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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ug 27. 2020

남들이 저만큼 잘 살지 못하게 해주세요

현대인의 추악한 기도

최근 여러 사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람들은 내가 잘 살게 해주세요라는 바람도 갖지만, 동시에 간절하게 외친다. '남들이 저와 같은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해주세요.'


'공정'이라는 이름은 이를 합리화 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나는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나보다 노력하지 않은 저들이 나와 같은 것을 누려서는 안된다고. 내가 갈 자리에 누군가는 그냥 가서는 안 된다고 (뺏는 것도 아닌데) 외치고, 한 특권 집단은 자신들의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불법적으로 집단 행동을 하기도 한다. 


(1) 노력한만큼 누려야 한다고?

그렇다면 시험을 붙는지 여부가 아니라 공부에 들인 시간으로 줄을 세워서 가장 오래, 많이 공부한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한다. 정말로, 시험에 붙는 변수- 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합리화하는 그 수단-은 노력만으로 판가름이 나는가? 노력이라는 변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도 좋지 않은 몸을 갖고 운동을 하면서 정말로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느꼈는데, 분명 이걸 가르는 유일한 요소가 노력은 아니다. 만약 노력만으로 결정할 것이면 무슨 엉덩이에 센서라도 설치해서 오래 앉아서 집중한 사람에게 상을 줘야한다. 당신보다 노력을 했는데 떨어진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애초에 노력이라는 것이 측정조차 어려운데도.


(2) 다른 출발선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 하는 것이, 더 많이 누리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태어났을 때 결정되어 있던 것으로부터 얼만큼 영향을 받았는가? 당신이 고시를 붙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신은 고시를 붙기까지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는 의미이며, 이에 필요한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소수의 일화를 가져온다. 누군가는 가난한 환경에서 공부해서 의대에 갔노라고, 사법 고시에 붙었노라고. 하지만 그들은 소수다. 당신이 그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사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평생 고생만 하고 사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노력 뿐 아니라 그런 노력을 할 수 있었던 여러 태생적 조건들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당신은 그것들을 노력하지 않고 얻어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니들이 이렇게 태어나지 않은 걸 원망해'과인가? 그렇다면 그 더러운 입에 '공정' 따위를 담지 마라. 당신의 밥그릇 싸움에 '파업'이라던가 '결의'라던가 다른 절박한 투쟁의 언어를 뺏어 쓰지 마라.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라, "남들이 저만큼 잘 살지 못하게 해주세요."


무언가를 가진 모든 사람이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고서는 더 약한 자의 희생만 강요할 뿐이다. 아무도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둘러보라. 당신은 생각보다 가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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