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강정으로부터

뭐 특별할 게 없는 소울푸드 리스트.

by 민들레

닭강정을 산다. 나는 뜯어먹는 게 제맛이라 후라이드를 좋아하는데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뼈를 발라내는 수고를 귀찮아하므로 아쉽게도 선택은 대부분 닭강정이 된다.

하여 결혼 이후 나의 치킨은 앞으로 향후 20년쯤 더 닭강정의 시대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닭강정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와 함께 해온 음식을 떠 올려본다.

제일 먼저 너구리라면이 떠 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고 연탄불을 피우던 때라 연탄불 위에 양은냄비를 올려 너구리라면을 끓이는데 식사 약속이 있어 나가시려던 아버지께서 냄새를 도저히 못 참겠다며 국물 한 국자를 떠 마시고 나가시던 장면이 떠오른다. 너구리라면이 내게 인상 깊은 음식이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시는 끓여드릴 수 없게 되어서인지, 그날 아버지가 우리만 두고 나가시던 저녁약속이 싫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 너구리라면은 내가 기억하는 음식 중 가장 먼저 떠 올려지는 음식이다. 그리고 즉석떡볶이. 나의 학창 시절과 대학교 시절을 아우르는 음식이다.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던 시절. 회수권을 아끼려고 40분씩 걸어 다니던 때. 그 와중에 친구들과 회수권을 모아 떡볶이를 사 먹을 만큼 중요한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며칠씩 걸어 다닐 수고로움과 떡볶이가 등가교환이 될 음식인가 싶지만 그때는 너무나도 무겁게 떡볶이에 비중에 실렸던 거다. 일주일 걷는 대신 한 번의 떡볶이를 먹을 만큼.

살던 동네에는 즉석떡볶이 골목이 있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술자리보다 떡볶이를 더 많이 먹으러 다녔던지라 나의 학창 시절을 대표하는 음식은 즉석떡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다음은 정말 생뚱맞은 음식 하나. 물에 만 밥과 꽈리고추 멸치볶음이다.

이 음식은 조금 더 디테일을 갖추어야 되는데 밥이 차갑다면 약간 따뜻한 물을, 밥이 따뜻하다면 찬물을 부어서 미지근한 상태의 물밥을 만든다. 거기에 적당히 매운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함께 먹으면 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이 음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는데 고된 밭일을 하고 와서 입맛도 없이 앉아있다가 물만밥과 꽈리고추멸치볶음이 떠오르는 순간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튕겨서 일어나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에 나를 그렇게 먹이신 건지 아니면 엄마가 그렇게 많이 드셨는지 한번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사건도 없었는데 소울푸드로 순식간에 치고 나온 메뉴인지라 내가 잊고 있을 숨은 이력이 궁금해지는 음식이다.


인생의 페이지를 대표할 음식이니 하나쯤 화려하거나 있어 보임직한 음식이 있어도 나쁘지 않을 텐데 나의 삶이 나의 음식과 비슷한 성향인 듯하다. 흔한 것. 튀지 않는 것.

그래 여태껏 이렇게 살았는데 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되지 인정받을 음식일 필요는 없다.

하여 닭강정으로부터 너구리 라면과 즉석떡볶이에 물만 밥과 꽈리고추멸치볶음이 내 40살 인생의 음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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