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꿈도 희망도 잠시 보류다.
휴일이다.
거실 창을 활짝 열어 두고 묵혀둔 지난겨울 빨래를 연거푸 돌린다.
내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닌데 분류하고 돌리고 건조하고 일부는 건조대에
너는 일이 시간이 제법 소요된다.
매일 바쁜 딸애가 옷 정리를 하기로 작정을 했는데 겨울 옷을 산더미처럼 내어 놓는다.
적당히 버렸으면 좋겠는데, 또 입을 거라고 죄다 세탁기 주변에 한 보따리 쌓아 놓는다.
막상 입을 땐 입을 옷도 없는데 왜 이렇게 옷더미에 치여 사는지. 도무지 미니멀 라이프가 되지 않는다.
오래된 영화 한 편을 틀어 놨다. '오마주'라고... 영화를 보며 졸다 깼다 하는데 계속 플레이는 해 놓고 있다. 영화가 다 끝나 가는데도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겠다. 아주 드라마틱하거나 쇼킹하지 않고 너무 현실적이라 그런가? 그런데도 계속 영화에 신경이 쓰인다. 지쳐 있는 여성 영화감독의 일상이 피폐해 보이면서도 오로지 영화만 쫓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네마천국처럼 경쾌하진 않지만 비슷한 류인 것 같다. 감독은 어디선가 그런 인터뷰를 한다 '영화도 삶도 끝이 나지 않는다. 다만 포기를 할 뿐이다'라고...
영화에서 그의 남편이 그런다.
'꿈꾸는 여자랑 사는 건 외로워'라고... 주인공 남편의 입장이 살짝 공감이 간다. 그렇다면 서로 꿈을 꾸면 샘샘이지 않을까 싶다. 꿈을 꾸는 사람 옆을 묵묵히 지켜주는 게 더 힘들 테니.
아니. 모두 꿈을 꾸어야 하는 건 아닐지도....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게 좋은 사람도 있을 테니...
거실에 조용히 누워 있으니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웃들 싸움 소리도 들리고
차들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시간이 좋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주변 소리가 한가롭게 들리는 평범한 오후가 좋다.
시골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여름방학 내내 빈둥거리며 자연의 소리를 친구 삼아 지내던 유년의 여름날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 걱정도 없고. 큰 희망도 없지만, 그래도 졸업해서 도회지를 나가면 뭔가 재밌는 일이 펼쳐질 것 만 같던 그때가.
꿈은 뭘까?
살기 위한 구실일까? 막연한 핑계일까? 진짜 있기는 한 걸까?
꿈이 없으면 일상이 너무 밋밋해서 만들어 놓은 신기루 같은 단어일까?
오늘은 꿈도 희망도 잠시 보류다.
그저 지금 이대로,, 이 휴식 시간이 좋다.
멍한 상태. 무중력 상태 같은 이 시간이 좋다.
너무 쉼 없이 바쁘게 사는 것 같다.
가끔은 휴식이 필요할지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돌돌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제대로 집중하지 않아도 잘도 나오는 티브의 적당한 소음소리.
어제부터 틀어 놓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까지.
그 무엇 하나 튀지 않고 거슬리지 않게 합창하듯 들려오는 소리들이 싫지 않다.
모두 제 자리에 있다고. 이상 없다고 어딘가 계속 소리를 타전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나의 이런 몸짓조차도...
잠시 꿈도 쉬어 가는 휴일 오후다.
(생금집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뒷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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