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가 밝았다.
세상은 여전히
COVID에 먹혀있는 상태였지만
미국은 무슨 배짱인지
회사, 학교, 커뮤니티가
일상으로 복귀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에 이어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소비의 형태가 바뀌어서
회사의 영업 실적은
최고치를 달성하고 있었지.
그로 인해
회사일은 더 바쁘게 돌아갔고
상무는
남편에게 큰 프로젝트를 맡겼다.
어쩌면 누군가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네 남편이냐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 남편과 염차장(S의 남편)뿐이었다.
염차장은 처음 해보는 주재원이었고
발령이 우리보다 늦었으니
현지적응이라는 명목하에
그동안
업무상 배려받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맥도날드 대첩 이후로
그 배려는 중지되었고
오히려 그것들이
무능이라는 이름표로 달리게 되면서
진급에 물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남편도 인정한
염차장만의 현장 업무능력이 있으니
새로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리더로 거론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상무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결정을 한 거였을까?
상무도 사람이니
자신과 가족에게 아군인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건 당연하겠지.
그러니 다들 이걸 노리고
사모의 오른팔이 되고자
진흙탕을 끓여 댔던 거 아니겠나.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 공과사를 구분해라 할 경우
할 말이 없지도 않다.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둘 중 조금의 흠집도 없는 사람을
배정하겠다는데
그게 사적인 결정으로 보여?
난 뭐든 상관없었다.
공적인 결과라면
내 남편은
이 업무의 일인자로 인정받은 것이고
사적인 결과라면
우리 부부가
상무와 사모의
오른팔이라는 뜻인 거니까.
남의 고까운 시선?
이제 나도 막가파였다.
내가 고상 떤다고
고상히 보아줄 곳도 아니고
그렇게 봐줄 인간들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으니
그들 수준에 맞춰
나도 될 대로 되라였고
니들이 그렇게 보니
그거 내가 즐겨줄게 식이었달까.
그러면서 3월을 맞이했고
어김없이
진급 발표의 시간이 찾아왔다.
주재원 중에
현역이든 재수든
심사에 해당하는 자가 많았던지라
상무의 배려로
모두들 소식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
그 배려로 활짝 웃을 수 있는 집은
단 3집뿐이었는데
도련님이신 고 과장은 차장을 달았고
현역으로 대상에 오른 내 남편은
부장을 달게 되었지.
나머지 한 명?
그건 바로 상무 본인.
상무는
2년 만에 전무직급으로 승진했다.
워낙에 능력이 출중했고
보여주는 결과들이
영업이익으로 이어지니
그 덕에
사장님과 회사 이름은
매스컴을 타고 고공행진이었고
이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로
여겨졌다.
염 차장과 이 차장?
이번에도 그들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마도 그들의 심정은
둘 중 하나 아니었을까.
본인들의 역량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내 어디가 부족해서 계속 안 되는 거냐
생각하며
남 탓, 회사 탓을 하는 거.
아니면
상무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보복당하는 거라 생각하는 거.
만약 후자라면
오히려 상무는 전무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망했구나 하지 않았을까.
사모가 J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넌 도대체
내 남편이 어디까지 올라가야
날 무서워할래!'
그야말로 이제 그때가 온 거지.
상무는
남편에게 승진 소식을 전하면서
또 다른 제안 했다.
미국 내 다른 지역에
브랜치가 있는데
그곳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새로운 대형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며
그곳으로 이주해
장비 설비와
운영의 총책을 맡아 줬음 좋겠다고
하더란다.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다니,
그리고
이 또한 남편의 커리어가 될 것이니
이건 참으로 좋은 신호였다.
과분한 제안 아니냐고?
이게 바로,
우리가
주제원을 두 번이나 나올 수 있는
이유였는 걸.
내 남편은
신입이었을 때
인력이 부족한 파트에 배정되어
오만가지 일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보이는 직급보다
잔뼈가 굵은 사람이 되었고
그렇다 보니
유일하게 남편만이 할 줄 아는 분야가
몇몇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공장 설비와 운영이었던 것.
그럼
내 남편이 없으면
그 공장 짓는 게 무산될 정도냐?
그건 아니지.
다만,
적임자를 구하느라 시간을 쓰고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니
있는 사람 구슬려서 싸게 쓰지
뭣하러 웃돈 주고 스카우트해 오겠냐
이 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제안을 한 사측도, 제안을 받은 우리도
서로 윈윈이었다.
심지어
이주하게 되면 살게 될 그곳은
더 큰 도시이고
남쪽의 따뜻한 지역이라는
이점도 있고 말이지.
그렇게 기쁨으로 4월을 맞이하고
우린 또 다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염차장의 귀임 소식.
회사의 예전 규정은
2년을 기본으로 주재하고
추후 연장논의를 하는 조건이었는데
이번엔 새롭게 바뀌어
우리 모두는
기본 3년을 주재하는 것으로
적용된 상태였다.
그런데
염차장이 발령받은 지
2년이 되는 시점에 맞춰
올여름에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니
모두가 갸우뚱하는 반응이었는데
나는 맥도날드 대첩 관련자로서
이 소식에 희열을 느끼면서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겠다 싶었다.
"어, 맞아.
염차장은 3년 못 채우고
올해 들어가기로 했어"
사모가 알려준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러했다.
미국의 영업 실적이 좋아지니
한국 본사에서도
이 상승세를 백업하기 위해
TF팀을 만들기로 했고
그에 맞는 팀원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이 이야기가 나왔고
따로 상무를 찾아온 염차장은
자신이 들어가서 그 업무를 하겠다며
손을 들었다는 것.
상무는 그런 염차장의 의견을
바로 받아들였던 거지.
말릴 이유가 뭐가 있겠나.
공적이든 사적이든 말이다.
염차장이
무슨 생각으로 손을 들었는지
우린 모두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맥도날드 대첩 이후로
염차장의 존재감은 없었는데
회의에 모습을 비추니
회사에 있긴 하구나 하는 정도였고
회식은 물론이거니와
가끔 사적으로 뭉치는 자리에도
염차장은 없었다.
사모가
가끔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나가면
저 멀리 혼자 산책하는 걸
보는 날도 있었다는데
가족끼리의 산책도 아니고
혼자였다고 하니
집 안의 분위기도
대충 짐작이 가는 듯했다.
"지도 외로울 거야.
그리고
여기에 무슨 낯짝으로 있겠어?!
애들도
영어 때문에 힘들어한다면서
들어가겠다 했대"
그 집이 처음 발령 나왔을 때
어떤 계획을 가지고 나왔는지
우린 알고 있었다.
주제원으로 시간을 채우고 나면
영주권으로 돌려
미국에 남을 생각이었고
당시
한국 나이로 고1이었던 큰 딸을
미국에서 대학 보낼 계획이었기에
한국 내신 공부 따윈
개나 줘버리고 온 상태였지.
그런데
한국으로 간다 손을 들었다니.
"하여튼
자식 있는 사람이 못 할 짓을 하면
그게 다
새끼한테로 돌아가는 거야.
누구 탓을 하겠어!
지 엄마 탓을 해야지!!"
사모는
본인의 아들과 동갑인 S의 첫째 딸이
가장 큰 피해자 아니겠냐 했고
부모 행실이 바르지 않아
자식이 피해를 보니
그건 다시 부모 본인에게
더 큰 아픔으로 돌아갈 거라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입시로 정신없이 파고들 때
미국 오가는 걸로 시간 다 까먹고
미국에 있는 동안
한국 내신은 손을 놓고 있었던 건데
다시 돌아가면 고2로 들어가야 하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거 아니냐 했다.
생각해 보니, 최소 3년은 채워야
대학 특례라는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2년 만에 돌아가니
그 기회마저도 없는 거더라.
기분들이 어떨까?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남편의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기는커녕
주황글씨가 박혀버렸고
아이는
아이 인생의
가장 큰 변환점이 되는 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린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겠다 손을 든 건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만큼 괴롭다는 뜻이겠지.
그래, 제발 많이 괴로워해.
죽는 그날까지
니 맘을 후벼 파는 일이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