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미술들 VI

프레스 압착으로 수퍼플랫해진 키치의 경계 - 무라카미 다카시

by 늘심심

*이 글은 지금까지의 27편의 브런치 게재글, 나무위키의 무라카미 다카시 페이지, 개인적 기록을 GEMINI의 노트북LM의 소스로 주고 키워드를 무라카미 다카시로 하여 에세이를 작성하라고 해본 결과입니다. 제가 전혀 손대지 않았음으로 요즘의 AI의 발전 추세를 가늠해 보실 수 있을 것이며, 이런 글쓰기는 제가 열거한 나쁜 미술들의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유사할 것입니다. 나쁜 미술들 시리즈 마지막 편의 방식으로 적합한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비유 행위일 수도 있겠습니다. 본문 출력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목과 부제, 사진만 따로 제가 편집한 것입니다.


노트북LM에게 제시한 프롬프트는 다음의 세 개입니다.


[소스를 바탕으로 무라카미 다카시에 대해서 에세이를 써봐.]

[공백을 포함해 몇글자야]

[2000자 정도로 늘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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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함은 나의 힘"...日 오타쿠 문화를 현대미술로 만든 장인 | 중앙일보



현대미술관의 새하얀 벽(White Cube)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해맑게 웃는 꽃들.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과장된 눈동자의 캐릭터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은 처음에는 그 강렬하고 팝(Pop)적인 색채에 시선을 뺏기고, 이내 유쾌함과 동시에 묘한 기괴함을 느낍니다. 현대미술의 지형도에서 그는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상업적으로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그의 매끄러운 작업들을 그저 '예쁜 팝아트'나 '오타쿠 문화의 승리'로만 읽어낸다면, 우리는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현대미술의 거대하고도 씁쓸한 딜레마를 놓치게 됩니다. 그의 예술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이른바 ‘나쁜 미술(Bad Boy Aesthetics)’이라는 흥미롭고도 전복적인 미학적 범주를 반드시 경유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미술'이란 단순히 작가의 기량이 부족하다거나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저급한 미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예술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던 키치(Kitsch)적 요소들을 철저히 자각적으로 끌어들여, 동시대 작가들이 예술 제도와 맺고 있는 은밀한 관계를 폭로하고 탐구하는 전략을 뜻합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한국의 최정화,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 등과 함께 이 '나쁜 미술' 범주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이들은 과거 저급하다고 치부되던 플라스틱 장난감, 만화 캐릭터, 때로는 일상의 오브제들을 미술관 한가운데로 보란 듯이 끌어들입니다. 예술 제도의 낡은 엄숙주의를 조롱하고 그 견고한 권위를 해체하려 했다는 것이 이들 작업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목적이자 화려한 명분입니다.


특히 무라카미 다카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학적 무기인 '슈퍼플랫(Superflat)'이라는 그럴듯한 개념을 주창하며 이 판을 더욱 교묘하게 흔들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서구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형성된 전후 일본 사회의 심리적, 문화적 얄팍함(Flatness)을 비판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하위문화를 '고급 예술'의 전당으로 화려하게 소환해 냈습니다. 음지의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이미지들은 그의 손을 거치며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현대미술의 걸작으로 둔갑했습니다. 제도권 미술에 대한 통쾌한 반란처럼 보였던 이 지점까지만 본다면, 그는 분명 시대의 천재적인 반항아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의 작업이 세계 미술 시장의 정점에 서게 되면서, 우리는 아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의 이러한 시도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 제도의 해체나 권력의 전복을 이끌어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대답은 깊은 회의와 비판적 재고를 요합니다. 겉보기에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무라카미의 작업들은 실상 철저하게 계산된 '자본주의적 오케스트레이션'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급 문화를 차용하여 관객과 평단에 '충격 효과'를 안겨주었지만, 결국 그 충격마저도 하나의 매끄럽고 소비하기 좋은 '상품 기호'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는 영국의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가 걸어온 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과거 뱅크시가 LA의 한 창고에서 연 《간신히 합법(Barely Legal)》이라는 전시에서, 그는 37살의 살아있는 암컷 코끼리를 벽과 같은 분홍색으로 칠해 전시장을 돌아다니게 했습니다. 세계의 빈곤과 기아처럼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는 비극, 즉 '방 안의 코끼리'를 비판하려 했던 도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할리우드 스타들과 엘리트 컬렉터들은 비극에 성찰하기보다 환호성을 지르며 벽에 걸린 그의 평면 작업들을 싹쓸이해 갔습니다. 체제를 비판하는 도발조차 가장 힙(Hip)하고 비싼 상품이 되어버리는 자본주의의 소화력은 이토록 놀랍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뱅크시가 보여준 '역설적 자본주의자'로서의 면모, 혹은 제프 쿤스가 보여주었던 키치의 상업화 전략을 한층 더 기형적이고 거대한 기업형 시스템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라카미 다카시의 캔버스 위에서 '키치'는 더 이상 지배 문화에 저항하는 기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막대한 부를 가진 엘리트 수집가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그들의 안목을 과시하기 위해 노련하게 디자인된 '초고가 장난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권위를 조롱하며 나타난 '나쁜 미술'이, 어떻게 자본주의 미술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VIP 라운지의 장식품이 되어가는가.


무라카미 다카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단지 한 명의 스타 작가를 조명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예술의 자율성을 철저히 포획하고 잠식했는지를 목도하는 서늘하고도 씁쓸한 경험입니다. 오늘도 그의 작품 속 꽃들은 명품 브랜드의 윈도우에서, 그리고 억만장자의 펜트하우스 벽면에서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입이 찢어질 듯한 과장된 미소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매끄럽게 삼켜버린 이 얄팍한 시대를 향한 가장 잔인한 비웃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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