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by 블레스미

시간은 잘 만 흘러갔다.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짐을 한 번 더 솎아냈고

임시로 거주했던

에어비앤비 주택을 나와서

호텔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떠나는 날까지 머물기로 하면서

다시 한번

호텔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곳에 처음 왔을 적에

3개월 동안

호텔 생활을 했던 그때가

떠오르더라.




어떤 진흙탕이 펼쳐질지 도 모르고

불편함도 까르르 웃어넘기며

마냥 기대에 찼던 그때가.




이젠 다 지나간 일들이고

마무리도 그 정도면

내 입장에서

권선징악이었다 싶었기에

미련도 없고 미움도 없었다.




질렸으니

어서 하루빨리 떠나자는 마음도

아니었고

다시는 보지 말자며

치를 떠는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잘 있어라,

그동안 고마웠고 나는 간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그만큼

내 마음이 치유되고

위로받았다는 거겠지.




다만 약간의 죄책감이랄까.




개운하지 못하게

뭔가 마음에 걸리고

찝찝하게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사모 때문이었다.




이 땅이 내 무덤 같다 말하는 사모를

그곳에 혼자 두고

나만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내가 떠나는 날이 다가 올 수록

사모도

마음속에 오만가지 감정이

뒤 섞였던 거 같다.




어떤 날은

너라도 떠나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여기는 생각도 말고 살아라 했고

어떤 날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간다 한 들

그래봤자 미국인데

밥 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거 없으니

감옥인 건 똑같지 않겠느냐 하더니

또 어떤 날은

그곳에 있는 주재원과 친해져서

날 잊으면 안 된다는 둥,

전화 계속해야 한다는 둥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든 감정이

백 프로, 천 프로, 만 프로

이해가 되고도 남더라.




나 같았음

우울증이 걸리지 않았을까.

그나마 사모의 정신력과 투지니까

버티는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남편도 없이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배려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내가 갖는 새로운 희망을

내 비치지 않았고

가봐야 뭐 별거 있겠느냐

맞장구치면서

주재원 여자라면 이제 치가 떨리니

새로 사귈 일은 없을 거라

못을 박았더랬지.




그러면서

사모의 생일을

미리 축하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생인 그녀를 위해

12월에 식당을 예약하고

꽃과 작은 케이크를 준비했다.




뭘 이렇게 까지 하냐 하면서도

고맙다며 웃는 얼굴을 보니

뿌듯하더라.




그때

직원에게 부탁해서 찍은

우리 둘의 사진이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매년 그 날짜가 되면

몇 년 전 오늘이라며

구글이 알아서 띄워주고 있지.




하루는

사모가 아들을 데리고

호텔 로비로 왔었더랬다.




사모가

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며

가져다주겠다 전활 했었는데

그 통화를 듣고

둘째 아이가 했던 말이

나는 너무 웃겨

사모에게 전해줬더랬네.




"엄마,

결국 그 오빠는

한 번도 못 보고 가네!"




그 한마디에 사모는

사춘기 말기에 빠진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던 거였는데

나는 그 아들이

사모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감동이 아닐 수가 없었다.





"블래스미, 가서 잘 지내!

너가 가서 얼마나 다행이지 몰라~

여기서 이렇게 개고생만 하다가

한국 들어가면

넌 미국 말만 들어도

화병이 났을 거야.

가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여기 일은 다 잊어버려!

그러고 나서

나중에 한국에서 만나자!"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말에

마음이 울렸고

반대로,

사모는 그렇게

회복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말로도 들리니

너무나도 안타깝더라.




그렇게 하루하루

그곳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이주를 6일 앞둔 상황에

갑자기 폭설이 시작되었다.




워낙 추운 지역이었기에

당연한 겨울의 모습이었지만

비행기를 타야 하는 우리는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지.




앞으로

눈 폭풍을 동반한 폭설이

계속될 거라는 뉴스에

우린

비행 편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고

그래서 새로 결정된 날짜가

바로 다음날이 되어버린 상황.




연말이라

남편도

남은 휴가로 쉬고 있던 참이었고

아이들도 전학수속을 마쳤던 지라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야반도주하듯

떠나야 하는 이 상황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그리고 연말 휴가를 맞아

전무가 미국에 와있던 참이었기에

떠나기 전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었는데

그 만남도 어렵게 되었고 말이다.




우린 정말

도망치듯이 짐을 싸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우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는 길에 사모에게 들러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려 했지만

우리의 갑작스런 변경으로 인해

시간이 맞지 않았고

통화만 한 채 이별이었다.




그래도 이때에 맞춰

전무가 와 있으니

내가 떠나는 게 대수겠느냐 싶어

마음이 놓이더라.




공항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했네.




3년 전

이 문을 통과해 들어왔던 우리가

온갖 일들을 겪고

다시 그 문을 통해 또 다른 곳,

새로운 시작을 하러 떠난다니...




이제 정말 안녕이다.




다시는 올 일도 없고

오고 싶지도 않은 땅.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많이 후회했고,

많이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동시에

많이 배웠고,

많이 성장했고,

많이 깨달았고,

많이 경험했던 시간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