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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나의 글 창고

나는 오늘도 열심히 식량을 쌓듯 글을 쌓아 두련다.

by 따오기

브런치에는 ‘글 발행 안내’라는 알람 기능이 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글로 완성해 보세요.” 라는 무서운 알람이 오늘도 도착했다. '글을 안 쓴 지 벌써 2주가 되었구나'. 매일 끄적이긴 하지만 브런치 업데이트는 늘 늦장을 부린다. 알람을 받을 때면 마음이 급해지고, 무언가 써 내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치솟는다.


사실 나는 20년 넘게 글방을 운영해 왔다. 다음 칼럼 시절부터 블로그까지, 꾸준히 글을 썼다. 그런데 시대가 변할수록 플랫폼도 조금씩 변화하고 어쩔 수 없이 이삿짐을 싸야 했다. 그 시절에는 커뮤니티 기능도 활발해 서로서로 매일매일 안부를 전하는 재미도 쏠쏠히 있었다. 지난 글방에서 어느 날 맘에 드는 글을 정리하다 보니 글 다운 글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유롭게 내 맘을 스케치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브런치에 와서는 글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자꾸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달까?. 워낙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아 가끔은 의기소침해지고, 나도 모르게 부담이 커진다.


그럼에도 나만의 글방 하나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그렇다고 “나 브런치 작가야” 하고 소문을 낸 적은 거의 없다. 남편과 지인 두세 명만 이 방을 안다. 남편은 가끔 “자기를 볶아 먹고,무쳐 먹고 튀겨 먹다가 결국 제자리만 갖다 놓으라”며 농담을 한다. 그만큼 내 글에는 남편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흉봤다가, 미워했다가, 결국엔 애틋함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태반이다.


나의 글쓰기는 내 마음과 내 주변을 드러내는 대부분이다. 일상을 소재로 삼다 보면 주변이 노출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늘 망설이곤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를 지탱하는 근육이다. 브런치가 있기에 꾸준히 글을 쓰려 노력하고, 소재를 찾기 위해 더 눈을 크게 뜨고, 책 한 줄이라도 더 읽는다. 조회수가 오르지 않고, ‘라이킷’이 적어서 가끔 의기소침하기도 하지만 브런치에서 알람이 오면 또 다시 글을 쓰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오늘은 처음 브런치를 개설하며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잘 쓰는 글만 고집하지 말고 성실하게 쓰자’ 던 다짐이 적혀 있었다. 잊고 있던 초심을 다시 확인했다. 맞다, 글 쓰는 시간이 행복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성실하게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내가 본 풍경과 꽃, 내가 만난 사람들을 나의 시선으로 하나둘 적어 나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이 글들이 모여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나의 글 창고다. 언제든 들어와 꺼내 읽을 수 있는 나만의 저장고. 훗날 내 딸들이 엄마를 보고 싶을 때 이 창고를 찾아주면 좋겠다. 엄마가 얼마나 자유롭고 싶어 했는지,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사실은 세상과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알게 된다면, 이 글방은 충분히 의미 있는 공간이다.


부디 브런치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고 오래오래 이 곳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대신 문턱이 낮아 누구나 편히 놀러 와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골 장터같이 편한 플랫폼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내 가족과 친구들이 나의 글 창고에서 곶감을 꺼내 먹듯 옛날 이야기를 하나씩 찾아 읽으며 수다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식량을 쌓듯 내 마음이 그득 담긴 글을 쌓아 두고 있다.



점심 식사 후 잠시 즐겨 찾는 담쟁이넝쿨이 있는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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