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 Jul 08. 2020

이 나라 여성으로 산다는 건

나도 이 나라에서 살기 싫은데 아이를 낳고 싶을리가요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강간하는 영상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플랫폼을 운영한 손정우. 대한민국 사법부는 말도 안 되는 전지적 가해자 시점으로 구구절절 무논리를 통해 그를 구해냈다. 참으로 고마울만 하다.


한 강간범의 모친상에 권력 있는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람 계정에 비난하는 말 한 마디 쓰는데도 무섭더라.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이야기를 꺼낼 때 피해자 분에게는 정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너무 외롭고 두려웠을 그 싸움, 끝나지 않는 그 움직임을 응원하고 연대합니다.


*


이 나라에서 값으로 매긴다면 여성은 얼마 정도일까? 남성이 백만원이라면 여성은 천원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명백하게 감형되며 여성이 감히 남성에게 해를 가할 경우 이는 가중 처벌 받는다. 정말 길게 말하기도 지겨울 정도다. 나는 이 나라에서 여성이 자신의 지위에 대한 지각을 갖게 되면 어느 정도 항상 경미한 우울증을 갖고 산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마지막 식민지, 이 자칭 단일 민족 국가의 극한의 식민지다.


나는 이 사회가 여성을 착취하고자 부여한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았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1. 출산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 내 인생을 희생하지만, 결국 사회는 이를 나의 무능으로 포장할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토록 여성을 하찮게 여기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데 그다지 함께하고 싶지 않다. 혹여나 딸이라도 낳으면..? 내 딸은 아마도 언제 가해질지 모르는 성적 폭력과 차별을 두려워하며, 여성이라고 저평가되는 삶을 살 것이다. 내 딸이 그런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더라도 이 나라는 내 딸을 희생시키고 버릴 것이다. 가해자가 뚱뚱해서, 컴퓨터를 못 했어서, 기분이 나빴을 거라서. 어떤 이유로든 그를 감형해주고 내 딸만 고통 속에서 살게 되겠지. 내가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사는 게 이렇게 괴로운데 그 삶을 물려주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아들이라면, 내 아들이 별 생각 없이 야동이랍시고 불법 촬영물을 본다면? 이 강간 문화 속에서 내 아들만 깨끗하게 자라날 수 있나? 내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시류를 따라 가해자의 지위에 놓이게 되면 누군가를 희생시키게 되고, 아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비출산에는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이유가 있다.)


2. 여성세

참 사례가 많다. 난 돈 내고도 남성이 서비스를 제공할 땐 오히려 내가 혹시라도 상대방이 화를 낼까봐 오히려 저자세로 비싸게 돈 주면서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진심 다 때려치워야 한다.

여성용, 여성 타겟 시장은 의심하고 본다. 여성용으로 나온 것들은 보통 합당한 이유 없이 비싸고 거품이 껴있고 질이 낮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여성이 주 소비층인 시장 자체도 굉장히 가성비가 안 좋다. 결국 그 돈이 누구 주머니에 들어가는지도 한 번 확인해보면 좋겠다. (주로 남성)


3. 꾸밈 노동

외국에서 반년 살다왔을 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다른 풍경이 있었다면 난 자신있게 그것을 풀메이크업과 풀세팅(여성 한정)이라고 하겠다. 보는 순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외국에 있을 땐 사실 풀메이크업 자체가 흔치 않았고, 더더군다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쉬폰 원피스같은 걸로 치장하는 일은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다니는 모습은 나를 숨막히게 했다. 하지만 곧 나도 거기에 녹아들어서 살았다. 그 이후 여러 계기를 거쳐 거기서 벗어난 편이지만, 더더욱, 주변 사람들도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4. 여성이기 때문에 보이는 친절함 아니 사실 비굴함(감정노동)

인터넷에서 댓글들을 보면 재밌게도 많은 경우 말투로 성별이 구분이 간다. 하지만 나도 그걸 벗어나기가 참 어렵다. 비격식체를 쓰는 지위에 익숙해지고, 혹시라도 내가 싸가지 없어보이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며 더 상냥하게 말 하려고 노력한다. 타고난 말투가 ‘여성이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믿고 싶겠지만, 절대 아니다. 난 원래 타고 나기를 아주 무심한 말투의 소유자로 타고났는데(학창 시절 일기장의 말투, 이전에 사용하던 SNS 말투 등 다 확인해보면 매우 거칠고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혼자 쓰는 글도 엄청 건조하게 쓴다. 그런 내가 사람들을 상대할 땐 무슨 가면이라도 쓴 듯 이모티콘과 물결을 남발하게 된다.), 이는 정말 수많은 남성들의 강요를 받아가며 바뀐 것이다. 말투가 왜 그렇냐, 내 말이 떫냐며 시비걸었던 수많은 내 유년 시절의 깡패같은 남자 애들. 친구라는 이름으로 너는 왜 그렇게 말투가 여성스럽지 못하냐며 계속해서 길들이기를 시전했던 남자 애들.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비굴하게 굴지 않으면, 내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날카롭게 화내던 아저씨들. 세상에 더 이상 그런 감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싶다. 싸가지 없게 대하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 남성들이 나에게 친절한 만큼만 친절하겠다.


5. 누군가의 가사-돌봄 노동자

결혼을 거치며 사회는 여성의 가사/돌봄 노동을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난 사실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아서 옷 자체도 몇 벌 안 되고 사용하는 방도 작다. 빨래도 자주 안 해도 되고, 먼지를 닦아야 할 가구도 많지 않고, 한식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 혼자 살면 그렇게 손이 들어갈 게 많지 않다.

게다가 나는 대부분의 한식이 너무 노동력 대비 성과가 별로라고 생각한다. 반찬을 한 가지만 놓고 먹지도 않고, 반찬을 갖은 양념으로 짜게 만들고 밥을 또 따로 해서 먹고. 무슨 김치도 그냥 피클같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무슨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수백가지 양념을 넣어서... 한식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여성의) 노동력이 갈려들어가는 것 만큼은 세계 음식들 중 탑 티어에 들지 않을까 싶다. 난 내가 먹고 싶은거나 해먹으면서, 나랑 내 가족이나 돌보면서 살겠다.


6. 남성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지위

팬덤 문화를 보면 그 경향이 확실하게 보인다. 여성들은 남성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데 익숙하다. 내가 전면에 나설 수 없다는 걸 뼛속에서 아니까. 나는 성취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성취한 자를 지지하는 데 익숙하다. 애초에 과잉 경쟁과 끝없는 검열 속에서 살아온 여성 아티스트들과 어떤 잘못을 해도 왠만하면 용서가 되는 남성 연예인들 콘텐츠 자체에서 고민의 차이가 느껴지지만. 어쨌든 그것이 대중문화든 정치든 개인적 경험이든 여성에게는 여성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경험이, 나를 대변하는 여성에게 연대하는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꼭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

이 사회는 여성을 착취한다. 그 중 한 방법은 외부적 조건을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앉아서 티비만 보는데, 끊임없이 걸레질을 하고 과일을 내오는 할머니를 보면서 답답한 적이 없는가? 그는 그렇게 키워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할아버지가 꼭 명령하지 않아도(명령하는 경우도 많지만) 스스로를 착취하고 검열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여성들은 스스로가 혹시라도 안 상냥한 것은 아닌지, 성적 매력을 잃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검열한다. 여성이 향유하는 문화에 자연스럽게 따라 흘러들어가면, 내 주머니는 비어가고 그 위를 보면 남성 사장이 그 돈을 챙기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이 국가에서 여성은 적어도 일부에 대해 파업을 해야 한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제공하던 대가 없는 서비스를 중단하자. 물론 모든 걸 한 번에 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가는 데 방향점만 있어도 충분하다.


+ 외롭고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아이를 키울만한 여건과 마음이 충분하다면 아이를 키울 책임감을 가지고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했으면 좋겠다. 당신은 그 친구의 세상 전부를 바꿔줄 수 있다.


+ 아이를 이미 낳은 여성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여성들이 조금 덜 희생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재앙과 그로 인한 멸망은 항상 약자부터 잡아먹는다. 코로나 사태에 여성 노동자들은 돌봄노동과 불안정 노동이라는 이중고에 내몰렸다. 여성의 실업률은 남성에 비해 높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빈곤층이 대부분 코로나로 죽어갔다. 때문에 나는 인구의 수가 비출산을 통해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의 양질의 국가를 이루는 (약자를 고통에 몰아넣거나 죽이지 않고)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언젠가는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 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인류는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 그러니 적어도 국가 권력이 여성을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하는, 눈치라도 보는 날만큼은 오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에서 만나는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