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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열차에서

차창에 기대고 있는 60살 남자 모습에 열 살 소년이 겹쳐 보인다.

by 따오기

태백으로 가는 태백선 열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유년의 기억을 찾아가는 그이의 여정에 동행했다.

태백 하면 갈색이나 흑빛 회색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탄광촌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가 보다.

오늘따라 날씨가 흐려서 하늘도 먹색이다.


그이가 이렇게 태백을 가고 싶어 했는지 미처 몰랐다.

아버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최근 들어 자꾸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탄광에 다니던 그 시절이 그이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나 보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황지중앙초로 전학가, 6학년 1학기때 다시 서울로 왔다는 그의 유년 이야기가 왠지 안쓰럽다.


나는 초중고를 한 동네에서 자라서 이 십년지기 친구까지 있는 거에 비하면 그이의 학창 시절은 어디 한 군데 정착한 게 아니어서 늘 이방인 같이 지낸 것 같다. 그나마 황지에서의 시간이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지낸 시절이었을지도…


추억여행이라고는 하나 초등학교 동창 그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그이가

태백에 간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텐데…

탄광촌 숙소도 사라지고 다른 건물로 바뀌었을 텐데 어디에 가야 집터가 있을까?

어디에 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저 흑빛 황지천변을 거닐며 사십 년도 훨씬 지난 그날들을 만나려나?


오늘은 태백역에 내려 그가 하자는 대로 하고. 가자는 대로 갈 예정이다.

그이의 엄마 아버지 대신 그이의 보호자겸 동행인이 되어 유년을 함께 걸어 주리라.

영월을 지나간다. 비가 점점 세차지고 있다.


기차는 달리고, 차창에 기대고 있는 60살 남자 모습에 열 살 소년이 겹쳐 보인다.

엄마 손 잡고 서울 왔다 돌아가는 소년의 모습 같이.

이번 여행 내내 그이의 설레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시간 내내 잠도 안 자고 그이는 창 밖 풍경만 연속 찍고 있다.

평소엔 내가 찍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이의 폰이 바쁘다.


지금 지나는 역은 민둥산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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