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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노래 Sep 23. 2021

여행을 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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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모른다는 이유로, 아직 가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계가 새삼 새로울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못 보았을 뿐, 그 모든 것은 천지 간에 존재해 온 구태의연한 게 아니던가.”


- 전경린, [천사는 여기 머문다] 중에서


전경린 작가의 문장에 올라타서 여행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향해 몰입하던 때가 있었다. 어차피 여행은 우리에게 삶의 가치를 가르쳐준다거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거나, 철저한 성찰을 통한 자신의 실체에 대해 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아닌가. 여행은 그저 여행일 뿐. 여행경비의 가치는 오로지 여행에 필요한 수단에 대한 비용이고, 거기서 경험하고 체득하는 모든 것은 ‘거주’하는 곳을 벗어나면 느낄 수 있는 해방 혹은 일탈 감 정도라고 생각했다.


바다를 공중으로 건너기 위해 제주도에만 두 번을 다녀왔다. 목표는 오름도, 바닷바람도, 특산물도 아닌 오직 구름 속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도착하기도 전에 여행의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바람이 강해져서 착륙이 지연되길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땅에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구름과 가까워지는 바다 사이에서 유치원에 처음 간 아이가 들어가야 할 문이 아닌 엄마의 뒷모습만 보는 것처럼 그 사이를 붙잡고 징징거렸다.


구태의연한 파도와 기체일 뿐인 구름에도 넋을 잃어버리는 것이 사람인데 하물며 여행이라니. 핀터레스트를 뒤져 가고 싶은 곳을 골라 아이패드에 끄적거렸다. 영화 [전우치]의 신령들이 하듯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다시 여행길이 열린다면 나는 주저없이 캐리어를 들쳐안고 창문을 모두 닫은 집을 나설 것이다.

9월의 저녁, 추석마저 지나 버린 가을의 시작에 여행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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