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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은 갈 때마다 새롭다.

책은 책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유익하다.

by 따오기

오늘은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 특별관람을 했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경회루 누각에 직접 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폭염이 내리쬐는 휴일, 경회루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함을 느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누각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인 풍경이 장엄하게 다가왔다.
과거, 이 누각에서 연회를 열고 경연을 벌였던 이들이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는 듯했다.


지난 5월, 경복궁 야간 관람 이후 벌써 세 번째로 경복궁을 찾았고, 창덕궁 후원까지 다녀왔다.
처음엔 지인들과 먼저 다녀왔는데, 나 혼자만 본 것이 아까워 그이에게 경복궁의 야경을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한 번 더 방문했다. 해설사 선생님이 경회루 특별관람이 있다고 알려주시기에, 그이와 함께 누각에 직접 올라가 보고 싶어 더위를 무릅쓰고 또다시 예약했다.

이상하게도 궁은 갈수록 새로운 곳이 눈에 들어오고, 볼수록 더 보고 싶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궁에 가면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더욱 생생히 느끼게 된다.


사실 나는 원래 역사에 특별한 흥미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한옥 관련 일을 하고, 나도 가끔 한옥 수업을 맡게 되면서부터 점점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한옥 만들기 수업을 하면서, 내가 우리 것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있어야 아이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도 많아지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싹텄다. 한옥의 부재를 설명하고, 만들어보는 체험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역사까지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덕분에 요즘은 오히려 그이보다 내가 더 자주 역사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들춰보는 책은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우리 집 거실 책장 한 모퉁이에 시리즈가 교과서처럼 자리 잡고 있다.
책도 흥미롭지만, 유튜브에서 '벌거벗은 한국사'나 '차이나는 클라스'의 '경복궁과 종묘' 관련 영상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몇 번 보여준 적도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 마치 궁궐 투어의 바이블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유홍준 선생님의 영상뿐 아니라 '주PD의 역사여행',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이야기, 『역사의 쓸모』를 쓴 최태성 선생님의 영상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역사는 교과서로 배우는 것보다 책이나 영상으로 접할 때 훨씬 실감 나고 이해가 잘 되는 듯하다.
역사 선생님들께는 미안하지만, 영상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짧고 강렬하게 전달하니 더 인상 깊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역사 수업은 진도에 맞춰 방대한 내용을 다뤄야 하고, 시험이라는 관문도 있으니 외워야 할 것이 많아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궁을 찾을 때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드라마나 영화를 봤을 시간이지만, 이젠 자료를 찾아 읽고 듣는다.
아, 그래서 옛날부터 사극이 그렇게 인기 있었던 걸까?
세종대왕이나 태조, 정조 같은 인물들이 역사 속의 모습이 아니라 배우의 얼굴로 먼저 떠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역사 드라마나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은 역사 고증에 더욱 진지하게 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은 책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유익하다.
특히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숨어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생생해 좋다.
서울에 있는 다섯 궁궐에 대해서만 제대로 공부해도 역사 공부의 절반은 될 것 같다.

그래서 요즘 궁궐투어가 그렇게 인기인가? 오늘 경복궁 관람객의 반 이상은 외국인이었다.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우리 것을 더 잘 알아야겠다는 각오가 서던 날이기도 했다.


지난봄, 경복궁을 찾았을 때 수정전 앞뜰에 서 있던 나무가 층층나무 같아 보였다.
그이와 함께 '층층나무다, 아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층층나무과인 '말채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말채나무를 검색하다가 박상진 선생님의 『궁궐의 우리나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당장 도서관에 갈 수 없어 전자책 플랫폼에서 찾아보았다.
책에는 궁궐의 나무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나무의 생태학적 특징뿐 아니라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의 고문헌에 나오는 나무 이야기를 주석처럼 덧붙여 놓아 깜짝 놀랐다.
나무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나 궁중에서의 활용 사례 등을 자세히 담고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앞으로도 나무가 궁금할 때마다 『궁궐의 우리나무』를 펼치게 될 것 같다.


최근에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실감 나게 읽고 있다. 출퇴근길, 전자책으로 말이다.
돌아오는 가을엔 창경원이었던 창경궁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참, 도서관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책을 주문하지 않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전자책 읽기는 나의 즐거움 중 하나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당장 읽고 싶을 때나 도서관에 갈 수 없을 때, 또는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공공도서관이나 전자책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만 가도 수많은 전자책이 구비되어 있다.
관심만 있으면 볼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도서관과 전자책 플랫폼의 ‘내 서재’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책들이 마치 내 재산처럼 뿌듯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무조건 종이책만 읽으라고 강요하기엔,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리고 고마운 일은, 좋은 콘텐츠는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다양하게 재창작된다는 것이다.
이를 OSMU(One Source Multi Use)라고 부른다.
원작이 좋기만 하다면, 오히려 지금은 더 다양하게 확산될 수 있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궁궐을 걷고,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 역사를 다채롭게 만나고 있다 보면, 역사 속 인물들이 눈앞에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매체는 다르지만, 각각의 매체는 고유한 목소리로 역사를 이야기한다.


엊그제는 창덕궁 낙선재를 다녀온 후, 십 년 전 봤던 영화 『덕혜옹주』를 다시 보았다.
분명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인데, 기억이 희미해졌다가 이번에 다시 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덕혜옹주가 귀국할 때 공항에 궁녀들이 나와 큰절을 하던 순간이었다.
영화라 약간의 각색은 있었겠지만, 낙선재 관람은 내게 덕혜옹주를 다시 소환하게 했다.


역사는 기록과 문화유산을 통해 만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궁궐은 갈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요즘, 과거를 만나고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미래의 후대에게 물려줄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진다.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나의 목소리로 나의 현재를 남기고 싶다.
그래서 오늘, 경회루를 다녀온 이야기를 이곳에 이렇게 기록해 둔다.



경회루에서 바라 본 경복궁 궁궐과 1층 누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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