞았다는 뜻이 아니다, 맞고 틀리고는 누가 결정하는가?)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것이다. 오히려 어느정도 맞는 말에 섞어서. 예를 들면 훈육을 가장한 폭력이 있다. 이들은 어느 정도 먹으면 몸에 약이 되는 독을 농도 이상 태운 것과 같다. (폭력이 약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훈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 폭력을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니까) 너무나 교묘해서 칼로 자르듯이 구분조차 할 수 없다. 어떤 경험을 듣고 그건 가스라이팅이다, 아니다 라는 구분을 해줄 만한 척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스스로를 피해자화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끝없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몇 가지 귀인 이론의 원리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켈리의 공변모형을 기반으로 생각해봤지만 그대로는 아니다) 물론 이것 또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1. 나는 다른 사람의 조언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조언에도 그런 감정을 느꼈는가? 모든 사람의 조언에서 나는 그렇게 느끼나? 아니면 그 사람의 조언에서만 그런 감정을 경험했는가?

2. 나는 평소에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당신은 평소에 어떤가? 그 사람의 조언을 듣기 전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 원래도 자존감이 낮고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도 스스로에 대하여 그렇게 부정적인 상을 가지고 있었나? 그렇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그건 장기적으로 나아져야 할 문제지, 이게 가스라이팅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자신을 높게 평가해왔고 자신감이 어느정도 있었는데 그 사람을 접하고 자존감이 낮아지진 않았는지 확인해보자. 그렇다면 그 경험은 가스라이팅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평소에 자존감이 낮았다면 가스라이팅에 오히려 더 노출되어있는 것이지 상대방이 한 게 가스라이팅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3. 나말고 그 사람에게 그런 대우를 받은 사람이 또 있나? 다른 사람도 그 사람에게 조언을 받을 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이는 악의 없는 가스라이팅의 경우에만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 명만을 골라 악의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경우 이는 신뢰할만한 지표가 아니다. 악의 없이, 그 사람의 소위 말하는 스타일에 문제가 있어서 내가 가스라이팅을 경험할 경우에 해당된다. 만약 당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의 말에 그런 경험을 한다면, 이는 아무래도 문제가 그쪽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 그리고, 그 조언이 현재 피드백을 받아야하는 작업물에 한정되는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지는'가? 갑자기 길에서 누가 아무 이유없이 욕해도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근데 구체적인 조언과 더해졌다면 이는 더더욱 나를 탓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행동 교정에 대한 이론들 또한 대안 없는 비난은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사람의 조언에 대해 받아들일 부분이 있고, 그 부분 중 나에게 쓸모있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보자


1. 구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을 나의 언어로 다시 쓴다.

그 사람의 조언 중에서 구체적으로 내가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를 건조하게 다시 써본다. 예를 들면 '이 문항은 의미가 없고 중복임, 주제를 다시 생각해볼 것' 같은 조언이 달렸다면 '해당 문항을 삭제한다'같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꿔본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꿀 수 없는 건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므로 삭제하면 된다.


2.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을 업무에 대한 구체적 비판으로 바꾼다.

사람이 일을 좀 못했을수도 있다. 물론 중요한 건 상대방이 100% 맞았으리라는 보장조차 없다는 점이다. 다만 내가 일을 못하나?라는 자책을 하다보면 난 쓸모가 없어, 로 귀결되는데,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당신은 이번 기획안을 조금 못 썼을 수도 있다. 그걸 까는 팀장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무조건 맞았다는 게 아니다) 일말의 내가 이번 기획안을 못 썼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나는 '이번 기획안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썼네, 앞으로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이 있다면 추가해나가야지' 하면 되는 것이지, 당신의 지능에 문제가 있거나 나 자신이 쓸모없는 게 아니다. 연습을 하면 무엇이든 나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나아짐의 기준은 당신을 까는 팀장이 아니다. 그 중에 쓸모있는 소리가 있다면 그것만 들으면 된다.


3. 내재적 동기를 자극한다.

그럼 뭐 다 문제가 아니고 철없이 살라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꿔서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데 굳이 나 자신을 모욕하는데 가세하지 말자는 것이다. '욕 먹어가면서 배운다' 방식보다는 차라리 나 스스로 변해야겠다는 내재적 동기를 잘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당신이 지금 사람의 목숨을 쥐고있는 집도의가 아니라면, 아마도 사실 당신이 직장에서 까이는 건 그렇게 중대한 문제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어쨌든 기계가 아닌 사람을 쓰고 있고, 기계도 심지어 불량률이 있는데 당연히 사람이라면 어느 부분이 미흡하거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나아지고 싶은 동기가 크다면, 자발적인 동기를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지고 싶은지 스스로 계획하고 성취하자.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도울 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런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혹시라도 내 영역에서 다른 나보다 새롭게 진입한 사람에게 조언할 때 상처주는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지, 혹시라도 내가 도를 넘지는 않는지 앞으로 조심하려고 한다. 사람인지라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나를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절대 저렇게 말하면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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