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방향은 남는다
실패는
대개 이렇게 남는다.
아,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만 다르게 말했더라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시간이 지나도
그 장면은 종종 돌아온다.
이미 끝난 일인데도,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실패를
결과로만 기억한다.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
말이 엇나갔다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 선택.
그래서 실패는
늘 닫힌 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살다 보니
실패가 전부 닫힌 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실패는
방향을 남긴다.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
다음에는 조금 더 늦게 판단하겠다는 결심,
다음 사람 앞에서는
조금 더 조심해 보겠다는 마음.
결과는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의 방향은 달라진다.
나는 실패한 순간들을
가끔 이렇게 다시 바라본다.
그때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떤 쪽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
사람을 이기려 했는지,
아니면 지키려 했는지.
정답을 말하려 했는지,
아니면 관계를 놓치지 않으려 했는지.
그 질문은
실패를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든다.
실패는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게 하고,
판단하기 전에
상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실패는
부끄러운 기록이기보다,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흔적일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실패가
아름다운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어떤 실패는
그저 아프고,
어떤 후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실패했다고 해서
방향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방향은
다음 선택에서 드러난다.
다음 대화에서
말을 조금 늦추는 선택
다음 관계에서
쉽게 정리하지 않는 결정
다음 실수 앞에서
변명보다 사과를 고르는 태도
이 작은 선택들이
실패를 헛되지 않게 만든다.
나는 요즘
실패를 떠올릴 때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그때는 넘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이쪽을 향해 가고 있었구나.
이 말은
실패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다시 걸을 용기를 남겨준다.
실패해도
사람은 끝나지 않는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내 태도까지 끝난 건 아니다.
방향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다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살기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사람 쪽으로 방향을 잡은 채
살아가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그 방향만은
잃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