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부족 개편을 시작합니다.

by 블레스미

주재원들은

회사로부터 1년에 한 번씩

홈티켓을 지원받는다.




그래서

다들 이 날만을 기다리며 살다가

여름이 되면

아이들이 방학을 하자마자

한국으로 떠나기 바쁘지.




사모도 나도

같은 한국 하늘 아래에서 지내다가

사모가 먼저 미국으로 들어갔고

우리가 입국을 앞둔 시점에

메시지가 왔다.




'블래스미!

내가 공항으로 마중 갈 테니까

택시 부르지 마~'




아니 뭐 이렇게까지..?




사실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어마한 일들을 같이 겪으며

친밀해졌다 해도

윗사람이지 않나.

그리고

21시간이 걸려 도착하고 나면

내 몰골도 말이 아닐 거고

컨디션도 별로 일 텐데

반갑게 떠들 텐션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았다.




한사코 말리는 나에게

본인이 꼭 해주고 싶어서 그런다며

보고 싶으니

어서 오라는 말까지 남기는 사모.




여러모로 그 말이 감동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우면서 왜 이러시지

싶기도 했었다.




항상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이것저것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은 달랐다.




왜냐!

내가 도착하면

싹 다 정리가 돼 있을 거거든.




염차장(S남편)은

그 해 연초에

한국으로 귀임할 것을

결정한 상태였는데

그 집 식구들이 미국을 떠나는 날이

내가 도착하기 전 날이라 했고




이 차장(J남편)은

주재기간 1년 추가 연장을

신청했다가

전무(상무가 승진함)가 거절하면서

다음 해에 있을 귀임을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저렇게 한량으로 놀고먹어서

단축시킬 판인데

연장이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다니

참 어이가 없었네.




결과적으로

나를

진흙탕에 처 박았던 두 년 중 하나는

주재 기간도 못 채우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송별회나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받지 못 한 채

야반도주하듯 떠나는 신세가 된 거고




또 다른 년은

자기 처지 모르고

단순하게 상황파악 했다가

철퇴를 맞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된 거지.




그에 반해 내 남편은

새로운 공장 사업의 총책으로 올라

주재 연장은 당연하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으며




상무는 전무로 승진해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니

나의 울화는 자연치유 중이었다.




"블래스미, 여기야! 여기!!"




사모는 샤랄라 한 모습으로

공항에서 우릴 기다렸고

날 보더니

보고 싶었다며 끌어 안기까지 했다.




"아니,

여기 오는데

이렇게 이쁘게 하고 오셨어요~"




"나 지금

새로 온 애들 만나고 오는 길이야!"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는 사람이 있는 법.




염차장 말고

연초에 들어갔던

다른 직원이 있었더랬다.

그 사람의 후임으로

나오는 집이 있다고 들었었는데

이주한 시점이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었나 보다.




그런데

한 집이 아니라 두 집이 나왔다네?




염차장의 후임은 없을 예정이었기에

웬 두 명인가 싶었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이제 그런 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쓸 이유도 없었다.




새로 나온 그 두 집의 여자들이

사모에게 인사를 드리겠다며

브런치를 신쳥했고

그게 오늘이었다 하더라.




"나이들이 어리더라고~

애도 꼬맹이던데

내가 걔네랑 무슨 얘길 해.

난 이제 관심도 없고

할 얘기도 없어서

그냥 너 델러 가야 한다고

일찍 나와버렸어.

걔네랑 있는데

니 생각이 얼마나 났는지 몰라~"




그러면서 날 한 번 더 안았는데

그 순간,

첫 대면부터

그들에게 날 갖다 댄 건 아니겠지?

하며 걱정이 스치더라.




잘 보이고 싶어 아양 떠는 사람에게

날 갖다 댔다면

이유 없이 나는 또

질투의 대상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설마

대판 난리를 겪고 또 그랬을까

싶긴 했지만

내가 그게 문제였다고

말한 적 없으니

그건 알 수 없는 노릇.




사모는

우리의 짐들을 함께 실어

날라 주었고

그런 사모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차 한잔 내주며 수다를 이어나갔다.




"말도 마!

끝까지 진상이었어!"




염차장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왔다.




염차장의 한국 첫 출근 날짜를

하반기 업무 시작에 맞춰

7월 첫날로 해 놨는데

갑자기

8월 말로 늦춰달라 하더란다.




알고 보니

영어가 부족했던 큰 딸은

학업성적이 좋지 못했고

F를 받은 과목들을

방학 동안 재 수강하여

최저점이라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다.




이곳의 고등학교 성적은

점수 변환이 되어

한국 성적으로 입력되기 때문에

그들에겐 큰 일이었던 거지.




하지만

발령을 2달이나 미룰 순

없는 일이었다.




개인의 일로

회사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건 선례가 될 뿐만 아니라

그전에

적용받지 못했던 사람들과는

형평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회사 입장에서는

2달 동안의

부대비용이 발생하는 격이니

왜, 뭣 때문에

그리 해 줘야 하느냔 말이지.




핵심인력이라서

모든 걸

맞춰줘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전무 본인의 가족을 건드려

심신을 파괴한 장본인을 말이다.




전무는 딱 잘라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또 하는 말,

그럼 자기가 한국을 가면

팀장으로 가는 거냐 묻더란다.




전무는

순간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한숨이 나왔다 하더라.




팀장이라는 건

부장 직급이 맡는 직책이다.

그런데 세 번이나 물먹은 양반이,

미국에서 역량 부족이었던 양반이

나이가 많고 경력이 길다고 해서

요구할 소린가.




염차장은

아무 이득없이 전무방을 나왔더라.

오히려

마지막까지 진상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네.




"별일이 다 있었네요"




"그거 말고도 별 일 또 있었어!"




나는 놀래서 쳐다보았고

사모는 뜸을 들였다.




"있잖아..

우리 남편도 한국 가"




"네??????

사모님 한국 들어가세요??"




"아니, 남편만."




이게 무슨 말인지

눈만 껌벅이는 내게

사모가 말해주길

부회장님이 전무에게

(상무는 전무가 되고

그를 이끌었던 사장은

부회장이 되었다)

이제 그만 한국에 들어와서

쌓인 업무를 봐 달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무는

아들의 입시가 코앞인지라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했고

부회장은

어차피 미국 업무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으니

혼자 한국으로 와서

장기 출장의 형태로 미국을 자주 가면

어떠냐 했다네.




결과적으로

기러기가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혼자 가신다구요??

여기 사모님 놓고서???"




나만 혼자 흥분이었고

사모는 정리가 다 된 듯

태연해 보였다.




사모는 원래

뭐든지 고민은 빨리 끝내버리고

좋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성격이었지만

나라면 그렇게 보낼 수 있을까

싶더라.




살기 좋은 대도시도 아니고

여긴 미국 깡시골에

4월까지 눈으로 뒤덮이는 곳이니

말이다.




"어쩌겠어 가야지.

그래도

부회장님이 들어오라고 찾는 건

좋은 신호니까"




전무와 사모는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한국에서

전무가 혼자 지낼 집을 구하고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구비해야 했으며

미국의 집과 차 또한

사모가

혹독한 겨울을 혼자 나는 데에

힘든 점이 없도록

관리에 관한 모든 일들을

업체에 의뢰해 놓았고

아들의 학업과 관련하여

필요한 역할들도

미리미리 준비해 놨더랬다.




전무가 떠난다는 소식은

주재원 부족에 널리 퍼졌고

전무의 집사로 여전히 활약 중인

고차장(과장에서 승진)은

형수님 걱정은 마시라며

불타는 충성심을 보였다.




여기에서

내가 생각한 관전포인트는

따로 있었지.




전무가 자주 오긴 할 테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근무하는 건 이제 아니니

이곳의 주재원들의 본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공적, 사적으로 보여왔던

충성심을

테스트해 볼 날이 왔구나 싶었다.




호랑이 없는 회사에서

어느 토끼가 설쳐댈지

아니면

풀려버린 먹이사슬에

토끼고 뭐고 위아래 없이

난장판이 될지 모르는 일.




사모만 남았으니

이걸 기회로 보고 더 달려들지

아니면

담갔던 두 발 중

하나를 뺄지 모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