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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맑은 날씨

환기를 하고 마당에서 전 부치기

by 민들레

안개인가 싶을 만큼 가시거리가 안 보이는 날씨가 며칠간 이어졌다.

목이 따끔따끔하고 얼굴이 간질간질한 날씨. 실내에 있는 대형 공기청정기가 붉은색으로 돌고 도는 그런 날씨.

명절을 앞두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었고 다들 각자의 이유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나 그것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명절 극악 배송을 무사히 뚫어 도착한 과일들을 차곡차곡 저장고에 옮겼다.

사과도 배도 레드향도 샤인머스켓도 조상님들이 좋아하실 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과일로 아이들이 잘 먹을 과일로 준비한다.

그 와중에 오래간만에 맑은 날씨가 되어서 보일러를 외출모드로 켜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 환기를 시킨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도 환기를 해야 한다고는 하는데 맨눈으로도 뿌연 날씨에 창문을 열게 되진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고인 공기의 두려움이냐 보이는 미세먼지의 무서움이냐를 선택하는 것인데 어느 것을 선택해도 마음은 가볍지가 않다.

환기를 할 수 있는 것으로도 감사할진대 기름 냄새 가득 풍겨야 할 '전'을 나가서 부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더더욱 감사한 날씨 조건이었다.

물론 바람이 불어서 버너의 불이 약하기는 했지만 장장 2시간을 있는 기름 다 비워 새 기름 뜯어가며 부치고 나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간소화하라고 해도, 물 한잔 올려도 뭐라 하지 않겠다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늘 '전'을 하게 된다.

대체 '전'이 뭐라고.

김치전은 자주 해 먹는 편인데 김치전만 하면 안 되려나? 또 이런 되지도 않을 생각을 잠시 해 봤다.

과일이 많은 접시를 차지해 줄 터이니 '전'만 하면 그래도 큰 준비는 대충 끝난 셈이다.

내년에는 '전'을 안 하려나? 상에 올리는 거 말고 먹을 거 위주로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번 더 생각하고

이것저것 만들어진 전을 차곡차곡 담았다.

아마 꽤 많은 나 같은 구시렁 '전'을 부치는 모르는 모든 이들에게 이유 없는 전우애를 느끼게 되는 명절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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