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와 아아의 잘못된 만남.

by 블레스미

처음으로 주말 낮에

사모를 밖으로 불러냈다.




평소에는

평일 낮에 잠깐씩 만나

브런치를 하든

커피를 마시든 했었는데

전무가 한국으로 간 후

주말이

더 외롭고 길게 느껴질

사모를 위해

특별히 토요일 낮에 말이다.




누군가는 나의 그런 행동에

너도 참 애쓴다 하겠지만

이젠

손을 비벼 보여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동병상련의 아군이 된 상태였기에

여자대 여자로 보았을 때

애 데리고

타지에 혼자 지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고

사람대 사람으로 보았을 때

나였다면

누가 나 좀 찾아주길

바랬을 거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케어를 하면

그 진심과 수고를

콕 집어 알아주는 사모였기에

그렇게 할 맛이 났다고나 할까.




"애들은? 남편은?

주말인데 나 우울할까 봐

일부러 부른 거 나 다 알아~

고맙다야!

애 아빠랑 통화하고 있었는데

주말에 심심해서 어쩌냐길래

내가 너 만나러 나간다 했더니

챙겨줘서 고맙다면서

더 좋아하더라구ㅎㅎㅎ"




그때의 나를

사심 가득한

아랫사람의 입장이라 한다면

내 남편이 전무에게

추가 점수를 따 내는 순간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




대부분 여자들이 그렇듯

우리는

아이들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서

밥 해 먹는 거, 쇼핑, 건강,

개인적 자잘한 고민들을

한 바퀴 훑는 것으로

대화를 꽃피우고 있던 중

사모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최차장의 부인 k.




얘가 웬일이냐며

사모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더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k 씨~~

주말에 웬일이야?"




사모는 내 앞에서 전활 받았고

나는

괜히 딴짓을 하고 있었지.

아 이렇게들 전화를 하긴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사실

사모와 나에게

최대의 화두가 무엇이겠나.




흙탕물 트라우마에

된 통 걸려든 사람들로서

새로 나타난 N과 K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 파악하는 게

생존 본능이 튀어나오듯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식하고 있다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겠다는

잠재적 본능인 건지

우린 서로

조심하는 모습이었는데

함께 있는 자리에서

K에게 전화가 오고

그걸

반갑게 받는 사모의 모습을 보니

혼자 여러 가지가 짐작이 되던

참이었네.




"어쩜 이렇게 딱 전화를 하냐~"




통화를 마친 사모의 첫마디였다.




그러면서 말하길,

사모의 주재하에

커피숍에서

여자들끼리 첫 대면을 한 이후로

사모는 N과 K로부터

어떠한 연락이나 방문이

없었다고 했다.




그 대신

그녀들의 남편인

장과장과 최차장이

그렇게나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온다네?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던 사모는

장과장과 최차장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고 한다.




남편도 없이

여자 혼자 지내는 집에

왜 자꾸

들락거리고 전화를 하느냐면서

나를 살피려는 거라면

당신들이 할 게 아니라

부인들이 하게 하라고.

남자역할, 부인역할이

따로 있는 거다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최차장의 발길과 연락은 뜸해졌고

그 대신 그의 부인 K가

드문드문

전화를 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장과장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찾아 오더란다.




할 얘기도 없으면서

전화를 하고, 커피를 사들고 오고

집에 있는

한식 재료들을 들고 오고.




"아니, 내가 미역 갖다 달래?!

지 마누라는

못 보내는 건지 안 보내는 건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케어는 해야겠으니까

억지로 저렇게

필요하지도 않은 거 괜히 들고

찾아오는 거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들의 관계가

이미 틀어졌다는 걸.




라떼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사모는

일명 낀 세대였던 거다.




자신을 살피는 그들의 연락에

본인이 예전에 했던 거처럼

아랫사람의 케어를 받는구나

싶었는데

부인들이 와서 보이는

붙임성은 없고

남자들의 불편한 방문만

계속되었던 거였지.




그리고

얼죽아 세대인 장과장과 최차장은

요즘말로 MZ였던 거다.




한국 가는 전무를

공항에 데려다줄 때

내 부인을 잘 부탁한다는

마지막 인사말을 듣고

그게 그냥 하는 말인지

아닌지를 떠나

큰 부담을 느꼈을 테니

내가 왜

그런 거 까지 해야 하는 것이냐며

마지못해 꾸역 꾸역이었던 거지.




그러다 최차장은

부인이 가끔 통화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나 본데

장과장은 자기 방식으로

꿋꿋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니

사모의 눈총은

장과장을 향할 수밖에 없는 거다.




K와 통화를 마친 후

사모가 나에게 해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으니

그들의 관계 속엔

내가 짐작하는 거 이상의 균열이

있겠구나 싶더라.




난 그래도 그때 까진

남자들이 본인들의 의지로

아내 대신 총대를 메는 행동을

하는 줄 알았네.

그건 사모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힌트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10월 31일.




회사에서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해

핼러윈 행사를 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들만

참석하는 분위기였기에

나도 사모도 가지 않았는데

도련님인 고차장과 부인 L은

참석했더라.




"어제,

L이 다녀와서 전활 했더라구.

근데 목소리가 어땠는지 알아?

내가 걔를 본 3년 동안

그렇게 화난 목소리는

처음이었어!"




L은 핼러윈 행사에 가서

장과장, 최차장 가족과 마주쳤고

그들의 부인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려

웃으며 다가가던 중

N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그런데 N은 굳은 표정으로

L을 위아래로 훑으며

째려보더니

획 돌아서 가버렸다네?!




그 모습에

다가가던 L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고

얼음이 된 상태로

이게 뭐지 하고 있다가

기분이 너무 나빠

남편 고차장에게 말했더니

고차장도

그들과 회사에서

데면데면한 관계였던지라

그냥 무시하라고만 했다고 한다.




L은 참고 참아도

그 일이 너무 어이없고 기분 나빠

다음 날 사모에게 전활 걸어

하소연했고

사모는

그 얘길 나에게 전해 준거지.




아.. 그렇다면..

분명 장과장과 최차장은

자의로 사모를 챙기고자

찾아가던 게 아니라

어쩌면

그들의 부인들이

내가 왜 해야 하냐 버티니

어쩔 수 없이 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장과장과 최차장이

사모를 찾아가서

예전 집사들처럼

넉살을 부린 것도 아니고

쭈뼛대기만 하다 가더라

라고 했으니 더더욱.

고래등 싸움에 낀 새우꼴처럼

말이다.




K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N은 심상치가 않았지.




N이 L에게

그리 도발할 일이 뭐가 있겠나.

카페에서 만난 이후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조차도

아니었고

심지어

남편 고차장은 도련님인지라

다들 L에게는 상냥했는데 말이다.




그들 눈에 L은

대접받고 싶어서

시어머니처럼 구는 사모와

한 통속이었던 거지.




나?

나도 당연하지 않았겠나.

잠깐이라도 마주친 적 한 번 없고

카페 만남 이후로

서로 깜깜무소식이지만

이분법으로 구분하자면

지들만 얼죽아이고

나와 L은 라뗴파에 속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직장 동료가족에게까지

도발할 일인가?




내가 알기로 사모는

대놓고

너희 부인들은 왜

나에게 연락 한 번 없느냐

한 적 없다.




다만,

카페 만남 이후로

연락 없는 것도 이상하고

남자들이 드나드는 게 불편하니

할 거면 부인을 시켜라 했을 뿐.




하지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게 아니니

말투와 표정에서 읽히는

비언어적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 건 맞다.

그러니

그 말이 강요로 들렸고

푸시로 받아들여져

감정이 상했다면 할 말은 없지.




그리고 사실 사모는

아랫사람이라면 응당

윗사람을 케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의 소유자라

알게 모르게

티를 냈을 수도 있다.




근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고차장과 L이

자기네 한테 뭘 어쨌다고

째려보기까지 하나.

업무관계를 위해서라도

그냥 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고까워도 티 내지 않고 삼켜버리는

옛날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아랫 직원이 무서운 때라지만

저 정도로 한다고?

저것 또한 선을 넘는 행동 아닌가?




그 후로

어느 주말 아침에

사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를 들으니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중인 거 같았다.




"내가 웃긴 얘기 해줄까?"




사모는 강아지를 데리고

정처 없이 산책하다 보니

장과장과 부인 N이 사는 집을

지나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집 차고 문이 열려있고

장과장이 그 앞에서

차를 닦고 있더라네.




얼떨결에 마주친 그 두 사람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다가

사모가 인사말로

N은 집에 있느냐 물었더니

멀뚱한 행동을 하면서

마트에 가고 없다 하더란다.




근데

차고 안에 차 두대가

전부 주차되어 있었던 거지.




차가 없으면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이 미국에서

마트는 어찌 간 거냔 말이다.




차 두대가

모두 여기 있지 않느냐 했더니

이웃과 함께

그 집 차를 타고 갔다 했다는데

갑자기 말이 바뀌어

이웃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미국인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가서

장을 보는 문화였던가.




그리고

그 당황한 목소리며

과잉된 행동은 어쩔 거냐.




알았다며

차고 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그 집을 지나치고 있는데

장과장은 마치

공격수를 전담방어 하듯

차고와 사모 사이에 서서

사모의 걸음에 맞춰

따라 걷더란다.




"내가 차고 안으로

뛰쳐 들어가기라도 할 줄

알았나 봐"




그런 식으로 자잘하게

작은 일들이 이어지면서

우린

각자의 포지션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의 위치가 좁혀지기는커녕

고정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큰 사건은 없었기에

서로 좋지 않은 감정들만

확고해지는 중이었고

긴장감만 흐를 뿐이었지




그냥 이 또한

서로의 개념과 가치관 차이가

입장차이로 굳어지고

오해가 생기면서

일이 꼬여가는구나 했다.




그렇다 보니,

시발점은 무엇이고

발단이 어디이며

그 핵심에는

누가 서 있는 건지에 관해

서로

상대를 가리키는 꼴이었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사모가 그들에게

무관심했다면 어땠을까?




맥도날드 대첩으로

주재원 관계에 대해선

질려버린 상태였으니

그들을 궁금해하지도 말고

관심 껐더라면 어땠을까 말이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저리 요상한 행동으

사모를 고약한 사람으로 만들면서

살살 긁어대니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있나.




다른 하나는

그들이 좀

유두리 있게 생각했음 어땠을까?




그 어느 누구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칼을 겨눈 적 없는데

무슨

과대망상이고 피해 의식인 건지.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부르르 떨기보다

적당히 한 귀로 흘려 들었음

좋았을 텐데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때 그 일은 없었을 텐데...




그 지경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