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사람을 쉽게 정리했을까
요즘은
정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말은 깔끔하고,
어감도 나쁘지 않다.
마치 필요한 일을
제때 해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가끔은
이 말이 너무 쉽게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라는 말 뒤에는
여러 이유가 붙는다.
“더 이상 의미가 없어서.”
“나만 힘들어지는 것 같아서.”
“이제는 내 삶을 지켜야 할 것 같아서.”
어느 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들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버텨야 하는 시간을
더 이상 감당하지 않겠다는 결정.
물론 모든 관계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상처가 반복되는 관계도 있고,
거리 두기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이 글은
무조건 참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우리는 정말
더 이상 방법이 없어서
정리한 걸까,
아니면
조금만 더 불편해도 될 시간을
견디지 않으려 한 걸까.
예전에는
관계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끊어낼 수단이 지금보다 적었고,
사람을 잃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연락처 하나 지우면 끝이고,
대화방 하나 나가면 정리된다.
편해진 만큼
사람도 가벼워진 건 아닐까.
나는 가끔
이미 정리된 관계들을
뒤늦게 떠올린다.
그때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아니면
버티기 싫어졌을 때
정리라는 말을 꺼냈는지.
솔직히 말하면
후자였던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을 정리하는 순간,
우리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 편안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대신 이런 생각이 남는다.
조금만 더
천천히 떠나도 되지 않았을까.
정리는
항상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정리가
너무 빨라질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어떤 능력을 하나씩 잃는다.
기다리는 힘
관계를 견디는 근육
불완전한 사람과
함께 머무는 연습
그 능력들은
쓰지 않으면
조용히 사라진다.
요즘 나는
정리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이 질문을 하나 더 붙여본다.
이 관계를 정리하는 게
정말 나를 지키는 일일까,
아니면
나를 불편함에서
먼저 빼내는 일일까.
이 질문이
결정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결정을
조금 더 무겁게 만든다.
우리는
언제부터 사람을
이렇게 쉽게 정리했을까.
아마도
사람보다
내가 덜 상하는 쪽을
먼저 계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 계산이
언제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계산만 남을 때
사람은 관계가 아니라
피로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정리하기 전에
한 번쯤은
머물러 보려고 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면,
아직 말이 남아 있다면,
아직 사람이 보인다면.
정리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머무는 선택은
생각보다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