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래스미!
나 이제 여기 못 살겠어.
나 한국 갈 거야!!
애고 뭐고 간에
난 이제 도저히 안 되겠고
한국으로 갈 거야!!!"
대낮에 걸려 온
사모 전화를 받자마자
북받치는 감정으로
쏟아내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듣고 있니?
나 애 아빠한테 바로 말해서
한국 갈 거니까
너도 조심해!"
북받치는 감정은 폭발하여
중간중간
우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고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 듯 들렸다.
"왜요!! 뭔데요?!
무슨 일인데요??!!"
정신없이 횡설수설하는 사모를
다그쳤더니
장 과장과 통화를 했다 하더라.
사모는
장 과장, 최차장과
여전히 신경전 중이었다.
발단은
세대 간 개념차이에서 비롯되어
어찌 보면 유치하기도 했지만
여러 자잘한 일들을 거치면서
이제 더 이상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고
서로를
주적으로 인식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사모는
장과장과 부인 N,
최차장과 부인 K의 이름만 나와도
욕이 절로 이어졌는데
그중에서도
장과장과 부인 N과의 마찰이
심했다.
서로 왕래를 끊고
부딪히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장과장과 최차장이 맡은 업무는
전무 직속의 일이었는데
미국 사무실에서
자리를 뺀 전무였던지라
업무 관련하여
필요한 자료나 문서가 있을 경우
사모를 통해
집에 보관하고 있는 걸
건네받아야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마주칠 일이 있는 관계에
놓였던 거지.
그날도 그런 경우였다.
장 과장은 사모에게
잠시 들러도 되겠느냐
전화를 했는데
그 통화는
사모의 뇌관을 건드리는 꼴이
되어버렸네.
통화의 시작은 좋았다고 한다.
차분히 안부를 물으며
아주 객관적이고 공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장과장은
자신이
전무님을 존경하고 있기에
사모님과도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다
말했다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보고
그러니까 지 부인 건들지 말래!
자기 믿고
여기까지 나온 여자라
자기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하다면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나보고 그만 미워하랜다!"
사모는
어이없다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는데
그 앞의 대화가
워낙 긍정적이었기에
정말 저렇게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난
장과장의 입을 통해
직접 듣지 않았고
사모를 통해 들었으니
정확한 워딩과 뤼앙스는
알지 못하겠다는 게
함정이었지.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사모가 어찌 들었느냐인 거다.
좋게 풀자고 말한 의도였다면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완곡하게 말하지 그랬냐...
하....
사모는 장과장의 그 말에
속이 뒤집혀 버렸다.
"내가 지 마누라를
뭘 어쨌다고 저래?
나 걔랑은
통화한 번 한 적이 없어!
오히려
지가 전무 마누라인 나를
계속 건드리고 있잖아!!
아니,
여기 죄다
남편 믿고 따라 나와
고생하고 있는 여자들이야!
지 마누라만 귀해?
지 마누라만 불쌍하냐고!!"
사모는 나에게 보인 화만큼
장과장에게 퍼부었나 보더라.
그러면서
N애 대해 따져 물었다 했다.
부인 N은
장과장과 회사 CC였는데
장과장이
주재원 발령받아 나오게 되면서
휴직을 했다 말한 적 있다.
그거에 대해
공기업이 아닌 이상
동반휴직이란 건 없고
개인사유라 할지라도
3년은 절대 불가인데
무슨 짓을 하고 나온 거냐 물으며
겁나니까
나보고 니 부인
건들지 말라 한 거냐고.
그 대목에서
장과장도 눈이 돌아갔던 거 같다.
"야, 뭐래는지 알아?
나보고 전무 승진할 때
너한테 화분 받은 거
알고 있다면서
그거 김영란법 걸리는 거라며
받으면 안 되는 거라 하더라?
지 부인(N)이 인사과라서
그런 거 잘 안다면서
그거 찌르면
내 남편 끝인데 왜 받았냬!!!"
상무가 전무로 승진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전무 사무실로
축하 화분을 보냈더랬다.
그걸
카페에서 인사한답시고
모두 모였을 때
사모가 대놓고 말하면서
나에게 고맙다, 잘 키울게
했었더랬지.
그 걸 N이 기억했다가
장과장에게 말한 모양이다.
근데 누군가 영전했을 때
다 이렇게 하지 않나?
오히려 이게 예의 아닌가?
심지어
난 그때 돈 아낀다고
여러 사이트 가격비교해 가며
책상 용으로 작은 걸 골랐더랬고
쿠폰 받겠다며
퀴즈 응모까지 해 가면서
38900원짜리를 하나 샀던 거였다.
그런데
그 잘나빠진 38900원짜리 때문에
나까지 소환당하고
김영란법 소리까지 들었네?!
하...
나까지
눈이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걔가 나 협박하더라!
김영란법 얘기하면서
나한테 내 남편 협박을 하더라구!
야!
내 남편이 김영란법 걸리는 거면
사장님, 회장님은
여태 받은 화분들로
깜방에 백번도 더 들어갔어!
그리고 그거
부탁하는 사이로 판단돼야
성립되는 거 알지?
너네가 우리한테 뭐 부탁했니?
우리가 뭐 들어준 거 있어??!!"
내 심장도 미친 듯이 뛰더라.
사모 말대로
그걸로 깜방에 간다면
이 세상 사람 절반은
다 전과자 아닐까.
당장 내 시누이도
승진하면서 받은 난 화분이
그득그득 이었는데 말이다.
아니,
맞고 아니고를 다 떠나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물어뜯으려 하는
그 조잡한 생각과 더러운 심보가
날 더 이상은
중립에 서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모는
지난날 있었던
맥도날드 대첩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그때
S와 J의 망나니 짓거리를
겨우 참고 버텼는데
이렇게 또 저것들한테 당한다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울먹거리며 쏟아내더라.
그러다 정색을 하더니
아무래도 이 땅이
본인의 무덤 같다며
여길 벗어나겠다,
여길 당장 떠나야겠다는
소릴 하는데
그 목소리는 참 단호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김 부장(내 남편)한테
말하겠다 했더니
제발 그러진 말아 달래더라?
그래서
니가 먼저
화분을 문제 삼았으니
그 화분을 준 사람도
오늘 얘길 알고 있어야
니가 치는 뒤통수를
대비할 거 아니냐 했어 "
사모는
그래서 나에게 말해주는 거라며
우리가 잘 못 한건 없지만
미친 연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조심하라 했다.
그 일은 당연히
전무에게도 전달이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후
전무는 미국으로 출장을 왔다.
그동안 작은 일들이 있었을 때
그들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던
전무는
배신감에
그들에게 등을 돌려버렸고
예전에
염차장과 이차장에게 했듯이
모든 배려를 중지함과 동시에
공적으로 조져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체크한 건
근태였지.
아무래도
호랑이 없는 굴이었던 지라
빈틈이 있지 않겠냐는
의심이었는데
혹시나는 역시나였고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다른 지역 출장도
몇 달째 안 가고 있었던 것.
전무는 그 둘을 불러다
잘근잘근 씹어줬더랬는데
장과장과 최차장은
본인의 잘못이 분명한데도
개인감정이 섞였다
생각을 했는지
아님
스스로 찔리는 부분이
있었던 건지
전무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그런데 오히려 독이 되었네.
그 대화를 하는 도중
장과장의 말실수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거.
그들이
새로 발령받아 나왔을 때
사모는 주재원 여자들을 불러
카페에서 다 같이 만나
인사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사모가 보인
꼰대력과 카리스마에
N과 K는
사모를 악의 축으로 세웠고
나와 L도 갖다 붙여
한통속으로 정의했더라.
그리고는
본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대비를 해야 한다며
그다음 날 바로
두 부부가 만나
대책 회의를 했다는 것!
도대체 무슨 대비?
무슨 대책??
무슨 피해망상들인지...
그렇게 두 부부가 모여
대화를 나누던 중
화분 얘기가 나오고
김영란법 얘기가 나온 거라더라.
사모는 이 얘기를
나에게 전해주면서
이제야 왜
장과장과 최차장 둘이
항상 붙어 다니는 지를
알겠다 했다.
회사에서 한 사람만 불러도
둘이 같이 오고
면담도 둘이 같이 하고
회의도 둘이 같이 드나들고.
유치하다 유치해.
5살짜리 얘냐??
하나 잡아갈까 봐
둘이 붙어 다니는 거야??
그런데 웃긴 건
서로의 힘이 되어주자는 뜻으로
붙어 다녔으면서
장과장은
두 부부가 만났었다는 비밀을
전무에게 말해 준 거였다.
전무가 꼬리 질문을 하니
지 살겠다고 발설한 거지.
더럽고 치사하고 비굴한 놈.
일본 앞잡이 같은 놈.
이 사실을 듣고 사모는
최차장에게 전활 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차장을 이리 뜨고 저리 떴는데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더라는.
대 놓고 물은 질문에도
두 가정이 따로 만나거나
대비를 하자며
얘길 나눈 적은 없다고.
어차피 사모의 타겟은
장과장으로 맞춰진 상태였다.
최차장이
사모를 긁어 댄 일은
따로 없었거니와
그의 부인 K 역시
조용히 지내다 못해
드문드문이라도
안부전화는 하던 사이였으니까.
그래서 사모는
장과장이 다 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대단한 우정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자고.
뒤통수 맞은 걸 직접 알게 되면
더 충격 아니겠어?"
그러면서
다른 말을 해 줬다 말했다.
"시커먼 거
가까이하지 말아요.
본인에게 지워진
작은 책임만 감당하면 될 것을
괜히
상대가 가진 큰 잘못 까지
함께 이고 지겠다 뛰어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그 사람도 최차장한테
그리 해 줄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