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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ug 07. 2024

모르면 문제고 알면 속상함

엄마가 알았으면 했던 것들

적지 않은 덩치를 가진 것, 꾸미는 것에 흥미가 없다는 것 등 몇몇의 이유들로 나는 옷을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맞는 사이즈를 찾는 것도 어렵고 입어봐야 하는 번거로움도 싫고 거기에 사람들이 본인에게 좀 큰 옷들을 넘겨주기라도 하면 나는 레이스나 치마가 아닌 이상 그러한 옷들로도 지내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


나에게 옷을 자주 넘겨주는 가장 큰 지분은 사실상 나의 엄마이다.

모녀가 날씬하여 캐주얼하게 옷을 같이 입으면 좋겠지만 나나 엄마나 그래도 비슷한 덩치라는 공통분모로 20년의 나이차를 넘나들며 같이 옷을 입는다.

다만 티셔츠 하나도 몇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한 나와는 달리 우리 엄마는 매우 확고한 본인의 스타일과 취향이 있는데 윗도리는 팔길이가 중간 길이면 모조리 탈락이다. 칠부고 팔부고 민소매도 거부. 팔을 다 덮는 긴팔이나 반팔 외에는 입지 않는다. 윗도리뿐만 아니라 바지도 딱 맞춰서 입는다. 옷이라는 건 유행에 민감한 품목이라 패턴이며 재질이며 길이감도 유행하는 아이템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도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어떠한 매장과 어떠한 유행 속에서도 찾아낸다.


그렇게 옷을 '나'에 비해선 가끔 구입하는 편이고 취향도 있고 좋아하는 브랜드도 있는 울 엄마의 눈에는 나의 이런 편하기만 한 옷차림이 너무나 보기 안 좋으셨나 보다.

너도 좀 꾸미라고 매번 잔소리를 하는데 그냥 웃으며 넘긴 지가 역시나 20년이 되어간다.


'엄마. 내가 엄마 말대로 그렇게 꾸미고 다니면 지금 이렇게 엄마 취향의,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엄마를 못 사줘. 내 거 살 거 안 사니까 내가 엄마 옷을 사 줄 수 있는 거야'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뻔한 상황인데 이게 안 보이나?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인데 내가 그렇게 철 따라 코트라도 한벌, 옷이라도 한벌 맞춰드리는 게 내가 안 써서 모은 돈이라는 걸 왜 모르나? 그렇게 십여 년간 엄마가 몰라서 문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엄마의 티셔츠를 하나 사 드리려고 매장을 방문했다. 들어가자마자 딱 엄마가 좋아할 스타일의 옷을 집었고 그 뒤로 몇 벌을 더 입어보셨지만 역시나 원픽은 제일 처음의 그 옷.

15분 만에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휴 내가 또 생각 없이 집어 들었네. 너도 니 거 안 사고 내 거 사주는 걸 텐데 또 사라고 하니까 너무 넙죽 받고 말았다 얘"


엄마가 알았다. 10년 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를.

그런데 맘이 영 시원하지가 않았다.

10년의 난제가 풀렸는데 그렇게 말하며 눈치 보는 엄마가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뭐 이런 거에 워낙 관심이 없고 엄마야 딱 취향이 확고하니까 오히려 고르기도 편하고. 내가 필요를 못 느끼는 거지...."

대충 이렇게 말하고 묵묵히 내비게이션의 말만 열심히 들으며 따라갔다.


아.. 대체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몰라주면 문제고 알아주니 속상하고.

나도 답을 모르겠는 걸 보면 내가 출제자인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몰라줘서 속상했는데 알아줘도 속상한 이 이상한 상황에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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