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M(Large Nature Model)으로 만들어 내는 무빙 컬러차트
레픽 아나돌전 -울산시립미술관/ 2026.02.26 ~ 06. 30
울산시립미술관 미디어 스크린 프로젝트는 2026년 처음 시행되는 야외 전시의 일환으로, 미술관의 전시 영역을 공공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기존 전시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에서 구성되어 왔다면, 미디어 스크린 프로젝트는 미술관 밖 공간을 전시 장소로 전환함으로써 예술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울산시립미술관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참여작가로 튀르키예 출신의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을 선정했다. 레픽 아나돌은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시각적·조형적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보이는 <라지 네이처 모델 : 이머시브 에디션(Large Nature Model : Immersive Edition)>은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가 개발한 동명의 생성형 AI 모델, <대규모 자연 모델(Large Nature Model), 이하 LNM>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레픽 아나돌과 그의 스튜디오는 약 2년에 걸쳐 5억 개 이상의 자연 이미지, 400시간의 사운드 데이터, 라이다(LiDAR) 센서로 스캔한 3D 데이터 등을 수집했으며, 이후 약 1년간 출처와 라이선스가 검증된 데이터를 선별·가공하여 학습 데이터셋을 완성하였다.
그는 2008년 ‘데이터 페인팅(data painting)’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마르지 않는 물감으로, 알고리즘을 생각하는 붓으로 삼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낸다. 데이터 라는 안료가 알고리즘 연산 구조를 통과해 생성하는 예측 불가능한 환각적·환상적 시각 경험은 자연과 기술,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조건과도 맞닿아 있다. 데이터는 더 이상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인식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세계와 관계 맺고, 동시에 우리의 행동과 인지적 반응은 다시 데이터로 기록되어 알고리즘의 구조 안으로 편입된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그는 인공지능 이라는 기술을 경계의 대상으로 두기보다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을 확장하는 매체로 받아들인다. 미디어라는 캔버스에 위에 펼쳐지는 그의 유동적 풍경은 다가오는 데이터 시대의 불안을 은폐하기보다,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낙관적 제스처에 가깝다.
안내문 전문과 부족하나마 제가 현장에서 촬영한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시하였습니다. 위의 미술관 측 안내문은 작가가 어떤 방식을 사용하여 작업을 구성하였는지, 그리고 그 결론으로 “그의 유동적 풍경은 다가오는 데이터 시대의 불안을 은폐하기보다,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낙관적 제스처에 가깝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필요한 정보는 미술관 측에서 다 제공하여서 별도로 다른 자료를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미술관 측에서 제시한 그의 작품 개관의 결론과 현장에서 작업을 본 제 생각은 사실 정반대의 축으로 서로 찢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를 하나씩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게시한 형식, 미디어 월(media wall)이 건물의 옥상에 배치되어 시각적으로 감상하기 불편하고 거리상 멀어서 정밀한 탐색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하나의 평면 작업 혹은 입체 작업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원근을 조절하며 가까이 가서 물성과 배치의 상세한 점을 파악하고, 또 뒤로 가면서 전체적 느낌을 파악하는 게 일반적인 감상의 방식이지만, 상업적 3D 사이니지의 전형을 따름으로써 예술 작품의 엄밀한 감상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상업적 원리 중의 하나인 프로파간다적 특성을 공공성이라는 허울로 위장한 기만술처럼 여겨 졌습니다.
옥상에 설치된 미디어 월의 특성상 관객은 작품에 접근해 세부 구조를 관찰할 수 없고, 높고 먼 거리감으로 인해 3차원적 왜곡이 시각적으로 두드러질 수 밖에 없으며, 거리에서 전체적인 색채의 흐름만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감상 조건에서는 작품의 물성이나 구조를 탐색하는 일반적인 미술 감상의 방식이 사실상 차단됩니다.
그리고 사운드 또한 그게 무슨 소린지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시골 동네 이장님네 방송 장비가 고장으로 뱉어내는 이상한 소리가 도시의 소음과 섞여 있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도시 환경과 섞인다는 발상은 좋지만 소리 자체도 이미지처럼 소스로부터 학습된 알고리즘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 마치 핀이 나간 사진을 보는 듯했습니다. 예술감상이라는 목적하의 청취환경과 음향장비의 설치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이 문제는 벌어졌다고 생각 됩니다.
총제적으로 말하자면, 보조적 텍스트 없이 직관으로서만 파악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게시 방식이었고, 작업자체는 형식적 정체성에만 치중되어 전혀 예술작품이라고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설명한 감상 조건 속에서 작품은 데이터의 구조나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이 드러나기보다는 색채 패턴의 변화로만 인식되었고, 제게는 결국 움직이는 컬러 차트처럼 보였습니다. 인쇄 공정에 쓰이는 그 색상표 말입니다. 팬톤 컬러 차트 등등. 그가 말한 대로 새로운 붓을 발명했을 수는 있어도 그게 붓 자랑에 그쳤지, 정작 붓으로 어떤 예술적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표현했느냐가 빠져 있습니다.
미술관의 전시 기획 목적을 다시 상기시켜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술관의 전시 영역을 공공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기존 전시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에서 구성되어 왔다면, 미디어 스크린 프로젝트는 미술관 밖 공간을 전시 장소로 전환함으로써 예술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제가 본 입장에서는 이 목적은 끝내 못 이루었고, 예술 작품을 다루는 섬세한 감각의 부재와 전시 행정적 사고가 부각돼 보였습니다. 시민들의 세금과 국가적 지원 아래에서 말입니다.
움직이는 색상표라는 나의 직관이 틀렸나 싶어서 AI에게 이런 관점을 가진 비평이 있었나 물어봤습니다.
Jerry Saltz, 미술 비평가, New York Magazine / Vulture
“레픽 아나돌의 수백만 달러짜리 스펙터클은 정신을 마비시키는 카드로 쌓은 집이자 거울의 미로에 불과하다. 잠깐 시선을 끄는 속임수 같은 예술일 뿐이다. 음악을 빼면 그저 평범한 화면 보호기에 지나지 않는다.”
R. H. Lossin, 작가 · 비평가 (e-flux)
“24피트 크기의 막대한 탄소를 소비하는 화면 보호기… 디핀닷 아이스크림 같은 알갱이들이 형형색색으로 출렁이는 파도.”
Ben Davis, 미술 비평가, Artnet News
“보기에 그럭저럭 즐겁기는 하지만 분명히 과도하게 부풀려진 평가를 받고 있다.”
저의 컬러차트론과 대체로 일치 합니다. 반대 의견도 들어봐야겠다 싶어서 가져 와보라고 했습니다.
Michelle Kuo(Museum of Modern Art 회화·조각 큐레이터)
“데이터 과학, 딥러닝, 블록체인 기술의 최전선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는 거의 없다. 그리고 레픽 아나돌은 실제로 이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Simmone Shah(TIME 기자)
“아나돌은 10년 넘게 예술이 어디에서든—심지어 기계로부터도—탄생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어 왔다.”
Refik Anadol(미디어 아티스트, 작가 본인)
“나는 데이터가 상상력을 반영하는 안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데이터 페인팅’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미술관의 안내문은 대체로 레픽 아나돌의 옹호론자의 의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제가 본 레픽 아나돌이 꼭 옳다고만 주장하진 않겠습니다. 실제로 냇가의 돌멩이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감상의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술에서의 공공성이라는 문제는 개인적 차원과도 다릅니다. 화려한 수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선정 과정과 게시, 비평적 균형, 그리고 시민 관람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통해 실현됩니다. 이번 전시는 이 공공성의 증명과 예술작품의 효과적 게시라는 측면에서는 제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전 회차에서 밝혔던 “AI와 결합된 메타 예술적 태도에 대한 미술 제도의 응답이 곧 AI 존재론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회적 함의의 실증적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저의 의견의 현주소가 레픽 아나돌을 둘러싼 부정적 감상론으로 치환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서글프긴 합니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단면일 뿐입니다. 진정한 예술은 떠들썩한 팡파레와 휘황찬란한 찬사 아래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처럼, 밤중의 도둑처럼 갑자기 다가오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압도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업의 등장을 기다릴 만한 가치는 충분하며 기술충인 저 역시 그러한 작품을 보기를 학수고대합니다.
# 이 전시회를 보기 전에 작년에 써 두었던 글이 있어 추가 게재 합니다. 저의 선판단이 현장과 일치해서 씁슬하긴 합니다만, 현재의 AI현상에 대한 저의 기본적 태도를 말해주는 것이어서 본문을 읽으시는데 참고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 미술관의 AI 도입 추세를 살펴보면, 시대적 필연임을 자각함과 동시에 발 빠른 도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술관들은 넓은 검색망을 통한 방대한 정보 제공, AI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대상화하는 경향, 그리고 AI를 작품 안에 도입한 형태의 미술품 소개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AI 도입 추세가 낳는 관람 상황을 관람객의 입장에서 반성해 보자면, 아나몰픽 등을 통한 시청각적 화려한 장치에 매몰되어 감각을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AI가 별도의 스크린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해 주는 정보를 전달받게 됨으로써 관람의 주목성이 변질되고, 필요 이상의 정보를 추출하여 전달함에 따라 그 과정에서 해석이 변질되기도 합니다. 정보의 출처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압축 요약함으로써 AI가 마치 정보 전달의 주체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환각 현상(Hallucination)까지 일으키는 실정입니다.그러한 결과로 인해 관람객은 정보를 주입해야 할 대상으로 격하되고, 고유의 자유로운 주체로서 예술을 체험하고 사유하게 하는 기회가 상실됩니다. 이는 가까운 장래에 미술관이 발 빠른 AI의 도입으로 인한 역설적인 결과, 즉 'AI의 역기능 제거'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