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는
전무를 따라 미국 주재원을 하기 전,
벨기에에서 2년 정도
주재원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벨기에에서
전무는 부장 직급이었는데
함께 발령받은 위아래 직원들이
지금처럼
주재원 부족을 이루고 살았으며
그 부족의 장은
지금은 안 계시는
부사장님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부족 장의 신분인 사모도
그 시절엔 잘 보여야 할,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
있었던 셈인 거지.
한 번은
부사장의 부인이
본인의 집으로
주재원 집 여자들을 모두 불렀는데
그냥 가볍게 차 한잔 하자는 말에
군기가 바짝 든 여자들은
빠짐없이 참석을 했댄다.
그 집 거실에는
긴 커피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그 테이블의 한쪽 끝
왕 자리에 있는 싱글 소파에는
부사장 부인이 앉았고
그 양 옆으로
마주 보고 놓인 긴 소파엔
부인들이 모여 앉았는데
부사장 부인이
모인 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남편의 직급을 묻더니만
모두를 다 일어나게 해서
본인의 옆에서부터
남편의 직급 순으로
다시 앉으라고 했다 하더라.
그리고는
서로 얼굴과 이름을 익혀
누가 본인의 윗사람이고
아랫사람인지를
똑똑히 기억해 뒀다가
서로 실수 없이 생활하라는 말을
덧 붙였다네.
와...하하핳핳하하히ㅏ하...
대단한 여인
나쁘게 말하면
처음부터
군기를 제대로 잡겠다는
뜻이었던 거고
좋게 말하면
질서 유지와 평화에
진심이었던 거지.
그리고 그때는
그 정신세계와 의도가 먹혔던
시대문화였고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던
세대였던 거다.
요즘처럼
아랫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아니었던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그때
이 차장과 J도 그곳에 있었는데
나한테 부어댔던 흑탕물은
만들지 않았었다고 한다.
물론
그 본성이 어딜 가진 않으니
자잘한 입방아는 있었지만 말이다.
사모는
그 당시의 부사장 부인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안부전화도 돌리고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을 해
가져다 드리거나
장을 보는 김에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
사다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극정성이었던 이유는
전무가 회사에 적이 많았거든.
일 능력이야 워낙 뛰어났기에
그것에 관해
손을 비빌일은 없었으나
윗사람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들이박는
업무스타일과 성격인지라
등지고 있는 관계들이 많았기에
혹시나 나중에
찬스로 쓸 일이 있을까 싶어
기름칠 작업을 미리 해두는 거였지.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주재원 집 여자들은
사모에게 대 놓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기야
나도 누구네집 여자가
그렇게 한단 말을 들으면
단번에
딸랑이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겠나.
하지만 사모는
그들의 심리를 알고 있었다.
그건 아니꼬움이라기보다
질투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사모는 그들에게
더더욱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하고 싶으면 당신도 해!
내가 법을 어겼어 뭘 했어!
뭐가 잘못된 건데?!
남편 위해서 이 정도도 못하니?
솔직히
당신도 하고 싶은데 나만 하니까
질투 나는 거잖아.
이렇게 내 욕할 시간에
당신도 해~
해서 남편 내조 하라구~~"
적으로 둔 상대가 떠든 소리라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이없었겠지만
내가 사모의 아군이라 그런가
생각해 보면 맞는 말,
더 생각해 보면
나도 진작할걸 하는 말.
시간이 흘러
이제
부족 여자들의 장이 된 사모는
그때의 부사장 부인 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S와 J가 그 난리를 쳤을 때
나도 그렇게
초반에 군기를 잡았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를 하기도 했더랬지.
아마도
사모의 워너비 모델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건 그때였으니 가능했고
그때였으니 맞는 일이었다.
시대를 탓하겠는가
사람을 탓하겠는가
단지
옛날 그 시절에 통했던 라떼 맛이
지금의 얼죽아들에게도
먹힐 거라 생각한 게
잘못인거지.
S랑 J말이냐고?
노노.
S랑 J도
얼죽아보다는 라떼 세대였던 지라
직급과 나이를 이용한
사모의 기선제압이
그들에게 까진 잘 통했더랬고
그랬기에
별다른 뒤 탈 없이
끝낼 수 있었던 거였다.
문제는
새롭게 주재원 부족에 합류한
뉴페이스들.
장과장과 그의 부인 N,
최차장과 그의 부인 K.
지금의 말로
MZ였던 그 얼죽아들은
다 같이 쓰디쓴 아아를 들고
나타난 거였지.
그땐 그걸 모르고
한 번 통했던 라떼의 맛을
다시 보여주겠다며
사모 취향의 레시피대로
가득 말아 댔으니
그게 먹힐 리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개었던 하늘에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