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당지를 걸으며 소설 속의 영두와 리사를 떠올렸다.
지난 6월부터 『대온실 수리 보고서/김금희』를 집중해서 읽고,
가을에는 창경궁을 꼭 한 번 찾아보리라 마음먹었다.
가을인지 여름의 끝인지 모를 지난 긴 추석 연휴에 몸살 감기가 온 걸 무시하고 창경궁을 찾았다.
연휴 무료개방이라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인파에 떠밀려 다니느라 궁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다.
사실 평소에도 창경궁 입장료가 천 원이라 비싸서 안 간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지나치기만 했고, 속까지 들어가 보지 못한 창경궁은
생각보다 오래된 나무도 많고, 아담한 게 걷기에 좋은 궁궐이었다.
창덕궁 후원을 거닐 때 담장 너머로 보이는 하얀 식물원 지붕을 보며
몇 번이나 기웃거리곤 했는데 묘하게 한 번도 발걸음을 들이지 않던 곳이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안 가 본 궁이었는데
이제라도 가 보니 역시 와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궁궐의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
전각을 훼손하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들여 ‘창경원’으로 불렸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괜히 외면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이는 중학교 시절 소풍을 왔던 추억을 더듬으며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장소가 어디였는지 한참을 찾아 헤맸다.
내 기억 속 창경원은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어느 날,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 돌담과 그 앞에 웅성대던 사람들로만 남아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어도
누군가는 안으로 들어가 보고,
누군가는 멀찍이서 바라보고,
또 누군가는 존재조차 모른 채 지나쳐 왔겠지.
춘당지에서 펼쳐지는 물빛연과 미디어아트 공연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빛들이 오랜 나무를 아프게 하진 않을까
잠시 조용히 걱정도 되었다.
인파가 너무 많아 오래 묵은 백송과 향나무만 겨우 사진에 담고 다음을 기약했다.
대신 ‘다음엔 덜 붐빌 때 와서 조용히 거닐어보리라’ 혼자만의 다짐을 했다.
이상하게 창경궁은 아픈 역사 때문인지, 책 때문인지, 나무 때문인지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궁궐이다.
춘당지를 바라보며 소설 속 리사와 영두가 스케이트를 타며
다투던 장면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장면이 묘사된 부분만 다시 옮겨 적어두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와의 짝사랑은 지난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도서관대회 행사장에서
우연히 작가와 직접 조우하며 이제와 책장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창경궁을 찾던 날부터 심해졌던 감기도 이제야 떨어진 것 같고
해야 할 마음 속의 숙제가 많았는데 모든 걸 미루게 했던 왠지 모를 계절앓이까지 함께했던 10월을 창경궁 춘당지 사진과 글로 마무리해야겠다.
어쩌면 며칠 후 나는 다시 춘당지 주변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엔 리사도 영두도 아닌 나와 또 다른 누군가를 그리며
흐르는 물빛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10월 8일 저녁 무렵에 찍은 창경궁 사진과 소설 속 춘당지 묘사 구절들을 담았다.
프랑스식 정원과 대리석 분수대를 거기를 지나. 좀 더 가면 긴 8자형 연못인 춘당지가 있고 바람이 크게 불면 휜 가지를 연못 물에 씻는 버드나무들이 있었다는 것을
겨울이면 얼음이 두껍게 얼어 마치 연못이 다친 듯하지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천천히 움직이는 잉어들이 그 폐쇄의 풍경에 빗금 같은 균열을 내고 있었음을
월근문을 통과한 우리는 솔숲을 지나 간밤에 내린 눈이 솜털처럼 내려앉은 춘당지까지 갔다. 소나무가 심긴 작은 섬을. 우리는 진귀하게 생긴 소나무들을 지나 인적이 드문 춘당지 앞에 섰고 물음표처럼 목을 세운 채 떠다니는 오리들을 바라보았다.
리사는 대답하지 않고 춘당지를 바라보며 섰다. 그새 춘당지에는 저녁 윤슬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따금 원앙들이 일으키는 잔물결 위로 나무와 진달래와 오래된 석탑이 드리워지면서 마치 연못 속에서는 그것과 동일한 세계가 하나 더 있는 듯한 아득한 착각까지 드는데, 춘당지에서는 이제 아무도 스케이트를 타지 않았다. 유진이 쪼르르 내려가 발을 디뎌보았지만 그건 털고무신으로는 어림없었다. 엉엉 울면 그 눈물이 춘당지 연못까지 흘러간다.
춘당지. 빙판은 리사와 내가 우리 앞에 나타난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어떤 모색을 함께해 본 장소이기도 했다. 그 괴로웠던 해의 마지막 장면을 리사는 어느 밤 나를 깨웠고 스케이트를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리사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벌여 나를 곤경으로 몰아놓은 너를 믿다니 하지만 나는 점퍼를 껴입고 조용히 스케이트를 챙겨 리사를 뒤따랐다. 하숙집 나무 계단에서 언제나 소리가 났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무게를 싣지 않고 내려갔다.
3월의 춘당지에서는 원앙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았다. 왕주무관이 여기 원앙들은 겨울에도 궁을 떠나지 않는 텃세라고 알려주었다. “사랑의 새잖아요.” 제갈 도희가 말하자 왕주무관이 동의했고 나는 두 마리와 함께 다녀서 그렇게 보일 뿐 사실 일부 종사하지는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대온실에서 나와 춘당지와 옥천을 따라 걸었다. 나무 수액을 먹으려는지 곤줄박이가 팥배나무 둥지를 쪼아 댔다.
백년 가까이 된 스케이트는 가죽은 거의 해졌고 날도 녹슬어 갈색이 되었지만 칼날의 모양이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스케이트 날에 뚫은 구멍, 날렵한 앞코의 실루엣은 여전했다. 춘당지 빙판을 날쌔게 달렸을 할머니를 상상해 내기에 충분했다.
스케이트를 타던 창경궁의 밤, 여전히 나를 모욕하는 리사를 앞질러 아슬아슬한 불행을 촉감하며 질주해가던 열네살 나였다.하지만 이제 나는 그 밤의 춘당지 위에 혼자 서 있고 싶었다.
“아, 그 나무, 정말 슬픔이 눈에 보인다면 그런 형태일 거예요. 춘당지 쪽 월근문이 정조대왕이 보름마다 사도세자를 기리는 경모궁으로 거동하던 문이거든요. 사도세자 사당이요. ‘이 문을 거쳐 가며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내 슬픔을 풀 것이다’라고 한 말이 [승정원일기]에 나와요. 슬픔으로 열고 그리움으로 닫는 문인 거죠.”
춘당지에서는 이제 아무도 스케이트를 타지 않았다.
산아와 스미를 데리고 화려한 태피스트리처럼 단풍잎들을 짜올린 나무들을 지났고 춘당지 앞에 잠시 서서 나는 오래전 겨울 이곳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일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그런 거 해도 돼요,” 벌새가 처음으로 나를 향해 윙윙댔다.
“아니 안돼. 하지만 안 되는 일도 가끔 해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
산아는 자기도 겨울에 와서 스케이트를 타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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