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시장

감상의 또다른 요소

by 늘심심

어느 예술 분야이든 현대적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는, 회화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역사적 전개에 따라 새로운 철학, 새로운 시각, 독창성으로 자립함과 동시에 후원자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평가받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냉정한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구축된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간단히 영국의 미술 시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980년대 후반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젊고 도발적인 작가들(yBa)을 발굴하고 띄운 핵심 인물은 광고 재벌이었던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입니다. 그는 무명 작가들의 작품을 헐값에 대량 매입한 뒤, 자극적인 전시 기획과 언론 플레이로 가치를 폭등시키고 되파는 방식을 통해 영국 현대미술을 거대한 상업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개관과 터너상(Turner Prize)의 흥행은 국가 기관이 자국 작가들에게 '미술사적 권위'를 부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권위가 확립되면 런던에 밀집한 상업 갤러리와 경매 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자연스럽게 폭등하는 구조를 완성한 것입니다.


물론 갤러리가 전망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해 지원하며 함께 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미술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은 2차 시장인 경매 시장입니다. 이 자본 시장에서 전체 미술 시장의 파이가 커진다 해도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트페어 등 일반인을 상대로 한 판매 시장 역시 단기적 수익 목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미술 자본 시장에 단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진입하도록 유도하는 일차적 장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불투명한 미래, 생계의 위협,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 속에서 인생 전체를 담보로 예술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미술 시장은 그 열매만을 수거하여 더 큰 자본으로 가공합니다. 투자 대비 수익률로 따지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시장은 없을 것입니다. 가령 자본력이 빈약한 방글라데시의 작가가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유럽이나 미국의 자본에 의해 '가공'되어야만 비로소 세계 시장에 알려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미술 시장 역시 작다고 할 수는 없으나, 형성 시기가 짧아 서구의 거대 자본에 비하면 깊이와 넓이 면에서 아직 약세에 있습니다. 결국 국내 작가들도 우리 시장에서 1차 가공된 후 세계 시장에 되팔리는 과정이 반복되며, 최초 매입가에 비해 유통 과정의 마진이 훨씬 높은 구조를 취하게 됩니다. 국내 예술품이 유명 경매 시장에서 고가에 낙찰되었다는 뉴스에 대중은 작가의 위상에 주목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미술 시장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작품의 탄생 과정으로 되돌아가 보면, 작가의 고난과 헌신은 시장에서 '신화'로 번역되어 가치 상승의 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들을 떠올릴 때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작품 감상의 배경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며, 이는 화폐 가치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모든 것이 자본의 장난이라고 치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작가가 생을 걸고 만든 작품이 자본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본은 욕망의 집합체이며, 미술 시장은 그 욕망이 제도적으로 나타나는 분야이기에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따릅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미술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자본의 본질이 끊임없는 증식에 있고, 그것이 곧 인간 욕망의 궁극적인 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자본은 욕망에 기대어 증식하는 상호 필요충분조건의 관계입니다. 미술 시장에서의 욕망이란 심미안을 기본으로 하되, 신화와 소유욕이 결합된 대상으로서 궁극적으로는 화폐와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자본 시장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거대한 자본과 욕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우리는 고유한 유전자와 역사, 취향에 따라 작품을 보는 각자의 눈을 가집니다. 세상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개인에게는 그것이 '강요된 진실'로 다가올 때가 많으며, 그 상당 부분은 자본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물론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작가나 작품의 존재조차 알 수 없게 되는 모순도 존재합니다. 또한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단지 자본이 각색한 신화로만 치부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기계론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결국 좋은 작가와 유명한 작가를 가르는 판단을 타인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두 개념은 겹칠 수도, 완전히 다를 수도 있으며, 그사이에는 상업적 기만이나 예술적 독단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작품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우리와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본이 작동시키는 예술 장치의 부속으로 남는다면 기만당하겠지만,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묵시적 결의 아래 작품과 마주한다면, 예술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자유로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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