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트위터 네임드였다. 지금은 x라고 불리는 그 파란색 짹짹이는 온갖 감성글을 양산하고 퍼 나르고 자기들끼리 부둥켜안고 “토닥토닥” 해주는 걸 즐겼는데 그 당시 트위터를 하는 남자들은 딱 세 가지만 잘 지키면 트위터계의 네임드가 될 수 있었다.
1) 얼굴은 공개 안 하고 손사진만 공개한다. 이때 손은 가늘지만 선이 분명한 섬세한 느낌이면 좋다. 필터는 홍콩 빈티지 영화처럼 불그스름한 느낌으로. 왜냐면 그래야 손이 야해 보이거든
2) 우울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련하게 사랑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이병률 느낌이지만 이상하게 이병률은 언급 안 하고 황인찬이 인기 있었다. 이병률은 힙스터처럼 보이지 않았나배?
3)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 DSLR처럼 본격적인 카메라를 살 필요는 없다. 실제 DSLR을 쓰는 전문대 사진과 재학생과 친분을 과시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이 사진과 학생들은 작가인지 모델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 있는 마스크의 어린 여성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여기에 타투는 선택이고, 퀴어 역시 패션이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인디음악을 잘 안다면(트위터에선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메인스트림에 있다. 영화나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큰 반응을 얻지 못한다) 트위터 내 친목질까지 가능하다. 트위터엔 수많은 인디뮤지션(이랑, 세이수미, 조엘, 김사월이 그중 기억이 난다.)이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이 당시엔 다들 신인뮤지션들이라 트위터리안들의 아이돌로서 자리매김하는 게 꽤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였던 것 같다. 매일 저녁 K와 그 외 다수 트위터리안들과 멘션과 DM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팬관리를 했다. 모임별 공연을 티켓팅하며 환호성 하고, *방백의 백현진 그림 전시회를 가는 척하고, 곽은영 시인의 ‘불한당들의 모험’을 교본처럼 삼고, *장우철의 팬사인회에 가서 인플루언서의 기분을 느껴야 한다. 사계절 내내 여름밤을 그리워하고, 막상 여름밤이 되면 한강에 가서 ‘방백의 한강’ 들어주고 부산 앞바다 가서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들어줘야 한다. 넬이 예전 같지 않네 어쩌네 하며 밤이 되면 상수역에 있는 제비다방에 가서 인디뮤지션의 라이브 음악을 듣고 맥주를 퍼마시다 라멘트럭에 가서 라멘 한 그릇 먹고 집에 돌아가줘야 한다. 여기까지 무난하게 따라와 줬다면 훌륭한 트위터 고인 물이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 K는 여성트위터리안 사이에서 한 떨기 청일점 같은 존재로서 주가를 높이기 시작했는데, 트위터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은 한 다리만 건너도 K의 트윗을 한 번쯤은 봤을 거다. 야한 손으로, 감성글로, 적절한 사진으로.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더라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한국에서만 유통되는 앤디워홀의 명언처럼 K는 트위터에서 네임드가 됐다. 뭐 엄청난 문장이 아니더라도 예쁜 사진과 야한 손을 곁들이니 마치 트위터계의 파인다이닝 취급받으니까 막 트위터에 입성한 신참내기는 ‘오 잘은 모르지만 저 사람 무슨 작가인가 봐’하며 팔로우하고, ‘인디뮤지션들이랑 친해서 부러워요’하며 하트(인스타의 하트, 페이스북의 좋아요 같은 거다)를 눌렀다. 그리고 K는 이 인기를 십분 활용했다. 여자친구가 없을 땐 외롭다는 마음을 초저녁에, 여자친구가 있을 땐 새벽에 강조했다. 새벽 1시 30분에서 2시 30분 사이,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자러 가고 ‘나 잠 안 와 머리 쓰다듬어줘’를 왱알왱알 외치는 소수만 남아있는 때. 최대한 씁쓸하고 아련한 듯이, 물론 K는 트윗을 쓰고 20분 내외로 모두 지웠다. 본인을 팔로 하는 사람들만 해당 글을 볼 수 있게. 인기 많은 저 남자의 외로움을 나만 몰래 안 것 같은 기분이 들게. K는 본인이 여자친구에게 얼마나 스윗~한 남자인지 강조했기 때문에 더 효과가 좋았다.
‘어떻게’ 스윗~한지도 중요하다. 튤립, 작약, 리시얀셔스 등 빨간 장미와 안개꽃이 아닌 화려한 얼굴의 수입꽃들의 이름을 알고, 성수, 합정 등 상징적인 동네의 꽃집을 찾아다니며 꽃을 사 선물한다. 이 꽃집은 젊지만 너무 예쁘지는 않아야 하고, 살짝 실험적인 느낌의 꽃구성을 하는 여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K의 추종자들이 그 여사장님을 여자로서 질투하지 않고 실험적인 꽃구성 자체만을 리스펙하기 때문이다. 이때 해당 꽃집의 사장님도 트위터를 하면 좋다. “오늘 K님이 여자친구에게 선물한다고 해서 작약에 그린소재 섞어서 드렸어요. 여자친구분 너무 미인이시더라고요” 라며 완성된 꽃다발과 함께 트윗해주면, K는 해당 트위터글을 리트윗(다른 사람 글을 내 피드에 공유하는 것을 리트윗이라고 한다)해서 꽃집을 홍보해주고, 본인은 자연스럽게 ‘미인과 사귀는 매력있는 남자’라는 타이틀도 얻게 된다. 얼굴 공개 안 했으니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K가 얼굴도 그의 손처럼 섬세하면서도 어딘가 야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이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돌이켜보니 K같은 사람을 컨셉에 잡아먹힌 새끼라고 부르면 딱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캐릭터를 ‘우울하고 외로움을 잘 타지만 잘생기(었다고 추정하)고 음악과 시를 즐기고 젊은 아-티스트들과 친하며 스윗하고 야하면서 어딘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도화살 있는 남자’ 라고 여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자는 트위터에서만 존재했다. 낮에 하는 모든 데이트는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릴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예쁜 꽃다발, 직접 만든 초콜렛, 예매한 공연티켓, 독립영화 관람 인증샷, 이태원의 플리마켓, 예약제인 힙한 가게,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디뮤지션과의 맥주병 든 인증샷(이때도 맥주병 든 손만 나와야 한다), 벚꽃놀이와 불꽃놀이, 한강과 야경. 이게 낮의 그다. 새벽이 되면 K는 트위터에 1) 나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데 여자친구는 나를 외롭게 한다 2)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내 몸을 감싼다 3) 손이 이렇게 야한데 만질 사람이 없다 를 디테일만 바꿔서 반복적으로 올렸다 지웠고, 거기에 낚인 여자추종자들에게 DM을 보내 온갖 스윗한 말과 적절한 섹드립을 섞어 유사연애질을 했다. 거기서 끝났으면 애교지.
유사연애질에 재미를 붙인 K는 익명으로 새로운 트위터계정을 만들었다. 지금도 이 말을 쓰는 줄 모르겠다. ‘섹계’. 섹시계정인지 섹스계정인지 섹계가 뭐의 줄임말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여하튼 K는 새로운 계정인 섹계를 만들어 자신의 몸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그니처인 야한 손 사진이 은근하게 곁들여진. 욕조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목과 쇄골, 허벅지, 발목과 발 사진을 띄엄띄엄 올렸고 그보다 빈번하게 자신의 성기 사진을 올렸다. 예의 홍콩 빈티지 영화처럼 불그스름한 그 필터를 덧대어서. 거기에 자신이 경험한 성관계를 마치 야설처럼 각색해서 올렸는데 그중 상당수가 내가 아니었다. (내가 경험한 K의 실체로 추정컨대 그 야설의 상당수는 본인의 상상이었던 것 같다. 그때에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가 좀 짠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내가 그 계정의 존재를 안 이후에도 한동안 내버려 둔 건 순전히 염탐 목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 목이나 쇄골, 팔꿈치의 뼈와 손목뼈, 손목의 도드라지는 핏줄 등을 확대한 사진들을 본인의 성기 사진 사이사이 덧붙여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대체 K가 그 사진을 언제 찍은건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가족행사가 많았다. 한 달에 한 번 꼴이었고, 지방으로 가는 1박2일이나 2박3일 일정인데다 가족모임에 가면 연락이 잘 되지 않으니 그에게는 매달 소위 말하는 ‘안전한 날’이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해도 내게 들키지 않을 안전한 날. 그리고 그는 그 날을 십분 활용해 자신에게 DM을 보낸 여자들의 실물을 확인하는 날로 정한 것 같다. ‘오늘 제비다방 공연 괜찮던데 거기서 볼래요?’, ‘지금 합정 유어마인드 서점 근처에 김소연시인 있다는데 그 시인 좋아하지 않아요?’ 등 데이트가 아니라고 할 명분 역시 빼놓지 않고 만들었다. 헤어지고 난 뒤엔 아련한 척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기이한 감정이었어요’라고 자신 안에 뭔가 변화가 생긴 것마냥 여지를 남기는 것 역시 그의 특기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실제 K와 나눈 DM캡쳐본과 함께 내게 제보한 여자는 패션퀴어였고, ‘그 새끼 만나기엔 언니를 너무 사랑해요’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바 있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락스타들은 모두 27살에 죽었다. 근데 지는 내년에 27살인데도 아직까지 락스타가 되지 못해 너무 슬프다는 개소리를 듣는 게 지겹던 그 날이 내가 K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첫 날이다. 헤어지자고 말했음에도 헤어지지 못했고, 그 뒤로 몇 번이나 헤어지자고 말한 날이 ‘이별_최종’, ‘이별_최최종’, ‘이별_최최최종’. ‘이별_진짜최종’ 처럼 이어졌다. 헤어지자고 한 순간 K는 우리가 서있던 종각역 그랑서울 앞 한복판에서 과호흡이 왔고, 나는 K가 가슴을 움켜주며 옆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선명하게 목격해야 했다. 그날 길거리엔 사람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그들은 나와 K를 천천히 스쳐지나가며 구경할 뿐이었다. 그리고 영악한 K놈은 그날 이후 자신의 공황장애를 내 발목 잡는데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내가 하루종일 톡을 보지 않은 어느 날은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공황이 오는 것 같다며 가쁜 숨을 내쉬다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었고, 혹시 발작이 온 게 아닐까 걱정하는 나를 뻔히 알면서도 몇 시간이나 내 전화를 받지 않아 나를 질리게 했다. 나랑 헤어지면 자살할 거라고, 어차피 만성우울증인데 나 때문에 구원받았던거라 내가 손을 놓으면 죽는 게 당연하다고 짖던 새끼다 걔가.
그래서 어떻게 해어졌냐고 물으면 시시하다. 서서히 연락의 빈도를 줄이고, 걔가 보채는 개처럼 낑낑댈 때만 살짝 받아줬다가 또 연락을 줄이는 방식의, 길고 은근한 헤어짐이었다. 사흘 정도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은 걸 확인한 날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p.s. 작가의 말까지 덧붙여 쓴다. 저번 수업에서 내 ‘감정’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쓰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희노애락 같은 격한 감정에 관해 쓰는 게 조금 수월할 거 같았다. 그중에 제일 자신있는 게 ‘노’, 즉 분노라서 첫 번째 글로 이 감정쓰레기통을 여러분께 선보인다. 이제와서 내 에세이의 소재가 되어준 전남친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쓰면서 네 안부가 조금 궁금해졌는데 차단한 지 오래고 번호도 없어서 직접적인 소식을 알 길이 없네. 그치만 부고소식이 들리지 않은 걸 보니 니가 아직 뒈지진 않았나보다.
*이제 와 돌아보니 황인찬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황인찬이 은근하게 본인의 성정체성을 동성애자로 상정한 듯한 글을 썼고, 그당시 트위터리안들 사이에서 힙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 황인찬 시인의 성정체성은 모른다. 추정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다만 황인찬이 퀴어라는 ‘혐의’가 트위터리안 사이에서는 엄청난 셀링포인트였음을 장담할 수 있다.
*장우철은 패션잡지 지큐 에디터로 트위터리안 사이에서 유명했는데, 에세이집 ‘좋아서 웃었다’ 발간을 시작으로 지큐 퇴사 후 본격적으로 사진찍고 글 쓰는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대표사진 중 하나인 ‘꽃’ 포스터는 2016년부터 알음알음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김나영의 개인 유튜브에 등장한 이후 몸값이 폭등했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신품이 장 당 9만원에서 24만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던데 그건 왜 그런지 모르겠고.. 난 당시 5천원 주고 샀다. 신나서 중고로 판매하려고 찾았는데, 보관을 제대로 못해서 포스터 가장자리가 다 구겨져있길래 못 팔았다. 아직도 내 침대 밑에 있다.
*방백은 방준석, 백현진이라는 두 가수가 멤버로 있는 듀오다. ‘방’준석과 ‘백’현진이라 방백이란다. 이럴수가… 백현진은 화가로 시작해 가수로 한창 활동하다 현재는 악역 전문 배우로서 더 많이 알려져있다. 혹시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보셨다면 거기서 “다 점심 먹으러 가요!!”라고 소리지르던 코드명 ‘진천’을 기억할텐데, 그 사람이 백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