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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연휴

처음 연휴를 보내본다.

by 민들레

설 명절연휴, 추석명절연휴

이 단어들에서 지난 결혼 10여 년간 명절에 빙점을 찍고 보냈다.

시댁이 5시간 정도의 장거리에 있는터라 평소에 자주 내려가보지 못하니 명절에서만큼은 시댁에서 보내기로 해서 늘 연휴의 시작 전에 출발하여 연휴의 끝과 함께 올라오는 일정으로 연휴는 없는 명절의 일정이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뒤에 어머님이 차례와 제사를 넘겨받으라 하시고는 역귀성을 해 주셨는데

이번 연휴에는 지난달 무릎관절 수술을 한 아버님이 움직이기가 편치 않다며 올라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전에 미리 말씀을 주시니 아무리 차례를 우리 집에서 차린 다고 한들 연세 있으신 시부모님 두 분만 명절에 덩그러니 계시는 게 신경 쓰여 그러면 우리가 올라가겠다 하니 아이들과 우리가 움직이는 게 번거롭다고 다시 올라와 주시기로 결정.

부랴부랴 기차표를 구했고 올라오시는 당일 새벽 눈이 시작되었다.

시부모님이 출발하시기 전까진 그래도 이곳의 눈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었는데

아버님이 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아이들도 그렇고 눈도 온다 하니 안 오신다고 열차 취소를 외치셨다.

우리라도 내려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무색하게 오후부터 엄청난 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건커녕 집에 갇혀버렸다.


1박 2일 신랑은 눈만 5번은 치웠다. 오늘 이제 눈이 그친다고 하니 내일 마무리로 한번 더 치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횟수로 눈을 치웠는데도 차가 움직일 만큼 마당을 치우는 건 포기하고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길만 내놓은 상태이다. 지난번 습설에 차고천막이 무너진 전적이 있어 하우스가 무너질 것이 염려되어 블로우어로 하우스 위에 쌓인 눈을 열심히 치워 주었다.

장비를 가지고 열심히 치우는 신랑이랑 아이들 덕분에 나는 집 밖에 한걸음 나가지도 않고 연휴의 일정 간 볶음우동도 해 먹고, 떡볶이도 해 먹고 낮잠도 2시간씩 자고 명절보다는 연휴로 그렇게 보내고 있다.

하늘이 선물해 준 이 이상한 연휴에 강제휴식(?)을 당한 많은 며느리들은 아마 내적댄스를 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티나게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 중요 포인트다.


귀성하시기로 한 날 아침 기차표를 취소하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니 못내 아쉬워하셨다.

아마 어머님 입장에서는 아들네 오면 오가는 것으로 끝날 것을.

이제 연휴에도 똑같이 밥하고 손님 맞아야 하니 심란하셨으리라.

여러 명의 모임에서 생기는 노동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나의 일이 줄어드는 것이 어머님에게 옮겨가니 죄송한 마음 한편에 그간 어머님이 나에게 전부 몰아주셨다는 걸 슬쩍 확인하게 되었다.

하기사 칠십 년을 넘게 밥을 차리고 명절을 보내셨으니 어머님도 은퇴하고 싶으신 마음 굴뚝 이시겠지.

머리로는 이해되나 그 은퇴로 인해 일거리가 모두 나에게 오니 오롯이 어머님의 은퇴를 축하해드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 참 노동의 되물림이라니. 나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을 마음껏 해도 시간이 남는 이상한 명절이다.

아마 이번 기상이변의 가장 큰 수혜자들은 각 집의 숨은 일꾼이었을 테다.

날씨로 인해 명절의 일정이 힘들어진 분들이 있으시다면 그간 그 일을 누군가가 다 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는 명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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