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재구성
David Hockney, Mulholland Drive: The Road to the Studio, 1980, acrylic on canvas, 86 × 243 i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가로 138.2㎝, 세로 79.2㎝
*크기에 대한 감이 잘 와닿지 않을 것 같아서 관객과 같이 있는 사진을 썼습니다. 자세한 그림의 디테일들은 직접 찾아 보시거나 전시회장을 방문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참고로 인왕제색도는 65인치 tv크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의 시각적 경험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문제는 뇌과학, 신경의학의 영역으로 포착되기 훨씬 이전인 선사시대나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긴 역사입니다. 회화에 집중해서 보자면 서양에서는 인상파의 등장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문제의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이 도입되는 시점에서 특히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인칭 원근법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시점과 빛의 다변성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니체의 '천 개의 눈'의 철학적 기조와 같이한 시대적 '에피스테메'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과 왕에서 나오는 일원적 권력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대두를 말하는 파편화된 권력의 도래를 말하는 예고편이기도 했지요.
서양이 점점 시민 사회로 이동하던 르네상스 이후의 17~18세기는 겸재 정선이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청나라와 외국에서 수입된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북학파를 필두로, 임진왜란 이후의 피폐해진 삶을 복원하기 위해 실사구시 정신의 실학의 전개가 왕성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회화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중국의 유교적 이상향을 그린 관념론적 산수와 인물에서 탈피하여 우리 땅을 우리 눈으로 그리는 진경산수와 초상 등이 등장했습니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에서도 그 상황을 볼 수 있고 겸재 정선의 그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재 윤두서는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풍속화의 대가이자 정조수원능행차를 그린 원행을묘정리의궤 (園幸乙卯整理儀軌)의 제작의 실질적 우두머리 화원이었던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보이는 정교한 몸동작의 표현도 조선시대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한편 서양에서는 인상파 이후, 아예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환기시키는 입체파, 다다, 초현실주의, 뒤샹의 샘에까지 이르는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미국에서는 다양한 시대적 실험들이 이루어졌지만 상대적으로 구대륙인 유럽에서는 시지각의 과정과 표현이라는 회화의 흐름은 여전히 이어져 와서 동시대의 할아버지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에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호크니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제목만 보면 동명의 스릴러, 추리물인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그림의 전체 명제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작업실 가는 길'입니다. 호크니는 Nichols Canyon 꼭대기에 살면서 LA 시내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오가기 위해 매일 두세 번씩 이 머홀랜드 드라이브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영국의 비평가 마틴 게이퍼드와 나눈 대담집 "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에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용된 문장은 부분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며 재편집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I lived up the hill and I'd go down to the studio two, three times a day,...(중략...) Then the wiggly lines of the road entered my life, and they entered the paintings. I began to feel those wiggly lines; I actually felt them...."
"나는 언덕 위에 살았고, 하루에도 두세 번씩 언덕 아래 작업실로 내려가곤 했습니다,...(중략)...그러자 그 길의 구불구불한 선들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왔고, 결국 내 그림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 구불구불한 선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실제로 체감했습니다."
It's about the movement of the eye...(중략)... If you're driving, you're looking at it in a different way. The space is different.
"이것은 눈의 움직임에 관한 것입니다...(중략)... 운전을 하고 있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공간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차를 타고 이동하며 본다는 것은 20세기 이전에는 일반화되지 못했던 경험, 즉 '속도'와 '고도'가 결합된 새로운 공간 지각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어떤 부분은 지형이, 어떤 부분은 속도감이, 또 어떤 부분은 시점의 높낮이가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하나의 풍경 안에 중첩된 이 이질적인 요소들은, 우리의 지각 현상이 개별 주체의 파편화된 경험에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그 파편들이 모여 '동시대'라는 거대한 지도를 그려내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 대담은 주로 3차원 시공간안에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무한함을 어떻게 2차원 평면에 담아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호크니의 그림이 어린아이와 같은 일종의 천진성을 띠고 있는 것도 이런 지각의 본질과 재현의 문제를 꿰뚫어 보는 본능이 함께 작동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라고는 하지만 사실 제 생각엔 그의 경험 산수라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히 그림을 살펴보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본 고원법(高遠法), 앞에서 뒤를 보는 심원법(深遠法), 가까운 곳에서 먼 곳을 보는 평원법(平遠法) 등의 삼원법이 섞여 있는 풍경입니다. 전체를 구성하면서 각 요소에 맞게 그가 경험한 시각을 재구성한 것이죠.
물론 이전에도 삼원법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북송의 곽희 이후의 오랜 전통이긴 하지만 정선 이전은 이상향의 장면의 관념적 재조립이었다면 직접 보고 오르고 경험한 실경을 삼원법으로 표현해낸 것은 저의 한국미술사 지식 내에서는 최초라고 생각합니다. 이 치환을 서양화법으로 비교해서 말하자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상화를 르네상스적 성상화로 변모시킨 만큼 혁명적이고 파격적이었습니다.
시각이 다변화된다는 것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일원론적 세계관의 붕괴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호크니는 이미 현대라는 우아한 거인의 등에 올라타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면 겸재는 천동설적 세계관을 지동설적 세계관으로 변화시킨 혁명가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겸재 이후의 조선의 흐름은 안타깝게도 실학적 세계관의 원심력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수많은 사화를 거치며 천동설적 수구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역사적 행보를 보임으로써 독자적인 근대적 사회를 형성하지 못한 채 쇠락의 길을 걸으며 끝내 타자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를 맞게 됩니다. 예술가에 의해 선행 제시된 에피스테메의 시선 아래에서 그 사회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가 다음 문턱의 예고편인 것은 역사를 보면 여러 번에 걸쳐 확인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번외로 두 작가의 삶을 잠깐 말씀드리자면, 호크니는 지금까지도 생존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른바 생존 화가 '끝판왕'의 반열에 올라 작품값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겸재 역시 영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당시로서는 불로장생 수준인 80대 중반까지 인왕산 밑에 집을 지어 무탈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흔히 천재 화가들에게서 발견되는 비극적인 삶의 궤적과는 많이 다르죠
다시점적 시각이 회화라는 형태로 재구성되는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 가며 그 인식의 배경까지 추론해 보는 작업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 서투른 에세이스트로서 제가 이 두 그림은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는 직관을 밀어붙인 것은 다소 무리한 점도 없지 않아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직관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추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주기 때문에 이런 비교예술 분야의 글쓰기를 하는 것 같고 두어 개 더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