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동화.

by 블레스미

12월.

내겐 너무나도 아름다운

연말이었다.




내년에 펼쳐질 일들이

기다려졌고

남편의 승승장구 소식을

서프라이즈로 주변에 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웃게 되는 날들이었다.




그건 단순히

내 남편의 성공이 아니라

나의 업적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모든 걸 갈아엎어

경력단절의 아줌마가 된

나에게도

내조라는 이름의 훈장이

내려지고

나의 노고가

인정받게 되는 거 같았거든.




동시에,

지난날

진흙탕에 패대기 쳐졌던 일들은

내 무용담이 되고 있었다.




마치

승승장구의

필요조건이었던 거처럼

여겨졌는데

그 희생을

내가 감당해 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남편의 성공에

크게 일조한 거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네.




사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던

순간이었다.




복귀를 위해 준비하는

이것저것들이

모두 즐거웠으니 말이다.




집은

어느 동네,

무슨 아파트로 할지

손품을 팔아 부동산을 파악했고

버리고 갈 짐들을

머릿속으로

미리미리 솎아내면서

새로 쇼핑해야 할 것들에 대해

리스트를 정리하는 시간도

즐거웠었지.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들을

살피기도 했다.




귀국하면

고등학교 입학 특례 혜택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잘 써먹었다고 소문이 나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정한

그 동네의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져

과목 별 학원까지도

내정한 상태였다.




그러면서

이 모든 건

기대되는 연봉이 있으니

가능한 거구나 하면서

안도했고 감사했다.




기존의 월급이라면

고려할 수 없는 선택지들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나까지 두통이 오더라.




전혀 다른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이었고

지나간 몇 년 치를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거기에서 느낀 압박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손품을 팔아

아이들에게 맞는 수준의

문제집들을 공수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가 짠 계획에 맞춰

한국 교과 공부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채웠더랬지.




남편 또한

인수인계를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었다.




한국에서 올 교체자와

매일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공적으로 들어오는 질문들을

해결했으며

사적으로 물어 오는 것들에

대해서도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을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건

미국에 새로 짓고 있는

공장이었다.




워낙 규모가 컸기에

아직 마무리 단계조차

들어가질 못 한 상태였는데

지금껏 관리감독해 오던 것을

미국직원 손에 넘길 생각을 하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던 거다.




남편의 공로를 빼앗길까 봐가

절대 아니라

이 일에 관해 경험도 없고

빠릿빠릿하지도 않은

미국 직원 손에 맡기고 떠나려니

결과가 불안했고

지금껏 했던 모든 노력과 고생이

물거품 될까 봐

걱정이었던 거지.




본인의 이름이

선대 책임자로 올려졌으니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부터 열까지

무조건 본인의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남잔데

그 마음이 오죽하겠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복귀 소식을 알렸다.




내년 6월이면

한국에서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 하니

엄마는

추석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거에

너무나도 좋아하시며

달력의 날짜를 세며 기다리셨다.




한 가지 더 좋았던 건

그때 마침 들려왔던

나이 개정 소식이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만 나이를 공식 나이로

사용하겠다 발표를 했던 건데




그 발표가 있을 때

내년 1월에 있을

엄마의 칠순에

내가 함께하지 못한다는 걸

안타까워하던 중이었거든.




이제

만 나이로 개정되었으니

엄마의 칠순은 내 후년인 거고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며

전화로 참 화기애애했었더랬다.




그렇게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기다려라, 내가 간다를 외쳐댔고

그와 동시에

나만의 청사진을

살짝이 그리기 시작하니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네.




사모도 반가워해 줬다.




우리에게 매 번

미국에 남을 생각은 말라 말했던

사모였거든.





한국으로 가서

경쟁자들 다 물리치고

떵떵 거리며 자리 잡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사모에게

전무가 해 준 임원 자리 약속을

말했냐고?




노노.




전무는

내가 남편에게 듣고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 얘긴

전무와 남편

단 둘만의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었기에

난 알아도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게 여러모로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당연히

내 입으로

사모에게 말 한 적 없고

티 낸 적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무가 우리에게 건넨

그 약속을

사모가 몰랐을까?




글쎄.




왜냐하면

전무와 사모는

대화를 아주 많이 하는

부부였거든.

회사 일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사모도 전무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나에게

티를 안 냈던 거 아닐까 싶다.




우리 서로 알고는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격한 축하를

주고받을 사이이지만

오픈되기 전까지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야 한다고

우린 동시에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통화를 할 때면

다른 이야기들로 가득 채웠다.




내가 내년 여름에

먼저 들어가고 나면

그다음 해 봄에

사모도

한국에 들어오게 될 테니

한국에서 만나 회포를 풀 생각에

서로 흥분으로 들떴더랬지.




그렇게

12월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춰

전무는 미국으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남은 휴가를 몽땅 쏟아부어

연말연시까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쪽 집이나 저쪽 집이나

내년에 펼쳐질 행복한 앞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보내는

아름다운 연말이었다.




동화를 보면

보통 이렇게 끝맺음하면서

Happily Ever Afer 하던데

그건 동화라서 그런 건가?

현실은 왜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 당시, 그 순간이

동화책 속이었다면

거기에서 그만 책을 덮었을 거다.




아니,

덮었어야 했다.




덮어서

꽁꽁 걸어 잠갔어야 했어.

그 누구도

그 책을 다시 펼쳐

다른 결말을 이어 쓰지 못하도록.