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걸린 십자가

먼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by 민들레

지하실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신 부모님 덕분에 주말은 누구보다도 바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청소와 식사준비, 반주와 주보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작고, 티 나지 않는 모든 일이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침 먹고 출근하는 루틴처럼 토요일이면 청소하고 정리하고 주보까지 챙겨두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건 나의 믿음이 겨자씨만큼 정도는 있어서라기보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었다.

성전을 청소하는 일은 그중 먼저였는데 우선 목사님이 설교하실 강단을 치우기 시작한다. 십자가상의 먼지를 닦아내고 의자의 먼지를 닦고 강대상을 닦고 단상을 내려와서는 사람들이 앉는 교회 장의자를 닦기 시작한다. 성경책이 놓이는 선반을 먼저 닦고 의자를 닦고 바닥을 청소기로 마무리하는 과정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일이 몇 년간 반복되고, 아프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강단을 이어서 지상의 개척교회로 이사하기까지 그저 토요일은 내게 성전청소하는 날이었다.


7~8년 차 청소를 하던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습관적으로 하지 않고 성전청소를 하면서 설교할 아버지를 위해서, 의자에 앉으실 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었다면 그분들도 물론이려니와 내 삶이 더 은혜롭지 않았을까 나는 그저 그 긴 시간을 습관적으로 흘려보냈구나 하는 그런 깨달음이었다. 그 이후 3~4년은 자리에 앉을 분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그 은혜를 내가 받는 귀한 시간이었으나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곧이어 성전을 정리하게 되면서 다시금 그 은혜를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출석하는 교회는 작다고 할 수 없는 중대형 교회이다. 나는 2층에 앉아서 목사님을 실물보다는 TV화면으로 보며 설교를 듣는다. 큰 교회에서의 나의 위치는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성도이다.

내가 청소를 하지 않아도, 반주를, 주보를 만들지 않아도 너무나 잘 운영되는 교회. 그런 섬김을 받는 것이 어색하다가 좋았다가 이제 슬슬 선데이크리스천으로 전락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질 찰나 설교 시간에 십자가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2층에 앉은 나의 눈높이보다 더 높이 세워진 십자가 상 위의 먼지가 나에게 많은 말을 걸어 주었다.


매주 십자가상을 닦을 만큼 십자가가 내게 가까웠던 때는 나도 모르게 믿음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고

이제 저 매주 닦을 수도 없을 만큼 높아진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예배드리는 시기가 와서야 내가 가진 믿음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믿음이 조금도 자라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봉사의 일이 많을 때는 나도 편하게 섬김 받으며 믿고 싶다고 투정 부리며 은혜를 받지 못했고

이제 섬김을 받아 봉사의 자리에 없어도 되는 때는 하는 일이 없으니 은혜를 받지 못한다. 참 어리석고 미련하니 하나님은 물론이려니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주일까지 강단에 서신 아버지는 아직도 날 위해서 애끓는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겠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목사님 저 구역예배 참여하게 구역 좀 바꿔주세요!"


이 말이 등록하여 2년 만에 담당 구역목사님께 처음 드린 말이다.

이제 내가 한걸음 나아가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찬양을 좋아하지만 그 어떤 은혜도 내가 받지 않으면 은혜로 남지 않는다. 내가 십자가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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