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복궁 밤 산책

광화문 월대가 과거와 현대를 구분 짓는 경계선 같은 기분이 든다.

by 따오기

퇴근을 서둘러 경복궁을 찾았다. 몇 번인가 걸어본 궁궐이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궁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 쪽 저녁노을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며 궁 주변을 호위했다.


특히 광화문 월대 복원 후,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하고, 문 앞까지 가 본 적이 없는데, 막상 그 자리에 서니 감회가 남다르다. 차량행렬이 가득했던 도로가 월대로 바뀌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진도 찍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이 새삼스럽다.

마치 광화문 월대가 과거와 현대를 구분 짓는 경계선 같은 기분이 든다.


광화문과 근정문을 통해 만난 근정전은 언제나 근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시간의 흐름 앞에서 저절로 숙연해졌다. 근정전 앞 드넓게 깔려 있는 박석 위를 걸으며 옛 선조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 때나 지금이나 대공사에는 백성들의 피땀이 담겨 있기에…


이번엔 유난히 강녕전과 교태전이 인상 깊다. 왕이 기거하는 곳이라 용마루가 없는 강녕전 기와지붕의 완만하면서 담담해 보이는 곡선에 시선이 머물렀다. 숫기와와 암기와 사이의 골이 그렇게 고고해 보일 수가 없다. 평상시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다. 언젠가 본 자료에서 기와를 올리는 번와장이 ‘지붕을 올리는 일은 기술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작업’이라고 하던데 그분의 의도를 어슴프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밤에 봐서 그런지 강녕전과 교태전이 더 애잔하게 다가왔다.
해설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왕도 쉽지 않은 직업이었겠다 싶다.
미디어에 주로 비친 그들의 모습은 고뇌보다는 영화로움이나 정쟁에 휘말리고 방탕한 면이 적잖이 노출됐었던 것 같다. 왕도 왕비도 그저 인간이거늘…
늘 무거운 어깨를 못 내려놨을 생각을 하니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평소 낮에 보던 경복궁을 밤에 보니 여유도 있고, 곳곳에 켜져 있는 조명 덕에 운치도 있다.
경회루의 수양버들은 밤에 봐서 제 빛깔은 볼 수 없지만 누각이 그대로 반영된 못의 풍경은 또 다른 장관이다.

특히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였다는 수정전에는 <세종의 음악>이라는 국악공연이 펼쳐지고 있어 감상하진 못 했지만 반가웠다.


경복궁은 역사나 건축물 자체의 의미도 깊지만 주변 북악산, 인왕산의 차경까지 어우러져 더 멋스러운 궁궐이다. 야간관람이라 그런지 인왕선 산성의 불빛에 인상 깊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더니 그이 따라 한옥 수업 몇 년째하고 나니
과거에는 몰랐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점점 우리 것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관람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려는데 문득 맞은편 건물에 펼쳐진 네온사인이 웬일인지 반갑다. 어느새 도시의 삶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잠시 꿈결처럼 과거로 순간이동했다가 돌아온 기분이랄까?

그런데 다리가 아픈 걸 보니 나는 현실세계에 서 있는 게 맞는 가 보다.


나처럼 두 시간 동안 잠시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몽롱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분이 있다면 감히 추천해 본다.

경복궁 밤 산책을...





혼자라면 일부러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함께하자고 초대해 주신 <열두달 에피소드>님과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재밌게 설명해 주신 <안희선해설사>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경복궁밤산책 #경복궁 #경복궁야간관람 #열두달에피소드 #안희선해설사 #번와장 #강녕전 #용마루 #월대 #광화문 #박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