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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뒤에 숨은 작은 염려

내 딸이라 그런가 보다. 엄마라 그런가 보다.

by 따오기

백만 년 만에 회사 부서장 회식이 있던 날이다.

한창 회식이 무르익던 무렵, 결혼한 큰 딸의 전화가 걸러온다.

"엄마 어디야?"

"응~ 회식 중이야"

"알았어. 나중에 할게~(뭔가 시무룩~~~^^)

"그래~. 엄마가 끝나면 전화할게"

미안하지만 통화를 계속할 수 없어 바로 끊었다.


한참 후 카톡을 보니 가족 단톡방에 손주 사진이 올라온다.

가만히 보니 배경이 익숙한 게 우리 집에서 손주 똘망이가 놀고 있는 사진이다.

‘이 시간에 우리 집?’

‘아~ 그래서 딸 애가 전화를 했구나’나 싶어 무슨 일인가 물어봤더니

'집에 있다가 바람이나 쐴까'하고 전철역으로 나왔다가 생각 없이 우리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단다.

당연히 내가 퇴근해 있을 줄 알고 왔다나~.


하필 엄마가 회식하는 날인데~

전화를 끊고 나니 조금 전까지 흥에 겨워 있던 내 텐션이 잠시 정지된다.

'무슨 일 있나? 예고도 없이 추운 날 손주를 데리고 집에 오게?'

갑자기 가슴이 저릿한다.

어쩌다 바람 쐬러 친정으로 발길을 향했을 텐데

일 하는 엄마는 하필 오늘이 백만 년 만의 회식이라니

문득 미안하다.

내가 자초한 일은 아닌데

이런 걸 오비이락이라고 하려나?


회식도 1년에 몇 번 안 하는데.... 하필~.

부랴부랴 회식을 마치고 전철역을 향하면서 다시 딸애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하다 보니 사위가 승진대상자 명단에 올라 갑자기 회식으로 늦는다 해서

바람 쐬러 아이 데리고 나왔단다.

그렇잖아도 승진시기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더니 정말 잘 됐다.

결혼에 득남에 이제 승진까지 종합선물세트를 선물 받은 기분이겠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 승진소식에 애 둘러업고 친정으로 향한 딸애 심정이 그려진다.

직접 와서 기쁜 소식을 전해 주려고 그랬나? 아님, 분명 기쁘고 좋은 맘 한 가득일 텐데,

다른 한 편으론 자신만 후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아닐까?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로 동등하게 지냈는데

누구는 승진하고, 누구는 육아휴직 내고 하루종일 애 보는 신세가 되어 잠시 의기소침한 마음이 느껴진 건 아닐까? 당연히 기쁘겠지만 한편으론 뭔가 가슴 한 구석이 휑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닐지?. 내 딸은 뭐라 하지 않았는데 엄마인 나만 자꾸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핀다.


예전, 내 친구가 잘 나가는 남편 와이프도 나름 힘든 일이라고. 한쪽은 잘 나가고. 자기만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그런 걸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혹시 그런 기분이 들어 슬며시 엄마 찾아온 건 아닌지? 그건 아닐 텐데 엄마라 그런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딸 애는 별 이야기 없는데 엄마 생각만 줏대 없이 구만리를 달린다.

아마, 내 딸이서 이런 마음이 드나 보다.


그러나 딸아!! 행여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렴.

네가 선택한 배우자의 승진을 기꺼이 축하해 주렴!

100% 감정 중 심리적 박탈감이 0.5% 정도 들지라도

그건 아마 아주 잠시 일거야. 99.5%는 기뻐하거라. 얼마나 좋은 일이니~

너도 따뜻한 5월이면 다시 일터로 복귀하니 잠시만 더 똘망이에게 집중하거라.

머잖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치러 낼 전쟁 같은 날들이 펼쳐질 거란다.

지나고 나면 지금이 또 소중한 시간일지도 몰라.

지금 울 딸은 승진 보다 더 고귀한 '사람. 생명. 사랑'을 돌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을 하는 거니 자긍심을 갖고 맘껏 축하해 주렴~~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너와 아이의 저녁을 자주 챙기는 남편이면 백점이란다.

너의 남편도 '요즘 남편, 없던 아빠 '에 충실하느라 엄청 피곤할 거야.

그럼에도 승진까지 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애썼겠니? 참 대견하고 고맙구나!

당근 내 딸도 생전 처음 해 보는 엄마 노릇 힘들지?

우리 모두는 연습 없이 엄마 아빠 노릇 하면서 살아간단다.

그래도 너의 분신 똘망이가 주는 기쁨은 세상 그 어떤 기쁨보다 크잖니.

네가 우리에게 온 우주였듯 말이야.


힘들 땐 언제나 달려오렴. 그리고 마구 자랑하고 싶을 때도 언제나 달려오렴!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가능하면 미리 예고하고 오면 어제처럼 쓸쓸하진 않을 거야.

그때는 회식하다가도 뛰어 오마.

사랑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한다!!!


(딸애는 아무 말 안 했는데... 순전히 오버하는 마음으로 쓴 친정엄마의 지나친 염려랄까?)




#친정엄마 #승진 #요즘남편 없던아빠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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