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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 만에 빚은 만두

만두는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함께 만드는 음식이라 더 맛있는 건지도.

by 따오기


새해 첫날, 점심이나 하자던 큰애가 갑자기 말일 저녁에 와서 자겠다고 연락이 왔다.

평소 보다 일찍 퇴근하던 길이라 오다 말고 근처 재래시장에 가서 시장을 봤다.


재래시장 만두를 사려다 차라리 만두를 빚어 볼까 싶어 만두피와 숙주. 고기. 당면. 부추. 두부를 샀다. 어려서 워낙 만두를 자주 만들던 집이라 맘만 먹으면 금방 만들긴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만두는 사 먹는 음식으로 대신했다. 만드는 과정이 번잡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맛은 덜하지만 편리함을 선택했다.


근데, 어제는 무슨 맘에 만두를 빚는다고 한 건지, 장 보고, 대청소하고 만두 준비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만든 만두소가 너무 많은지 두 남자가 100개는 더 할 만큼 양이 많다고, 손 큰 나를 은근히 디스를 한다. 뭐든 모자람 보다 남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시골에서 잔치하듯 만두소를 많이 만들었나 보다. 만두소를 재료별로 뚝딱뚝딱 만드는데 요리에 관심 있는 사위가 자꾸 관심을 보인다. 나중에 해 먹으려는지 유심히 보니 긴장이 됐다. 나는 요리를 대충대충 하는 편이라 누가 보는 건 좀 부담스럽다. 만두소를 다 완성하고 11시쯤부터 장인과 장모 사위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그이는 자기 먹을 거 10개만 빚는다고 하더니 나와 둘째 몫까지 빚었는지 30개는 빚은 것 같다. 사위는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꼼꼼하게 20개는 만들었다. 서로 자기 식구들 몫은 만들어야 한다고 개수를 세는데 얼마나 우습던지... 나야 이것저것 챙기느라 실제 몇 개 못 빚었다. 정말 몇 년 만에 빚어 보는 만두인지 감개가 무량했다. 게다가 사위도 만두 빚는 게 좋은지 기분 좋은 미소가 연신 번진다. 큰애는 손주 보느라 다 빚고 나니 나와서는 자기만 못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한다.


만두는 만두 그 자체의 맛보다,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우러지고,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함께 만드는 음식이라 더 맛나게 느껴지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만두를 빚고 제야의 종 타종 순간에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해피 뉴 이어’와 ‘복 많이 받게 해 달라’고 소망을 빌며 거실을 빙빙 돌았다. 어깨동무하고 소원을 비는 건 우리 집만의 독특한 새해맞이 액션이다. 어려서 애들이랑 그렇게 어깨동무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이번엔 사위도 같이 했다. 대신 미처 귀가 전인 작은애는 이십 대를 마무리하는 술자리에서 12시에 맞춰 전화를 해 왔다. 새해가 시작되는 그 순간은 모두 가족을 생각하는 순간이다.


올 한 해는 안 빚던 만두까지 빚으며 시작하는 걸 보니 엄청 분주한 한 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을사년이라 괜스레 ‘을씨년스러울까’ 걱정되는 2025년!, 그저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고 평안한 일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소박하게 만두를 빚고 먹으며 웃을 수 있는 날들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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